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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Sep 07. 2022

어린이가 어른이가 된다는 것은

뉴스레터 <막차> 3호 백업

어김없이 가정의 달이 찾아왔다. 유난히 5월은 날씨도 좋고 징검다리 휴일도 많으며(어린이 여러분, 부처님 감사합니다.) 사람 만날 일도 많은 그런 달인 것 같다. 당장 이번주만 해도 5일부터 주말까지 푹 놀고 먹을 계획을 세운 우리 어른들이 많을테지. 반드시 독자 여러분들의 모든 계획에 찬란한 날씨와 승리한 눈치게임이 펼쳐지길,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어린이라 불릴 사회적 나이도 지났고 ‘난 아직 애기인데! 응애!’하고 입은 외쳐도 눈물은 흘리지 않는 멋지고 단단한 어른이 되어있음을 안다. 그래도 괜히 어린이날 만큼은 소망하고 싶은 것이다. 나도 어린이인데 누가 선물 하나 안주려나. 이제 어린이날의 유일한 선물은 법정공휴일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날에 어디라도 갔다간 ‘진짜'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기도 못펴고 다시 돗자리를 접는 사태가 벌어지겠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어른들만이 출입가능한 술집으로 간다.(이상하게 비장해 보이는 것은 사실임.)


어린이와 어른이의 경계 사이에서, 나는 언제부터 어른이 되었을까. 단순한 동심으로 어린이날을 기다리던 마음에서 이번 어버이날은 뭘 해야하지,하는 고민이 더 커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 몇 세부터 이렇게 살라고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만 19개월의 조카가 있는 나는 슬슬 어린이날 선물을 준비해야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이쯤에서 어른의 음료와 함께 회상해보자. 어린이 이저는 믿기지 않겠지만(?) 울음이 많았다. 너 그렇게 울다간 네모입 된다!가 주된 놀림거리였던 이저는 별일 아닌 것에도 툭하면 울곤 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앞에 억지로 나서게 하면 울었고 유치원 발표회 때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울었고 반장 선거에서 떨어져 울었고... 다 얘기하려면 쪽팔리지만 뭐 기타 등등.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울음을 멈추었는데, 네모입이 되기 싫어서라기 보다는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떠올려보니 문득 그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남들에게 긴장을 숨기고, 슬픔을 숨기고, 어떤 고통과 어려움을 숨기는 일. 그렇게 나는 등떠미는 신파에도 울지 않게 되었고 웬만한 슬픔에도 견디는 사람이 되었다.


눈물이 없다는 것은 전혀 자랑이 되지 못한다. 인간은 울음으로부터 탄생하고, 눈물로 부모에게 자기 의사를 호소하다가 건조한 언어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니체의 말처럼 언어로 인해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탓이다. 오히려 눈물이 밀려와 말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은,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은 솔직한 말을 하기 위해 술의 힘을 빌려야하고, 울지 못해 끙끙 앓다가 잔뜩 만취해 울어버린 적도 간혹 있다. 나는 어린 아이처럼 나를 안아주는 누군가의 앞에서 서럽게 울어볼 수 있다면 생각한 적도 (사실 아주 많이) 있다.


어른아이라는 말이 있다. 몸은 커버렸어도 영혼은 아이인 그런 삶을 일컫는. 세상은 성장이 정답이고 성숙이 올바른 길이라고 제시하지만 언제까지고 나이만 먹는건 억울하지 않은가. 가끔은 어린이처럼 사는게 어때서! 울고, 웃고, 성숙하지 못해 감정적으로 서툴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보기로 한다. 세상은 철없고 아이같다 나무라도 그렇게 살아보기로 한다.


2022.05.05



뉴스레터 <막차>는 술을 사랑하는(사랑했던!) 두 사람, 

버드와 이저가 매주 보내는 가벼운 음주사담 뉴스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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