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토 Aug 13. 2020

그렇게 부모가 그렇게 할머니가 되고 있다

중국식 오이무침(파이황과)

고추기름을 얹은 파이황과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효자는 못 된다. 나의 모자란 인품으론 좋은 아들이자 좋은 남편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동시에 그 역할을 해낼 테지만, 나는 결혼과 동시에 어느 한쪽을 택해야 했다. 아내를 택한 건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에서 아내가 약자이기 때문이었다.

구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인 엄마와 대학 시절부터 페미니즘 운동을 했던 예술가 아내는 내가 보기에도 상극이었다. 서로 성격도 취향도 맞지 않는 두 사람이 크게 별 일 없이 지냈던 건 아내가 참아온 것이 컸다. 부당하거나 부조리한 걸 못 참는 아내는 부글부글 끓는 걸 참으며 매년 제사상과 차례상을 차렸다. 종종 엄마의 지청구에도 아내가 별 대응하지 않았던 건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일부러 아내를 괴롭히려고 한 적은 없다. 오히려 엄마는 아내를 몹시 좋아한다. 어딜 가든 며느리 자랑을 한다. 다만 엄마의 과도한 선의와 일방적인 사랑이 때론 아내에게 부담과 상처가 되었다. 엄마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춘기 소년처럼 매번 서툴렀고, 아내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진 러브레터를 읽어내지 못했다. 엄마의 짝사랑은 그렇게 번번이 실패했다.

나는 중간 통역사 역할을 하며 엄마를 구슬려보기도 하고, 설득도 하고, 다그쳐도 봤다. 아내에게 엄마의 진심을 설명하기도 하고 내가 대신 변명도 해봤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두 사람의 관계를 바꿀 순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관계가 나아질까 일말의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심각한 오판, 한심한 오만이었다. 오판과 오만의 결과는 결국 파국이었다.




겨울도 아닌데 엄마는 자꾸만 난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꼬를 보기 위해 집에 놀러 온 엄마는 마꼬의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옷을 더 두껍게 입혀야 한다고 했다. 양말도 신겨야 하고, 이불도 더 두꺼운 거 없냐고 했다. 나와 아내는 마꼬 얼굴에 난 좁쌀 여드름을 가리키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마꼬는 소아과에서 태열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신생아는 신진대사가 활발한 반면 체온조절을 잘하지 못해 몸의 온도가 높은 편이니, 태열이 있는 경우 서늘한 온도(20-22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엄마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엄마는 전혀 듣지 않았다. 기어코 마꼬를 이불로 꽁꽁 싸매야지만 후련해했다.

옛 어른들이야 그렇게 했다는 게 이해가 간다. 당시엔 난방이 시원찮았고 씻는 곳도 밖에 있어서 찬 바람을 맞기 쉬웠으니까. 지금처럼 예방접종을 맞는 것도 아니니 폐렴, 장염이나 설사, 말라리아 등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십상이었을 테고, 먹는 것도 부족해 영양보충도 어려웠을 테니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보온’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을 것이다. 체온이 오르면 면역력도 올라가 질병을 이길 확률이 높아지니까. 그것은 생존의 지혜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유엔이 발표한 ‘2019 어린이 사망률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5세 미만 사망률 평균은 1,000명 당 39명인데 반해, 한국은 1,000명 당 3명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한국에선 난방이 안 되는 경우가 드물고, 예방접종은 필수이며, 보건소를 통해 정부지원도 가능하다. 분유값으로 양육수당도 나오니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5세 미만의 아이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자료까지 들춰보지 않더라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한국에선 더 이상 신생아를 따뜻하게 키우지 못해 안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너무 따뜻하게 키워서 피부병이 날 수 있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더워하는 마꼬만큼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 엄마가 돌아가면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마꼬를 이불에서 해방시켰다. 아내는 그 후로도 엄마에게 몇 번이고 같은 내용을 설명했지만, 몇 번이고 화를 삭여야만 했다. 종종 나를 흘기는 아내의 눈빛을 나는 ‘네 엄마니까 네가 해결해.’라고 해석했다. 오독은 아니었다. 그간 아내와 잦은 다툼과 화해 끝에 내가 얻은 귀한 진실은 이랬다. ‘효도는 부모님께 각자 하기. 마찬가지로 부모님을 말리는 것도 각자 해내야 한다.’

나는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전화할 때마다 지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소아과 담당의의 진료 내용을 메모장에 적어서 읊어드리고, 유튜브 영상도 공유해드렸다. 평소엔 이 정도면 넘어가곤 했는데, 어쩐 일인지 ‘육아’만큼은 엄마가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시대가 변했건만, 두 아들을 건실히 키워낸 과거의 지식과 경험, 성공을 엄마는 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아내가 터졌다. 태열로 마꼬의 여드름이 더 붉어졌던 것이다. 엄마의 고집 때문에 아이 상태가 안 좋아지자 아내는 더 참을 수 없었다. 전에는 본인만 참으면 됐는데, 아이에게까지 인내를 강요할 수 없었다. 아내와 엄마는 보온을 둘러싼 진실공방을 펼쳤다. 말문이 막힌 엄마는 뜬금없이 포카를 잠시 자신에게 맡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 레퍼토리는 처음이 아니었다. 임신 초기부터 엄마는 아이 양육이 힘들 테니, 반려견 포카 양육이라도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다.

