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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Sep 08. 2022

Heyyyyyy, what's your hobby?

뉴스레터 <막차> 6호 백업

부담이 간대도 어쩔 수 없지만 새로운 그룹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자기 소개가 필요한 법이다. 지금껏 살며 솔찬히 많은 자기 소개를 해봤지만 묘하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바로 '취미가 뭐에요?'라는 질문이다. 특히나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한다면 무조건 이 질문의 대답을 찾아야할 것이다. 그래서, 이저 씨는 취미가 뭐에요? 저요? 그 순간, 독서, 음악감상, 영화감상 세 가지가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음, 요샌 넷플릭스를 봐요. 마블도 좀 좋아하고...(라고 대강 대답하고 넘어가는 독자분들이 아주 많을테지.)


넷플릭스(를 포함한 대여섯개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n천원씩 기부하며 이 시대의 영화, 예능, 드라마 콘텐츠가 풍요의 초과임을 깨닫는 일)를 본다는 사실이 절대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진짜'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저는 사회적 체면을 위해 다시 한번 머뭇거린다. 그러면 어렴풋이 춤을 추는 남자들이 떠오르기도. 아, 제 취미요. 단지 즐거움을 위해 하는 취미. 바로 아이돌 덕질이다.


처음엔 아이돌에 빠지게 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원래는 포크나 밴드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것마저 음악감상이라는 대분류의 취미 영역으로 남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쉽나. 그래서 나는 퍼포먼스와 음악을 결과물로써 선취하고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는, 상당히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넓고 깊은 케이팝 세계에 뛰어들었다.(돈 쓰고 밤새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같은. 근데, 될리가 없었다.)


끊임없이 이미지를 보여주는 세계에서 패배하고 만 것이다. 이 모든건 결국 잘났고 예쁘고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으며(상당히 주관적인 표현임을 인지하고 있음.) 나와는 너무도 다른 인간에게 끌리는 욕망에서 기인한 것이구나. 그래. 그냥 해보자. 하다보면 재밌겠지. 그렇게 ‘아이돌 보기’는 마음에 끌려 일정한 방향으로 쏠리는 흥미, 그야말로 취미趣味(이자 趣美인)가 되버린 것이다. 이저는 이제 8년째 케이팝 산업의 성실한 소비자다.


덕질에 대한 나의 역사는 제법 화려하다. 그러니까 어떻게 아이돌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부터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이번 호에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아이돌 덕질이야말로 내 모든 인생 취미의 집약체로써 삶이 돌아가는데에 제 기능을 담당한다. 이로써 부가적인 취미는 주로 아이돌로부터 파생되고, 그렇게 탄생한 나의 새 취미는 본질적 취미의 연막이 된다.


그렇게 수년 동안 아이돌 덕질을 핑계로 공연을 보러다니고, 친구를 사귀고,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니고, 외국어를 배우고, 원데이 클래스를 다니고, 운동을 시작했다. 단지 굿즈를 사겠다는 일념으로 몸으로 때워가며 공연장 앞에서 밤을 새보고, 관심도 없던 터프팅 클래스에 등록해 액자를 만들고, 어학원에 등록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을 여행의 동반자로 선택하고, 삼삼오오 모여 컴백 영상을 보고, 공연의 에너지를 이대로 집으로 가져갈 순 없다며 술집에서 술을 진탕 마시기. 어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관계에서 가까운 나의 행복과 재미를 찾는 일들. (최근에는 모 멤버가 했던 플로팅 요가가 너무너무 하고 싶어졌다.)


덕분에 이제 나는 선뜻 내 얘기를 하기 부끄러운 자리(버드는 기억할지도 모르는)에서 “실은 요즘 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라며 흥미롭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꺼내고, 일본 소도시의 끝장나는 한달 여행기(알고보면 공연장 투어인)를 풀어줄 수 있게 되었다. 하나씩 해나가다보니 외국어 배우기나 운동이 진짜 취미가 되어버렸지만. (이 자리를 빌어 생존형 일본어회화를 마스터하게 한 샤이니, 인생에 그닥 써먹을 일도 없는 HSK를 따게 한 WayV의 윈윈, 태국도 못가본 채 태국어를 배우게 한 텐 치타폰 리챠야폰쿨과 토플 공부를 시작하게 한 세븐틴의 조슈아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가끔은 샤워를 하다 7개국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사람, 취미 얘기를 하려다 너무 멀리가서 TMI 푸는거 아냐?! 싶겠지만, 맞다. 내 대부분의 경험에는 주로 덕질이 선행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위해 6회만에 밑밥 한 번 깔아보는 것이다. 중요한 건 순수하고 단순하게 사랑하는 일이 있다는 것. 살아가면서 흥미를 가지고 기울어 한데 마음을 쏟는 일이 많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술 한잔 하는건 더욱 즐거우니까.(이 사람들 덕분에 마신 술이 수십 궤짝이다!) 또 때로는 이런 인연이 삶의 중요한 포인트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아이돌을 사랑하는 빠순이이고, 덕후이고, 누군가의 팬이다. 비록 아무리 좋아한대도 힘에 부치는 일이 간혹 있지만(시간과 돈,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덕질이고 취미고 눈에 보일리가.) 아마 내 사랑이 강제로 폭파되지 않는 한 이 본질적 취미는 앞으로도 취미의 샘, 원천이 되어주지 않을까.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래서, 여러분에게 다시 묻는다. งานอดิเรกของคุณคืออะไร?(응언어디-렉-컹쿤-드-아라이? : 당신의 취미가 뭐에요?)



2022.05.25


뉴스레터 <막차>는 술을 사랑하는(사랑했던!) 두 사람, 

버드와 이저가 매주 보내는 가벼운 음주사담 뉴스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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