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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Sep 03. 2022

행운의 편지

뉴스레터 <막차> 1호 백업 

모두가 인정하겠지만, 술은 흥미롭고 위험한 음료이다. 아마 이 글을 읽게될 독자들은 술을 마시거나 아예 마시지 않거나 즐기거나 즐기지 않거나의 범주들 사이에 어중간하고 확실한 위치에 속해 있을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하루종일 쌔빠지게 머리와 몸을 쓰고 기가 쭉쭉 빨린 상태에서 친구와 부딪히는 시원한 소맥 한잔을 떠올릴 수 있다면 당신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맞다. 제정신의 사람이면 집가서 쉴 생각이 먼저 들어야 한다.


참고로 나는 종종 제정신이 아니다. 슬프게도 나는 내가 임의로 나눈 범주에서 술을 많이 마심-술을 많이 즐김의 영역에 속해있다. 그러나 의외로 혼술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 그러면 나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며 혼자 마시는 술보다는 술자리를 좋아하는 거라고 변명하곤 한다. 사실 술자리에 대해서는 아주 까다롭고 면밀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뒤로 미루자.


나의 나이, 환경, 성장배경, 현재 근황을 포함해 일정량의 정보량을 가진 친한 친구 한 명 이상을 떠올려보자. 주량이 부족해도 술과 맛있는 안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좋다. 당신은 적당히 시끄럽고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어느 술집의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너무 흥겨워 따라 불러야 하거나 귀가 터질 것 같은 BGM도 아니다. 조명은 노란 빛으로 아늑하고 버너 위에선 따뜻한 전골 국물이 화수분처럼 무한정 끓어 오르고 있다. 알코올 기운이 피곤함과 포개질 즈음 친구 하나가 말을 꺼낸다. “야, 이런 얘기 해도 될 지 모르겠는데...” 그러자 옆에 있는 친구가 급히 빈 잔에 술을 채워 주며 말을 잇는다. “되지. 완전 되지.” 당신은 일찍 귀가하려던 마음을 접고 빈 소주병 하나 들어 두드린다. “사장님 여기 이거 하나만요.”


도대체 ‘이런 얘기'란 무엇인가? 2차 이상의 술자리에서만 등장하는 한정판 시크릿쥬쥬酒酒에디션 멘트. (그리고 한정판의 대부분은 1차 판매에서 오픈되지 않는다.) ‘이런 얘기'가 등장하는 순간 편한 귀가는 그른데다 오랜 시간 화장실 줄을 서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먼저 입을 뗀 친구는 아마도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흥미로워 할 만한 주제를 따끈한 안주로 내어놓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대상에 음험한 욕망을 잔뜩 덧붙인 이야기일 수 있고, 나만 모른 척하면 조신한 이미지를 지킬 수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일 수 있으며, 공통 인물에 대한 불편함이나 짜증일 수도 있고, 일종의 절절한 사랑 고백일 수도 있다. 결국 ‘우리끼리 완전 해도 되는 이런 얘기'는 막차 혹은 첫차를 울리는 신호인 것이다.


술을 마시면 곧잘 말을 조리있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숨겨 왔던 얘기를 술술 풀어놓게 되고(혹은 그런 것처럼 느껴지고)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감성적인 그 상태로 깜빡 잠들고 일어나면 해독되지 않은 간만 남긴 채 모든 문장이 날아가버린다. 아까워 아까워. 술 먹고 얘기만 하는거 제발 뭐라도 쓰자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싹싹 빌다보니 한 분이 걸려 들었고 이 지경까지 왔다. 막차 타기 이십오분 전 흘려보내는 ‘이런 흥미롭고 위험한 술-을 포함한 중구난방-얘기'를 취한 상태로 조금 써보려고. (지금은 제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이 뉴스레터는 어느 술집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2주에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3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7통을 숙취 없는 술기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복사를 해도 좋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사실 안 보내도 됩니다. 그냥 재밌게 읽어만 주세요. 감사합니다.


2022.04.20




뉴스레터 <막차>는 술을 사랑하는(사랑했던!) 두 사람, 

버드와 이저가 매주 보내는 가벼운 음주사담 뉴스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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