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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펭귄 Sep 19. 2022

검둥이와 아버지 지게

습작동화 : 내 친구 검둥이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하얀 구름이 선명했습니다.

검둥이가 집으로 처음 온 날 하늘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예뻤습니다.

검둥이는 잘생겼습니다. 튼튼한 네다리, 초롱초롱한 검은 눈, 빛이 나도록 검은 털은 가진 멋진 강아지였습니다. 배와 다리 안쪽에 자리 잡은 갈색 털은 검둥이의 매력을 더해 주었습니다.     


'해피'는 찬형이가 검둥이 이름으로 처음 떠올린 말입니다. 아쉽지만 해피는 동네 친구 재복이네 강아지 이름입니다. 해피보다 더 멋진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똘이’ ‘철이’ ‘마린보이’ ‘마징가’ ‘은하’ 멋진 만화 주인공은 다 떠올려봤습니다. 찬형이가 생각한 멋진 이름이 입에 붙기도 전에 검둥이는 자연스럽게 검둥이가 됐습니다.     


큰아버지가 잘생긴 검둥이를 마당에 내려놓고 간 날부터 찬형이는 검둥이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찬형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검둥이를 찾았습니다.

“검둥아!, 검둥아!”

“멍~”

찬형이가 대문 안에 들어서면 검둥이가 달려 나와 찬형이를 맞습니다. 찬형이는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검둥이와 마당과 뒤뜰 가릴 것 없이 뛰어다녔습니다. 한참을 놀고 땀범벅이 되고 나서야 찬형이는 하늘을 보고 눕습니다. 검둥이도 찬형이 옆에 엎드려 숨을 헐떡입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습니다. 검둥이는 계절이 지나는 속도보다 빠르게 자랐습니다. 이제는 사자보다 더 멋지고 강한 개가 되었습니다. 온 동네 개들은 검둥이를 보면 꼬리를 내립니다. 큰 소리로 짖지 않아도 달려가 물지 않아도 동네 개들은 검둥이와 눈이 마주치면 꼬리를 감아 내립니다. 고개를 숙이고 낑낑대며 검둥이를 피해 먼 길을 돌아갑니다.     


찬형이는 그런 검둥이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검둥이는 골목대장입니다. 찬형이도 골목대장으로 통합니다. 작은 동네 몇 안 되는 또래 아이 중에서 찬형이가 제일 싸움을 잘하는 아이로 통합니다. 키는 작지만, 악바리 근성으로 싸움에 지지 않습니다.     


찬형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검둥이가 달려와 맞습니다. 검둥이가 앞발을 번쩍 치켜들면 찬형이 키를 훌쩍 넘어섭니다. 검둥이는 더 이상 지난가을 어린 강아지의 모습이 아니지만 찬형이는 여전히 검둥이가 귀엽습니다. 검둥이를 안고 풀숲으로 넘어져 뒹굴면 레슬링이 시작됩니다. 찬형이는 검둥이에게 여건부의 알밤까기도 날리고 김일의 박치기도 퍼붓습니다. 

“받아라! 알밤까기!. 파파 팍팍!!”

“컹컹….”

“이번엔 김일의 박치기다. 얍!”

“멍, 멍….”


검둥이는 찬형이의 팔을 입으로 물고 방어합니다. 찬형이가 팔을 빼내려고 검둥이 입을 벌리면 검둥이는 뱅그르르 뒹굴기를 합니다. 검둥이는 기술이 좋습니다. 날카로운 이빨로 찬형이를 물어도 찬형이 팔에는 눌린 자국만 있을 뿐 상처가 나지 않습니다. 풀밭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으면 검둥이가 다가와 찬형이의 뺨을 핥아줍니다. 입술, 귀, 코, 눈까지 세수하듯이 핥아줍니다. 검둥이의 혓바닥은 부드럽고 매끄럽습니다. 소꿉놀이 친구였던 창순이 손바닥처럼 보드랍습니다. 검둥이 혓바닥의 매끄러운 느낌이 좋습니다. 외양간에서 느껴본 송아지의 혓바닥은 너무 거칠어서 두 번 다시 만지지 않습니다. 찬형이는 검둥이가 매일 핥아줘도 싫지 않습니다.     


