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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펭귄 Aug 11. 2022

고등어는 야채 가게에서 팔지 않는다

홍보+人  1.

 꽤 오래전 일입니다. 나는 패션 회사 홍보담당자로 일했었습니다. 당시 모시던 CEO가 그룹사에서 운영하던 계열사 마트 수산물 코너에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해당 마트의 수산물 매장은 주부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담당자의 즉흥적인 판단에 따라 시간대별로 상품진열, 할인행사 등을 결정하고 진행하면서 수산물 코너 매출이 급상승했다고 합니다. 계열사 경영진들에게 생선판매대를 방문해 비결을 배우라는 미션이 떨어졌고, 홍보담당자는 CEO의 마트 방문을 홍보해야 하는 임무가 부여됐습니다. 패션 회사 사장님이 백화점도 아니고 서울 외곽의 대형마트 수산물 코너를 방문하는 일정을 어떻게 홍보해야 할까요? 홍보 방향을 잡지 못해 여러 날을 고민했습니다. 몇일을 고민하다 주 단위 빠른 기획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SPA 브랜드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습니다.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는 분기 단위 제품기획을 했지만 자라(ZARA) 같은 외국에서 성공한 SPA브랜드는 주 단위 제품기획으로 매주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며 전 세계에서 패스트패션의 붐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패션 회사 사장이 생선가게에 간 이유’라는 제목과 CEO와 임원들이 싱싱한 고등어를 들고 있는 살펴보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 자료를 첨부해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보도자료 본문은 신선도를 생명으로 하고 제품 수명이 짧은 수산물을 파는 생선가게의 마케팅 기법을 배운다는 내용을 넣었습니다. CEO의 발언을 넣어 뉴스 보도의 신뢰성을 추가했습니다.      


당시 이 보도자료는 고등어를 들어 살피는 CEO의 사진과 함께 언론사의 지면에 실리며 고객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임무 해결뿐 아니라 언론홍보까지 됐으니 회사로서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은 셈입니다. 언론사에서 해당 보도자료를 지면에 나름 비중 있게 실어 준 이유는 내용이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행에 민감하고 세련된 것으로 인식되는 패션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 생선 코너를 찾아 마케팅을 배우겠다는 자세가 이색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패션 회사는 국내 패션기업 등 중 상위 3위권에 들 정도 인지도 있는 기업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CEO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보도자료의 신뢰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습니다.     


유명 패션 회사의 사례를 들었지만, 언론홍보로 고민하는 중소기업들의 사례를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정말 괜찮은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홍보를 새로 시작하는데 언론사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거나, 회사의 이미지를 위한 보도자료를 보내도 언론에서 외면한다는 고민입니다. 언론 기사를 위해 홍보 대행사를 쓰기도 하고, 비용 절약을 위해 전문 홍보 인력이 아닌 마케팅부서 담당자들이 직접 홍보를 하는 예도 있습니다. 홍보의 애로점을 듣다 보면 홍보를 새로 시작하는 곳의 어려움도 이해하면서도 홍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언론홍보는 기업과 언론의 신뢰 형성에서 시작됩니다. 보도자료를 보낸다고 언론에서 모든 자료를 기사로 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도자료는 기업이 보내지만, 기사는 언론사의 콘텐츠이고 언론사와 기사를 쓴 기자의 신뢰와 가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언론사도 보도자료가 신뢰성이 있는 자료인지, 독자에게 제공할 정보가 담겨 있는지, 기사로서 가치가 있는지 등을 신중하게 검토합니다. 그리고 부서장에게 기사 보고를 올리고 언론사가 추구하는 콘텐츠에 맞는다면 기사로 작성됩니다. 신뢰가 가지 않는 기업의 보도자료를 기사화하지 않습니다.      


