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人 7
올 여름 발암물질 증정품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스타벅스 매장에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발암물질 사태로 많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글로벌 브랜드의 명성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홍보 담당자의 고민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타벅스가 올여름 e프리퀀시 증정품으로 여름 캐리백을 소비자들에게 나눠줬을 때 제품 이상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스타벅스 코리아는 사건 해결보다는 발뺌과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거센 여론의 비판에도 쉽게 바뀌지 않던 스타벅스 코리아의 태도는 그룹(신세계)이 나서 감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연말 인사에서 CEO 교체라는 큰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스타벅스의 서머캐리백 발암물질 사태는 글로벌 브랜드의 명성에 비해 미숙한 여론 대응으로 화를 키운 사례입니다.
스타벅스는 지난 2022년 5월 10일부터 서머캐리백 증정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월 초 조선닷컴에서 ‘서머 캐리백 악취’ 민원을 보도했습니다. 서머캐리백을 받은 사람들이 악취로 고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선닷컴은 비슷한 내용이 온라인상에 많이 게시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닷컴의 취재에 대해 스타벅스는 “캐리백 제작과정에서 일부 상품이 원단 인쇄 염료의 자연 휘발이 충분하지 못해 나쁜 냄새 현상이 발생했다”라며 “인체에는 무해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스타벅스는 이상한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스타벅스 서머캐리백의 나쁜 냄새 현상이 사라질 때쯤인 7월 21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하나의 글이 게시됐습니다. FITI 시험연구원이라고 밝힌 게시자는 “본인이 서머 캐리백 관련 시험을 했고,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습니다. 스타벅스가 나눠준 서머캐리백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다는 내용은 온라인에서 급속하게 확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내용을 언론에서도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타벅스는 발암물질이 검출된 서머캐리백을 고객들에게 증정품으로 제공한 이유를 묻는 언론 취재에 “가방과 관련해서는 포름알데히드 수치 기준이 없어서 유해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스타벅스의 해명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가방을 기타 제품으로 분류해 유해 물질 기준치를 설정하지 않습니다. 쿠션이나 의류 등 피부와 항시 접촉하는 제품들과 달리 가방은 일시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유해 기준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스타벅스가 유해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한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폼알데하이드는 1급 발암물질로,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호흡기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악취로 고생했던 고객들의 사례처럼 발암물질은 이미 고객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문제는 스타벅스 코리아는 이미 발암물질 검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머캐리백 행사 전인 4월에 가방 제조사가 캐리백에서 검출된 화학물질 관련 보고서를 스타벅스 코리아에 제공했고, 해당 보고서에는 포름알데히드 검출 내용이 포함돼 있었던 것입니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스타벅스는 보상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서머캐리백을 음료 3잔으로 교환해준다는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지했습니다. 하지만 발암물질에 대한 사과문은 없었습니다. 부정적인 이슈가 확대되면 언론뿐 아니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위기관리지만 스타벅스 코리아는 사과문 한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공지하는 것이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관리의 기준에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스타벅스 글로벌 기준을 몰라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국내 여론을 너무 안일하게 평가한 것 같습니다.
결국 스타벅스 코리아의 이슈는 대주주인 신세계그룹과 정용진 부회장으로 옮겨갔습니다. 신세계그룹은 발암물질 이슈가 그룹으로 전파를 막기 위해 스타벅스 코리아에 대한 전반적인 감사에 착수하겠다는 대책을 제시합니다. 그제야 스타벅스 코리아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서머캐리백 대체상품을 새롭게 제시합니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대체상품을 제시한 후에야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이사는 국회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출석해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연말 인사에서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습니다. 신세계그룹과 정용진 회장의 명성에도 흠집이 한 겹 추가됐습니다.
그리고 커뮤니티에 제보 글이 있기 전에 포름알데히드 검출 사실은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이사까지 보고됐다는 내용도 국정감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발암물질을 포함된 사실을 알고도 소비자게 서머캐리백을 나눠 준 것입니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도덕성과 경영진의 태도는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동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스타벅스는 글로벌 기업이면서 국내 최고의 유통기업인 신세계그룹의 계열사이지만 이번 서머캐리백 발암물질 검출에 대한 대응은 미숙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발암물질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은 사법적인 판결에 집중됐을 것입니다. 경영진은 소비자 사과를 통해 여론을 진정시키기보다는 ‘법적책임’을 지지 않는 전략을 취했을 것입니다.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포함됐음을 파악하고도 가방에는 유해 물질 기준치가 없다는 것을 악용했을 것입니다. 제품을 기획한 실무부서에서 경영진에게 거짓된 정보를 보고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무자와 책임자는 제품 리콜을 통해 회사에 손해를 끼쳐 인사고과에서 나쁜 결과를 얻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한 두 가지가 이유가 쌓여 부정적인 이슈는 점점 확대됩니다.
이슈의 초기 대응은 법무나 관련 부서가 아니라 홍보팀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경영진도 홍보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론 재판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홍보팀에 권한을 위임해줘야 합니다. 과거 정태영 현대캐피탈 회장이 고객 DB 해킹 사건 때 임직원에게 한 말을 스타벅스 코리아가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앞으로 시시각각 상황이 변할 텐데 일일이 나한테 보고하려고 하지 말고 비상 대책본부가 중심이 돼서 대처하라” “책임은 내가 진다.”
위기 상황에서 언론의 부정 기사를 막지 못한다며 홍보팀을 탓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확실한 권한위임 없이 책임만 부여된다면 홍보팀이 나서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말실수 하나가 치명적인 부메랑이 돌아올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행동과 메시지에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삼성그룹처럼 평상시에도 오너뿐 아니라 경영진이 홍보에 힘을 실어주는 기업도 부정적인 이슈를 모두 막지는 못합니다. 부정 이슈는 출입 기자들이 아닌 사회부 기자들이 취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에서는 현재의 홍보자원과 맨파워를 점검해 두고 이슈 발생 시 상황을 사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여론 재판은 ‘법적책임’과는 무관합니다. 기업의 행동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여론은 비판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움직이는 여론과의 싸움에서 법전을 가지고 싸울 수는 없습니다. 법적인 책임은 여론재판 이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여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여론 재판이 본격화되기 전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 낫습니다. 이후의 사법적인 영역은 법무적인 논리로 대응하면 됩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분명히 여론 재판에서 무서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국정감사에서 수모를 당했을지언정 법적인 책임은 없을 것입니다. 대표이사가 물러나는 문책성 인사만이 있었습니다.
스타벅스 매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신세계 그룹 차원에서 빠르게 위기 대응에 나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타벅스 커피가 여전히 잘 팔린다고 위기 대응의 실패가 브랜드 매출 하락과 큰 상관성은 없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그룹 차원의 대응이 조금 더 늦었다면 스타벅스뿐 아니라 이마트의 실적하락도 감당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