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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pr 11. 2019

첫 모유수유의 두려움

산후우울증의 첫 단추




쮸니를 뱃속에 품었던 아홉 달 남짓의 시간은 축복  자체였다. 남들 다 한다는 입덧이 웬 말인가. 뭐든  먹었고  흔한 배뭉침도 없었다. 맘스홀릭이라는 임산부들의 최애 카페를 하루에도 수십 번 들락거리며 준 산부인과 의사 뺨 때릴 정도로 임신 지식을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든 글로 배운 타입인지라 임신도 글로 배웠다. 문제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만 너무 꽂힌 나머지 정작 출산 이후의 실질적인 육아는 미리 공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으레 나는 당연히 모유수유를 할 수 있겠지, 아기를 잘 안을 수 있겠지, 아이를 잘 재울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돌이켜보면, 육아란 몸소 부딪혀 보지 않는 이상, 책으로 백날 접한 들 피부에 와닿기 힘든 영역인 것 같기도 하다.) 


예정일을 넘기도록 쮸니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양수가 5 이하로 내려가면 유도분만을 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40주 5일, 밤늦게 촉진제를 맞고 16시간의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분만을 유도했을 뿐 쮸니는 아직 맘에 준비가 안된 듯 머리를 쉬이 밑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제왕절개로 쮸니 만났다. 


초산에 제왕절개를 해본 엄마들은 알게다. 초유는 그리 쉽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틀 가량 젖을 물리지도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냈고, 출산 사흘째 되던 날 구세주 같은 '가슴 마사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의 손길로 뭉쳐있던 가슴은 풀렸고, 그제야 유즙이 나오기 시작했다. 괜한 자신감이 올라왔다. "여보. 나 우리 아들 모유 줄 수 있을 것 같아. 태어나서 최대한 빨리 엄마 젖을 무는 게 아기 정서에 좋대."


왕절개 수술을  엄마들은 각종 링거를 달고 지낸다. 링거를 두세 개 꽂은 채 지지대를 끌며 수유실을 찾았다. 수유실에 모인 엄마들, 젖이 차올라 부어오른 가슴을 부여잡고 아이 입에 하나둘 물렸다. 나를 제외한 엄마들은 자연분만을 했는지 팔에 링거 따위 꽂혀있지 않았다. 제왕절개가 죄는 아닌데, 왜 그때는 그렇게 위축됐는지 모르겠다. 간호사로부터 아이를 건네받고 기계적인 설명을 들었다. 말이 쉽지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어찌나 로딩이 길게 걸리는지 당황함이 밀려왔다. 게다가 아기를 안아본 거라곤  8개월 이상의 남의 집 애들이 다였다. 신생아를 품에 안은 건 난생처음이었다. 


손에 주렁주렁 달린 링거줄은 거추장스러웠다. 쮸니를 건네받자마자 아이의 목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휘딱 제쳐졌다. 본능적으로 아이에게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엄마가 되기에 아직 부족한가. 미안해 아들. 널 너무 사랑하지만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지금 몹시 떨리고 당황스럽고 널 혹시 아프게 한건 아닌지 혼란스러워."


겨우 진정하고 젖을 물렸다. 빠는 힘이 부족한 아기에게 아직 튀어나오지 않은 엄마 젖꼭지는 불편함  자체였다. 쮸니는 우렁차게 울었고 나는 당황했다. 간호사에게 S O.S를 쳤고 그녀는 내게 무표정의 얼굴로 분유를 건넸다. 초보 엄마는 젖병을 물리는 것조차 어설펐다. 결국 간호사가 다 먹이고 나서야 내게 아이의 트림을 맡았다. 웬걸, 들어 올리자마자 아들은 트림을 했고 이게 트림인가 아닌가 긴가민가 하는 사이 옆에서 나를 안타깝게 보던 한 산모가 "아기가 트림한 거 같아요"라고 했다. 그 말에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차올랐다. 혹시나 내가 안고 있다가 아까처럼 아기 목을 제대로 받치지 않는다든지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 아기를 간호사에게 떠맡기듯 맡기고 수유실을 나왔다. 미안함과 자책감이 밀려왔다.


자괴감의 절정은 그날 밤에 찾아왔다. 남편 핸드폰으로 신생아실 소아과 의사가 전화를 걸어왔다."아기가 황달이 있어서 광선치료에 들어가야 하고  산소포화도가 조금 낮아서 모니터링 기계 달아서 계속 확인할 예정입니다." 황달은 그럴 수 있다 쳐도 산소포화도란 단어에 겁이 났다. 병원 휴게실에서 남편품에 안겨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처음 엄마품에 안긴 아들에게 제대로 품어주지 못해 생긴 일 같아 더욱 속상했다. 


아이는 엄마보다 하루  늦게 퇴원했고 퇴원한 날 면회시간에 맞춰 다시 병원에  쮸니를 보고 와서야 맘이 놓였다. 다음날 병원으로부터  전화는 황달수치와 산소포화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퇴원해도 좋다는 소식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조리원 입성부터 아이를 늘 품에 안아줬다. 첫 모유수유의 미안함 때문에 조리원 동기들이 아기 손탄다고 많이 안아주면 안 된다 할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안아줬다. 이건 돌이켜봐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약간 겪었는데, 돌이켜보면 산후우울증의 시초는 첫 모유수유 시도와 실패에 있었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다곤 하지만, 자격 없는 엄마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롭혔다. 친한 언니가 내 이야길 듣더니 "야 너 나중에 한 손으로 척하고 젖먹이고 또 다른 한 손으로 척하고 들어 올려 트림 시킬 거야. 진짜 아무런 실수도 아니란 걸 몇 개월만 지나도 알게 될걸. 자책 말아라"라고 위로해줬다. 돌이켜보면 맞는 말인데 그땐 왜 그렇게 귀에 안 들어오던지, 가슴에 와닿지 않던지. 첫 단추는 비록 괴상하게 뀄지만, 1년 동안 완모 하며 쮸니를 잘 키울 수 있는 엄마였는데, 그걸 그땐 모르고 자책만 했다. 


만약 그때의 나를 마주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울한 건 호르몬 탓이야. 넌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모유수유에 성공하는 엄마란다. 그리고 또 모유 좀 안 먹이면 어떠니. 요즘 분유 모유 못잖게 좋다. 애보느라 밥도 못 챙겨 먹고 라면 한 끼 겨우 때우는 날도 허다한데 그렇게 먹고 만든 모유가 분유보다 더 나을지는 의문이다. 힘내라 힘. 초보 엄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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