언론홍보를 시작하려면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언론사 네트워크부터 단계적으로 확장해 가며 홍보를 시작해야 합니다. 보도자료를 전달할 때도 언론사의 출입부서와 출입 기자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고등어를 채소 가게에서 취급하지 않듯이 기자들도 출입하는 산업에 따라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분야가 다릅니다. 같은 유통부라도 누구는 백화점 중심의 기사를 쓰고, 누구는 동대문 시장 기사를 씁니다. 누구는 대기업군 패션기업을 다루고, 누구는 중소기업을 취재합니다. 우리 회사에 관심이 있는 기자를 파악하고 연락하는 것이 홍보의 첫걸음입니다.     


기업 관련 기사를 다루는 언론사 부서는 보통 산업부, 금융부, 유통부, IT부, 중소기업부, 부동산부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종합일간지는 이보다 좀 더 단순하고, 경제지나 전문지 같은 경우는 더 세부적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홍보를 새로 시작하면서 자신이 속한 기업이 어느 부에서 취재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홍보를 처음 시작하는 기업이 인터넷에서 해당 기업이나 이슈와 비슷한 기사를 쓴 기자의 이메일 주소를 파악해 보도자료를 보내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언론사 네트워크가 없는 기업에서 홍보를 처음 시작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언론사 입장에서는 평소 연락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기업이 보낸 자료가 곱게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눈에 띄는 신제품이나 아이디어라면 기사 아이템으로 채택될 수도 있겠지만 열에 아홉은 채택되지 않고 휴지통으로 보내집니다.      


기사는 게이트 키핑이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일단 취재기자의 손에서 한번 수정되고 취재기자의 윗선인 팀장과 데스크를 거치면서 다시 고쳐져 독자에게 전달이 됩니다. 보도자료가 기사가 되려면 기자와 데스크에게 어필해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종합일간지 산업부에서 패션기업을 출입하던 기자에게 전해 들은 얘기입니다. 그 기자가 한 패션기업을 취재해 기사를 썼다고 합니다. 취재했던 기업은 남성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여성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유명 상표를 다수 보유한 기업입니다. 그 기업은 언론에 잘 소개되지 않았었기에 기자는 열심히 기업과 브랜드에 대해서 취재해 기사를 작성해 데스크에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중년의 남성 데스크는 기업 이름도 생소했고, 브랜드도 처음 듣는 것들 뿐이라며 기사 아이템으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이트 키핑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사례입니다.  

   

보도자료가 기사가 되려면 기자와 언론사의 검열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낯설고 생소한 제품이나 기업이라면 자신들이 누구인지 좀 더 자세히 어필해야 합니다. 신문 지면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기사가 매일 보도되는 이유를 알면 쉽게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는 삼척동자도 아는 브랜드입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전자와 자동차 업종을 대표하는 기업이면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합니다. 해외에 나가면 삼성과 현대는 알아도 ‘(South) 코리아’를 모르는 외국인이 많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갖추고 관련 산업에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와 현대차 브랜드의 기사가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의 기사가 매일 언론사에 비중 있게 보도되는 이유는 기업의 인지도도 높고, 삼성전자가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삼성그룹은 고 이건희 회장이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부터 언론홍보에 각별한 공을 들여왔습니다. 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오랜 기간 쌓아온 언론과의 관계 형성이 삼성전자의 언론홍보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중소기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언론홍보를 하기 위해서는 내부인의 시선이 아니라 외부인이 되어 제품과 기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제품이 국가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이나 성능을 가졌는지,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큼 새로운 것인지, 그 제품에 관한 정보와 해당 기업의 정보가 신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 것인지를 취재하는 기자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홍보의 첫걸음을 시작했다면 꾸준해야 합니다. 단발성 보도자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언론사의 문을 두드리고, 네트워크의 폭을 확대해야 합니다. 인지도 낮은 기업이 언론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기업이 진정성을 담아 언론에 다가간다면 언론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단기간에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보의 한두 걸음이 쌓이고 쌓이면 언론홍보가 가지고 있는 저력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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