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토 Jul 23. 2020

나는 개를 키워서도 아이를 길러서도 안 되었다

콩국수


드라마 <시그널>처럼 시대를 초월하여 무전기로 연락할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말을 걸겠습니까?

점심으로 콩국수를 먹고, 잠든 마꼬 몰래 아내와 티비를 봤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게스트에게 마지막 질문을 하고 있었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게스트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후회 전문가인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포카를 처음 입양하던 날의 나에게 얘기하고 싶어.”

아내는 나를 돌아보며 ‘네가 거기서 왜 대답해?’라는 표정을 지었다. 개의치 않고 나는 다음 대답을 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할 것 같아.”
아내는 벙쪄하며 물었다.
“왜? 후회돼?”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후회돼.”
“포카를 만난 게?”
“아니. 포카를 만난 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다만....”
“다만...?”



5년 전 가을, 보호소에서 태어난 포카는 입양처를 구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 임시보호 차 왔다. 불과 2달이 채 안 된 새끼 강아지였다. 뒤뚱거리며 걷는 게 꼭 작고 까만 털 뭉치 같았다. 손톱처럼 작은 핑크색 혓바닥으로 물을 마셨고, 이빨이 가려워 작은 공을 깨작거리며 깨물었다. 천방지축으로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별안간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새근새근 잠든 포카를 보고 있으면,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온 우주가 이 까만 강아지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듯했다.

우리 부부의 임무는 포카가 미국에 갈 때까지 보살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걸 비행기를 태워 바다 건너로 보낼 생각을 하니 돌덩이를 삼킨 듯 점점 가슴이 무거워졌다. 우리 집에 올 때까지 이미 임시보호처를 3번 바꾼 상태였다. 엄마 없이 자신을 거둬줄 이를 찾아 떠돌아다녔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사회화 시기가 문제였다. 동물행동학자 이안던바 박사에 따르면, 강아지의 가장 중요한 1차 사회화 시기는 3-8주로 이때 어미 견과 동배를 통해 동족 간의 언어를 습득해야 한다. 포카는 어미 견과 떨어지며 그 기회를 놓쳤다. 2차 사회화 시기는 8-12주 길게는 16주까지인데, 이때 인간 혹은 이종 간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5차 예방접종이 끝나는 16주까지 외출을 금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아내는 1차 사회화 시기는 놓쳤지만, 2차만이라도 포카를 챙겨주고 싶어 했다. 포카처럼 예민하고 에너지 넘치는 강아지는 16주까지 약 100-150마리의 다른 강아지를 만나야 사회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포카의 임시보호와 입양을 결정하는 기관에선 외출 자체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산책을 하다가 강아지가 다치거나 병을 얻거나 잃어버린 경우를 기관에서 많이 경험했던 것이다. 입양을 한 정식 보호자라면 몰라도, 임시보호를 하는 경우엔 기관의 의견을 따라야 했다.

시간은 계속 가고 있었다. 포카의 사회화 시기는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아내는 마음의 결정을 한 듯 보였다. 개를 키워본 경험이 많은 아내와 달리 동물을 내 손으로 직접 양육해본 적 없던 나는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고민을 열심히 했다. 그때 나는 이 어린것이 겪은 3번의 작별과 또다시 미국에서 적응해야 하는 상황만 생각했다. 우습게도 제일 중요한 사안은 고려하지 못했다.

'내가 강아지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포인터 믹스의 개는 어떤 종특이 있고 어떻게 해야 인간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지,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오직 측은지심뿐이었다.

어쩜 어릴 적 내 모습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님을 졸라 충무로 펫 샵에서 토이 푸들을 데려온 적이 있었다. 늘 곁에 두고 예뻐했지만 내가 강아지를 돌보진 않았다. 밥을 준 적도 배변을 치운 적도 없었다. 주양육자였던 엄마가 긴 투병을 시작하며 강아지는 집안 어른들에 의해 다른 집으로 가게 됐다. 학교에서 돌아온 형과 나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우리가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예뻐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포카를 입양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측은지심에 입양을 결정한 나는 개를 어떻게 키워야 할 줄 몰랐다. 반해 아내는 놓친 포카의 사회화 시기를 만회하기 위해 일을 줄이고 포카 양육에 전념했다. 산책을 하루에 두 번씩 하며 산책 중인 개와 인사하게 하고, 주마다 반려견 놀이터에 가서 친구들과 놀게 했다. 포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트위터를 시작했고, 성향이 비슷해 보이면 그곳이 어디라도 차를 끌고 포카를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종특과 기질 상 예민하고 거칠고 에너지 넘치는 포카와 잘 어울리는 친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사회화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친구들과 섞이지 못하고 싸우는 경우도 많았다. 아내가 포카를 데리고 놀러 나갔다가 속상해하면서 집에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분리불안까지 생겨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장판을 4번 교체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하루하루가 스펙터클 했다.

