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운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색다른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운동을 미룬 덕분에 인바디가 '허약형'으로 돌아갔다. 며칠 신경 쓸게 많아서 잘 안 챙겨 먹은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좀 슬펐다. 그래프를 보니 작년 5월쯤이랑 수치가 얼추 비슷해졌고 '일반형'에서 '튼튼형'으로 갔다가 순차적으로 허약형으로 내려온지라 허탈했다. 약 1년 정도 운동해 온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올 겨울은 초봄까지 자잘 자잘한 잔병치례를 달고 살고 있다.
요즘 나의 길티 플레저는 <이혼 숙려캠프 새로고침>이다. 한 때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지만, 이내 서로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이들은 헤어지지도, 행복하지도 못한 채 서로의 삶에 깊숙하게 침투하고 있다. 부부가 싸우는 장면을 볼 때 음소거로 바꿔 넘기면서 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내가 이 프로그램을 기어코 챙겨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로그램 중 상담 치료사는 두 사람의 아픔을 하나씩 들여다 보고, 집단 심리 치료를 한다. 악에 받친 눈으로 서로를 힐난하던 남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외로움과 슬픔을 금세 꺼내 놓는다. 화를 거둬낸 얼굴 위로 불쑥 튀어나오는 한 인간의 진심을 볼 때마다 어쩐지 울컥할 때가 많다. 두꺼운 갑옷을 벗어낸 남자와 여자에겐 상처받고 싶지 않고, 사랑받고 싶다는 순수한 바람만 남는다. 우리 모두는 사실 아주 작은 평화를 바라는 한낱 인간일 뿐이기에.
'이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저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00세 넘어서는 힘들다' '돈은 00원을 모아 놓는 게 좋다' 댓글에는 전문가들이 많다. 쇼핑하거나 맛집을 찾는다면 다수의 후기나 별점이 유용하겠지만 불행히도 일생에서 진짜 중요한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되지 않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알게 된 로또 명당에서 로또를 사도 1등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을 뿐이다. 결론은 그 사람이거나 아니거나다. 어쩌면 누군가가 줄줄이 써둔 조건은 아무 쓸모없을 수도 있다. 성별, 부모, 가족처럼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들은 굉장한 우연을 가장한 채 불가항력적으로 결정된다.
아주 보통의 날에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하면, 이따금 내가 이룬 것과 잃은 것이 모두 생경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치열하게 일해 이룬 성취가 전생의 것처럼 느껴지고, 잃어버린 사람의 부재조차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소중하게 두 손에 꼭 쥐고 걸어왔음에도 도착지에 와서 펼쳐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불현듯 '어...? 내가 어쩌다 이런 하루를 맞이하고 있지?' 낯설어진다. 아마도 어느 순간에는 미치도록 행복했을 테고, 어느 순간에는 참을 수 없이 버려졌다고 느꼈을 테고, 어느 순간에는 강렬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믿었을 거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 마음이 고요해지면 또렷한 인과관계가 눈 녹 듯 사라지고, 그제야 빈자리가 보이는 거다.
언젠가 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선배가 "인간은 왜 각자 방에서 늘 외로울까, 방문을 열고 나와 서로 마주하면 될 텐데" 탄식했던 말을 종종 떠올린다. 너무 비장해지거나 움크러들 필요는 없다. 무수한 것들은 무수하다. 새 봄엔 마음을 활짝 열고 삶이 건네는 일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