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 우렁 된장국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엄마의 손맛이 무뎌졌다. 얼마 전 엄마가 바리바리 싸준 김치들이 어째 간이 안 맞아 손이 가지 않았다. 냉장고에 방치된 엄마의 반찬들을 보고 있으면 늙은 엄마를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풀이 죽은 김치를 나는 일부러라도 가끔씩 꺼내 먹었다.
오히려 나는 요즘 내가 한 음식을 먹으며 한창 젊고 예뻤을 때의 엄마의 손길을 느낄 때가 있다. 어쩌면 내 요리는 엄마의 요리를 복기하고 재현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아욱 된장국이 꼭 그랬다.
한 숟가락을 뜨는 순간, 거짓말처럼 나는 어린 시절로 회귀했다. 식탁의자에 다리가 닿지 않던 작은 나는 발을 동동거리며 엄마가 끓여준 아욱 된장국을 떠먹었다. 형은 된장국이 싫다면서 고기반찬과 김에다 밥을 먹었다. 나는 맛이 괜찮길래 된장국에 밥을 몽땅 말아서 후루룩 먹었다. 밥 한 공기 더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세상 기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엄마의 그 얼굴이 좋아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밥을 세 공기까지 먹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아욱 된장국을 어떻게 까맣게 잊고 살았던 걸까. 아욱 된장국을 끓이기 전까지 나는 아욱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름도 이상하고 도대체 무슨 맛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 녹황색 채소를 요리하게 된 건 순전히 아욱의 최유제 효능 때문이었다.
김성준 동서의학박사가 저자로 참여한 <자연주의 산후조리>(시공사, 2015)에 따르면, 대표적인 최유제 식재료로 아강발, 쇠코, 미역, 곤드레, 아욱, 시래기, 상추, 보리 등을 추천했다. 그중 저자는 <동의보감> 오장육부에서 ‘채소의 으뜸’이라 기록된 아욱이 최유제로 효과가 매우 좋다고 기술했다. 모유 수유뿐 아니라 산후조리, 붓기 제거에도 도움이 되는 채소라서 과거에 미역을 구하기 어려운 산간 지역에서는 미역 대신 아욱을 먹었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미역처럼 특정 식품만 먹는 것보다 다양한 채소를 골고루 먹는 게 산후조리와 모유 수유에 도움이 될 거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그렇게 점잖을 뺄 때는 언제고, 채소 하나에 일희일비해서 나는 재래시장과 마트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끝에 아욱 한 움큼을 발견하고 속으로 ‘심봤다’를 외쳤다.
하지만 나는 아욱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노려봐야 했다. 뻣뻣한 아욱을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마침 기다렸다는 듯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아욱을 손으로 바라바락 치대라고 했다. 풋내가 날 걱정일랑 염려 말고 마구 주물러서 아욱이 너덜너덜한 느낌이 나면 손질이 잘 된 거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아욱을 치대고 주물렀다. 초록물이 계속 나왔는데, 엄마를 믿고 계속 정진했다. 뻣뻣한 아욱을 너덜너덜한 걸레짝처럼 만들자 그제야 초록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욱만큼 중요한 된장국의 재료로 나는 철분이 풍부한 우렁이를 선택했다. 우렁이를 밀가루로 치대서 깨끗이 씻어내고, 건새우는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팬에 살짝 구웠다. 수유모에겐 칼슘과 철분, 단백질이 꼭 필요한 영양소인데, 아욱 우렁 된장국은 이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아욱으로 칼슘을, 우렁이로 철분을, 새우와 된장으로 단백질을 보충하니 이보다 완벽한 한 끼 식사는 없을 것 같았다.
멸치 다시마 육수에 된장을 풀고, 아욱과 우렁, 건새우를 넣었다. 간이 짜지 않고 슴슴하도록 국간장을 살짝 넣어 풍미를 내줬다. 다진 마늘을 넣고 마지막으로 파까지 넣어 한 소끔 끓이면 아욱 우렁 된장국 완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서양에선 시금치의 영양소가 으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아욱은 시금치보다 단백질과 칼슘이 두 배 더 높고 비타민과 무기질도 다량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욱이 제아무리 시금치보다 영양가가 높아도 맛은 시금치가 한 수 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된장국을 한 숟가락 뜨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하도 치대서 연해진 아욱 잎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씹혔다. 채소인데도 불구하고 감칠맛이 느껴졌고, 어쩌면 시금치보다도 맛이 깊고 풍부했다. 우렁의 쫄깃함과 건새우의 고소함을 아욱이 전체적으로 감싸주었다. ‘아욱은 사립문 닫고 몰래 먹는다’는 조상들의 옛말이 과장이 아니었겠구나 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처럼 된장국에 밥을 말고 후루룩 떠먹었다. 엄마가 해줬던 된장국의 맛을 복기하듯. 어쩜 이 맛을 까맣게 잊고 살았는지, 괜히 나는 내가 야속했다. 그때의 어린 아들은 복숭아처럼 빨갛고 여린 엄마의 젊음을 겁 없이 베어 먹었다. 엄마는 이제 늙었고, 지금 나는 내 젊음을 내 아이에게 먹이고 있다. 언젠가 숟가락을 잡고 아욱 된장국을 떠먹는 마꼬를 보면 기분이 묘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손주 보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으로 화상 통화하는 법을 배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덕분에 아욱국을 잘 끓였다고 하니 엄마는 기뻐했다. 손을 빨며 장난치는 마꼬를 보며 엄마는 세상 기쁜 표정을 지었다. 한때 어린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얼굴을. 화면 속 하얗게 서린 엄마의 백발이 나는 자꾸만 믿기지 않았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마트에서 파는 아욱은 노지 아욱이 아니어서 그렇게 심하게 치댈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한 번은 치대지 않고 끓였다가 아주 뻣뻣한 아욱을 먹은 적이 있어요.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욱은 어느 정도 치대서 부드러워야지만 맛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