찬형이는 검둥이가 가장 먼저이지만 검둥이는 찬형이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집안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검둥이 밥을 챙겨주고, 개울 건너 들에도, 산에도 데려가 줍니다. 처음 가보는 곳은 항상 새롭습니다. 나무 밑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는 것도, 바위틈으로 도망가는 작은 곤충과 짐승들을 쫓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검둥이는 하루 중에 아버지를 따라 들에 나가는 시간이 제일 좋습니다.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면서 아버지는 산에 가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겨울 동안 소들이 먹을 꼴과 땔감을 미리 마련해두기 위해서입니다. 석양이 잘 익은 홍시색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나서 산 아래로 내려앉으면 저 멀리 동구 밖에서는 커다란 풀동산이 집을 향해 천천히 다가옵니다. 


검둥이의 꼬리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찬형이는 검둥이의 표정만 봐도 아버지가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검둥이의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혓바닥에 침이 고입니다. 아버지는 앞동산 보다 크게 꼴을 지게 한가득 싣고 집으로 다가옵니다. 찬형이와 나란히 앉아있던 검둥이는 담장 위에서 풀쩍 뛰어내려 아버지에게 달려갑니다. 찬형이도 검둥이를 쫓아 달려갑니다.

“검둥아, 기다려 같이 가!”

“멍멍!”


검둥이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가 이내 아버지에게 달려갑니다. 찬형이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검둥이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검둥이는 어느새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아버지 지게 주위를 돕니다. 

“저리 가, 이 녀석아. 넘어지겠다.”

“멍멍!”

검둥이는 아버지 걸음에 방해되지 않게 원을 크게 빙빙 돌고 돕니다. 아버지는 검둥이를 쓰다듬어 주지도 반갑게 놀아주지도 않는데 검둥이는 아버지를 좋아합니다. 찬형이는 아버지보다 더 큰 지게를 보며 아버지는 세상 누구보다 힘이 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뒤뜰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한 두 개 감이 남아있었던 어는 저녁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찬형이는 심심했습니다. 검둥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집에 없었습니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느라 바쁘십니다. 밥 짓는 연기가 마당을 가득 채웁니다. 마당을 빙빙 돌아 하늘로 날아가는 연기가 찬형이를 놀리는 것 같았습니다.

‘쳇! 검둥이만 오면 넌 한주먹도 안돼!’

검둥이는 어디로 갔을까? 왜 안 오지? 찬형이는 검둥이가 보고 싶습니다.

“엄마, 검둥이는 어디갔어유?”
 “니 아부지 따라 들에 가껐지~”

“아부지는 어느 들에 갔는 데유?”

“몰러~ 저 건너 구렁뱅이 산에 가껐지~”

“언제 온데유?”

“곧 오겄지, 해떨어지잖어~”     

해가 재너머로 넘어갔지만, 검둥이와 아버지는 오지 않습니다. 찬형이는 검둥이가 곁에 없어 불안했지만, 검둥이가 아버지와 같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버지도 검둥이와 같이 있어서 안심입니다.


안방에는 저녁상이 차려졌습니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방안에 가득합니다.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나지만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찬형이가 대문 밖으로 나가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멀리 개울가 쪽에서 발소리가 들립니다. 아버지가 검둥이와 함께 걸어오고 있습니다.

“검둥아!”

찬형이가 아버지에게, 검둥이에게 달려갑니다.

“뭐 하러 나와 있어, 들어가 얼른~”

“왜 이리 늦었어유? 멀리 갔어유?”

“가서 들려줄게, 큰일 날 뻔했구먼~”

아버지가 검둥이 머리를 툴툴 흔들어 줍니다. 검둥이는 혀를 내밀고 차분히 걸음을 옮깁니다.     