엄마의 그 말은 아내의 가슴속에 조용히 타고 있던 불씨에 횃불을 당긴 격이었다. 열불이 바람을 타고 일어나 온 들판을 태울 것처럼 시커멓게 타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포카는 우리 가족이니 절대 떨어질 수 없다고 우리 입장을 확고히 밝혔으나, 엄마는 잊을만하면 이야기를 꺼냈다. 한 번은 참다못한 내가 길길이 화를 내자 엄마는 학을 떼며 그만두었다. 엄마의 선의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싶은데, 우리가 바라지 않는 방식으로 도우려고 하니 난감했다. 그런데 이 순간에 또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대체 무슨 심보람.

아내는 엄마에게 그 얘기를 제발 하지 말라며 격분했다. 아내의 반응에 당황한 엄마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서 너희가 육아로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으니 돕고 싶어서 제안한 거라고 변론했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이미 고조된 상태였다. 말릴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내가 끼어들어야 했다. 아내를 엄마와 싸우게 할 순 없었다. 그 얘기는 안 하기로 했던 것 아니냐며 나는 아내 대신 엄마와 싸우기 시작했다. 내가 아내 편을 들며 화를 내자 엄마도 화가 났다. 엄마의 두 눈에서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이 읽혔지만 나는 더 못 되게 굴었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엄마와 언성을 높이며 크게 싸웠다. 엄마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노발대발하였고 짐을 챙겨서 아들 집을 나갔다. 나는 엄마를 배웅하지 않았다.

집 안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서로 주고받은 언성이 벽과 천정에 진액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불과 한 걸음 거리에 있었으나 둘 사이엔 벽돌 같은 침묵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큰 소리에 놀라 숨죽이고 있던 마꼬가 칭얼대며 겨우 침묵에 금이 갔다. 포카는 조용히 그릇에 담긴 물을 먹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저녁은 먹어야 하니, 나는 부엌으로 갔다. 참 일상이란 건 구질구질해서 싸우고 화가 나고 슬프고 억울해도 배가 고프기 마련이다.

소금과 후추 간을 해서 오리고기를 대충 굽고, 중국식 오이무침을 곁들였다. 집에 홍두깨가 없어서 스타벅스 텀블러로 오이를 쾅쾅 내려쳤다. 예쁘게 썰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오이를 엉망으로 만드니 제법 스트레스가 풀렸다. 모양의 규칙 없이 부서진 오이에 소금을 쳐서 밑간을 했다. 10분이 지나면 오이에서 나온 물이 그릇에 흔건하게 고이는데, 이 물은 따라내야 한다. 오이에 간이 잘 배었는지 한 입 먹어본 다음, 다진 마늘을 넣고 설탕과 식초, 액젓으로 간을 하면 끝이다.

취향에 따라 여기에 고추기름을 추가해도 좋다. 식용유를 약불로 가열하다가 고춧가루를 넣고 타기 전에 불을 끈 다음, 고운 체에 거르면 고추기름 완성이다. 더 맛있게 하려면 기름에 양파와 파, 마늘을 넣고 끓이다가 고춧가루를 넣으면 풍미가 살아있는 고추기름을 만들 수 있다.

별 말하지 않고 나와 아내는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우리 둘이 싸운 건 아니지만 웃으며 밥을 먹을 분위긴 아니었다. 누구 잘잘못을 따질 순 없었다. 아내는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고, 엄마는 갑작스러운 우리의 분노에 당황해서 그랬던 거니까. 나는 두 사람이 모두 이해되면서도 솔직한 마음으로 속상했다. 그 와중에 오이무침은 왜 그리 맛있던지, 아삭 거리는 식감과 새초롬한 맛이 오리 고기와 찰떡이었다. 구질구질하지만 맛있는 걸 어찌하겠는가. 우리 부부는 화가 난 것처럼 밥을 싹 다 비워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꼬를 재우고 포카를 산책시키는데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환청이었다. 그 밤, 유령의 하얀 꼬리처럼 엄마의 울음소리가 나를 따라다녔다. 아들 집에서 쫓기듯 나와야 했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엄마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내가 노인네에게 대체 무슨 일을 한 걸까 싶었다.




이틀 후,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를 했다. 아내에게도 전화하여 미안하다고 했다. 본인이 소양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도 죄송하다고 그랬다.

아이의 탄생은 단순히 한 생명이 태어났다는 걸 넘어 가족의 관계가 재정립되는 걸 의미한다. 나와 아내가 부모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던 것처럼 엄마도 할머니로서 대접받지 못해 속상했던 건 아니었을까. 나와 아내가 부모가 처음인 것처럼 엄마도 할머니가 처음이다. 처음인 사람들끼리 잘하려고 하다 보니 우리는 다투기도 하고 삐치고 속상해하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러다가도 마꼬를 보면 우리 세 사람은 약속한 듯 헤벌레 웃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부모가 그렇게 할머니가 되고 있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저는 양 조절을 잘못해서 다진 마늘을 많이 넣었더니만 마늘이 오이 맛을 죽이더라고요. 파이황과는 오이가 주인공이니, 마늘은 향을 내주는 정도로만 넣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고춧가루는 텁텁한 데 비해 고추기름은 깔끔하니 매운맛을 낼 때 쓰면 좋은데요. 주의해야 할 건 고춧가루가 생각보다 기름에 정말 잘 탄다는 거예요. 약불로 하지 않으면 금방 까맣게 타버려서 먹을 수가 없게 돼요. 기름에 파와 양파, 마늘을 넣고 끓이면 채소에서 나온 수분 때문에 향도 좋아지고 고춧가루도 잘 안 타니 이 방법을 추천해요!

이전 01화 엄마는 이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