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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Aug 11. 2022

인연 한 조각과 향긋한 기억 그리고 그리움 2

오원환(셋넷 자원교사, 군산대 교수)


2012년, 금희 부부가 호주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금희는 2006년 중국과 몽골 여행 중 만든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나누는 대화>의 주인공이었다. 편집 작업을 하면서 금희가 부정적으로 보이는 게 걱정되어 일정 분량을 삭제했다. 가편집 영상을 본 금희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넣어도 괜찮다며 쿨하게 말했다. 최종 영상을 시사하는 자리에서 금희는 나 너무 못되게 나온다며 웃었다. 영상작업과 무관하게 금희는 항상 나를 챙겼고, 늘 고마웠다. 얼마 전 영상 통화로 만난 금희는 여전히 씩씩했고, 호주의 대학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식당 개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씩씩하고 용감한 금희가 그립다. 내게는 똘배 중 가장 믿음이 가는 제자였고 추억이 가장 많다. 언젠가 호주에서 이어갈 만남과 인연을 생각하며 금희와의 추억은 아껴두련다. 


2018년, 낯선 땅에서 송림이를 어렵게 만났다. 송림이는 거칠지만 순진하고, 힘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철없지만 귀여운 제자다. 송림이는 짧은 머리를 하고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누가 봐도 첫인상이 험상궂게 보였다. “머리가 왜 그러니?” “이렇게 해야 여기 애들이 무시하지 않아요.” 체력이나 싸움에서 지기 싫어했던 송림이는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할까 봐 거친 외모를 만들어 낯선 곳에서 스스로를 방어했다. 송림이의 다리에는 흉터가 있다. 어려서 어른 몰래 권총을 가지고 놀다가 자신의 다리에 격발 해서 입은 총상이다. 셋넷 시절에는 딴 놈이 먼저 먹을까 봐 익지도 않은 삼겹살을 입에 욱여넣기도 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을 송림이가 그립다.      


양미는 얌전하고 착하다. 행동이 올곧고 몸이 좀 약하지만 남학생들의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외모보다 마음씨가 더 매력적인 양미를 잊지 못하는 똘배들이 여럿이다. 2018년 런던에서 만난 양미는 어느덧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고 독학으로 공부해서 북유럽 대학에서 공부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양미 선영이와 바쓰(Bath)를 거쳐 맨체스터까지 여행했다. 15년 만에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300년쯤 되었을 영국식 고택에서 바비큐와 맥주를 마시면서 약속했다. 셋넷들과 다시 여기에 꼭 오자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2022년, 똘배(셋넷 전신 똘배학교, 2003-2004)와 셋넷을 알게 된 지 20년이 흘렀다. 첫 정(情)이라는 말, 내게는 셋넷 초기 만났던 똘배들이 첫 정(情)이다, 그때가 언제일런지 모르겠지만 호주로 이민 간 금희와 금천이를 만나러 불쑥 떠날 것이다. 양미를 만나러 북유럽을 느닷없이 헤매고 있을 것이다. 상영 샘이 또다시 내 귀에 거부할 수 없는 바람을 불어넣으며 길을 떠나자고 부추길 게 뻔하다. 그러면 나는 순박한 미숙 샘을 같이 가자고 꼬시게 되겠지. 우리의 셋넷 여행길에는 시원한 맥주가 빠질 수 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셋넷과의 인연과 만남은 한 편의 영화처럼 늘 내 안에서 설렌다.      



* 오원환 교수와 기획했던 미디어 영상 교육과 제작 작업에는 오교수의 후배들인 고려대 신방과 학생들이 여럿 참여해서 함께 만들었다. 그들은 다큐 작업을 위해 서해바다와 땅끝마을까지 마다하지 않고 동행하며 셋넷들과 인연을 맺고 우정을 쌓았다. 영화감독 방송 피디 소시민으로 살고 있는 그들이 그립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 9월 출간 예정인 셋넷 학교 두 번째 이야기 단행본에 실릴 글. 

* 사진 : 2008년 여름 탈남한 셋넷들을 찾아가는 섬나라 낯선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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