“이놈이 여간 똑똑한 놈이 아니여, 오늘 내가 산에서 나무를 하고 내려오는데, 검둥이가 안 보이는 겨, 분명히 산에 갈 때 따라왔는데,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먼저 집에 가 있겠지 하며 집에 왔지~, 근데 검둥이가 안 보여, 구석구석을 다 뒤져도 안 보이는 겨, 그때 감이 딱 왔지, 다시 나무하던 곳으로 다시 간 겨. 여기저기 다 뒤져보고 검둥이 이름도 외쳐보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겨. 그러다가 그만두고 집에 오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검둥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어. 그래서 부랴부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봤지. 그랬더니 검둥이 저놈이 나무 밑에 웅크리고 있느 겨. 불러도 올 생각을 안 햐. 가까이 가봤더니 검둥이 저놈이 안 움직이는 이유가 있더라고. 글쎄 목에 노루 잡는 올무가 감겨있는 겨. 웬만한 짐승들은 목에 올무가 감기면 살려고 미친 듯이 날뛰다가 목이 졸려 죽는데 검둥이 저 녀석은 움직이면 올무가 제 목을 조인다는 안거지. 그러니까 아무리 불러도 움직이지 않았던 겨. 가만히 있으면 주인이 자기를 찾아올 거라고 믿은 거지. 사람보다 난놈이여 저놈이”   

  

저녁밥을 먹고 나서 아버지가 검둥이와 있었던 얘기를 해줍니다. 검둥이는 아버지 얘기를 듣고 있는 건지 마루 밑에 편안히 엎드려 있습니다. 찬형이는 검둥이에게 다가가 목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잘했어! 우리 검둥이”

“고생했어. 검둥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올무를 놓는 아저씨들이 싫었습니다. 산에 사는 토끼와 노루를 잡는 아저씨들 때문에 검둥이가 죽을 뻔했습니다. 찬형이는 산에서 올무를 보면 모조리 없애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찬형이는 밤이 되면 무섭습니다. 특히 달도 별도 잠든 깜깜한 밤중에 화장실에 가는 것은 정말 무섭습니다. 시골집이라 화장실은 대문 바로 옆에 있습니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됩니다. '뚜르르' 뚜르르' 풀벌레 소리가 곳곳에서 울리고, 산에서는 부엉이가 '부우~엉, 부우~엉'하고 울어댑니다.      


깜깜한 화장실에 혼자 가는 것은 너무 무섭습니다. TV 속 ‘전설의 고향’에서 보았던 구미호나, 구렁이 귀신, 처녀 귀신들이 나타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흔들리는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한 손으로 바람을 막으며 조심조심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좌우를 살피고 겨우겨우 볼일을 봅니다. 촛불이 실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벽면에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립니다. 

“귀신아, 썩 물러가라. 여기 사람이 있다!”

목청 높여 소리쳐 봅니다. ‘귀신은 아니겠지’, ‘도깨비가 세상에 어디 있어’ 

용기를 내 보지만 찬형이의 심장이 콩닥콩닥 빨라집니다.

“부스럭, 부스럭”

찬형이의 머리털이 하늘을 향해 솟구칩니다. 심장이 방망이질을 시작합니다.


상상 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화장실 밖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분명합니다. ‘스슥, 터턱, 부스럭부스럭’ 소리는 화장실 문 앞에서 멈췄습니다. 찬형이의 심장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습니다. 찬형이는 두 손으로 촛불을 꼭 움켜잡았습니다. 

“삐~~익. ” 화장실 문이 열립니다.

“으~아~ 악!!” 찬형이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멍~ 멍~" 검둥이 소리입니다. 찬형이가 살며시 눈을 뜨니 검둥이가 꼬리를 흔들며 서 있습니다. 

“으앙!! ” 찬형이 눈에서 눈물이 쏟아집니다.     

찬형이는 더 이상 화장실이 무섭지 않습니다. 풀벌레 소리도, 부엉이 소리도 무섭지 않습니다. 검둥이가 옆에 있으면 세상 무엇도 겁나지 않습니다. 찬형이는 검둥이와 촛불로 그림자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검둥아! 검둥아!"

검둥이가 저 멀리서 꼬리를 흔들며 달려옵니다. 찬형이는 여전히 검둥이가 좋습니다. 검둥이와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신이 납니다.   아버지가 빈 지게에 찬형이를 태워줍니다. 찬형이는 아버지 지게 위에 앉으면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지게 위는 또 다른 세상입니다. 검둥이가 아버지와 찬형이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뛰어갑니다. 

“멍 멍…. ” 앞으로 가다 멈춰서서 찬형이를 보며 우렁차게 짖습니다.

찬형이는 아빠 지게 위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검둥이와 함께 가는 이 길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길입니다.     

저 멀리 붉은 석양도 환하게 웃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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