그런데 당시 나는 아내를 도와주진 못할 망정, 산책을 꼭 해야 하는 거냐며 짜증 냈다. 야근하고 돌아와 힘든데 이 시간에 산책을 가야 하냐며 화내기도 했다. 그저 개는 밥 주고 대소변 치우고 목욕시켜주면 다인 줄 알았다. 왜 강아지를 산책시켜야 하는지, 왜 강아지에게 친구가 필요한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내 몸이 피곤한 게 먼저였다. 포카보다 내 감정이 앞섰다.


나는 개를 키우면 안 되었다. 한 생명을 책임지고 키워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길러서도 안 되었다. 내가 아이를 기를 준비가 되었는지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막연히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내를 졸랐다. 다행히 아내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즈음 방송된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아내가 자주 보여줬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반려견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방송에 나오는 견주들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포카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내 잘못이 컸다. 나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간 포카에게 잘해주지 못한 걸 만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루 두 번 산책 중 저녁 산책은 내가 담당했다. 야근을 하든 모임이 있든 술을 먹든 늦어도 10시까진 집에 와서 포카 산책을 했다. 주말에는 긴 시간을 들여서 포카와 산책하거나 반려견 놀이터에 갔다. 여행을 갈 때도 포카와 늘 함께 다녔다. 장판을 뜯건 신발을 망가뜨리건 화내지 않고 포카의 분리불안이 해소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신경 썼다.

아내와 오랜 고민 끝에 아이를 키우지 않기로 결정하고 나선 집을 이사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연남동을 떠나 산 아랫자락에 있는 조용한 마을에 터를 잡았다. 올해로 반 백 년 된 낡은 주택을 뜯어고쳤다. 이 집을 선택한 건 온전히 포카를 위해서였다. 일반 아파트의 베란다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마당이지만, 포카에게 꼭 마당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포카가 마당을 힘차게 달릴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무게인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을 즈음, 깨달음에 대한 선물처럼 우리 부부에게 마꼬가 생겼다. 계획에 없던 아이라서 한편으론 겁도 났고 두렵기도 했지만, 포카를 처음 입양했을 때와 비교하면 나는 달라져 있었다. 그때의 아내처럼 나는 마꼬의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냈다. 한 생명을 키우려면 사랑만 갖고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의식적으로 아동학대와 동물 유기에 대한 기사를 지켜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따르면 2018년 아동학대 가해자 중 76.9%가 부모였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19년 반려동물 보호 및 복지관리 실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보호자로부터 유기되는 반려견이 하루 평균 372마리나 된다고 한다.

아동학대를 하는 부모도, 반려견을 유기하는 견주도 한때 아이를 사랑하고 강아지를 예뻐했을 거란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막연한 호기심과 무책임한 사랑이 때론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 이제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만약 포카를 입양하는 날의 나에게 연락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당신은 개를 키워서도 아이를 길러서도 안 된다고 말이다. 한 생명을 책임지기 위한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정확히 알려주고 싶다. 아내를 통해 내가 울면서 배웠던 것처럼.


‘다만’ 이후의 말줄임표에 대해 쭈욱 들은 아내는 생각난다는 듯 고개를 들고 대꾸했다.


“그래. 그때는 진짜 별로였어.”


내가 나 스스로를 별로라고 말하는 것과 누군가가 나를 별로라고 말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아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내는 정리되지 않은 문장을 잠시 입 안에 머금고 있다가 숨을 뱉듯 조용히 말했다.


“잘했어. 우리, 포카 잘 키웠어.”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포카가 우리 사이로 파고들어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우리는 익숙한 손길로 포카의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를 만나 잘 자라줘서 고마웠다.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어린 포카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시판 두유는 콩 함유량이 적고 달아서 종종 콩국을 먹었어요. 시장에서 파는 걸 먹거나 엄마가 해주신 걸 먹었는데, 직접 만드는 건 육아처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더라고요. 콩을 최소 6시간 이상 불려야 삶고 나서 콩이 믹서기에 곱게 갈려요. 저는 집에 있던 대두와 서리태를 함께 사용하였는데요. 진하게 먹고 싶어서 물을 조금만 넣었더니 너무 되직하게 되었어요. 취향껏 물 조절 잘하세요!

이전 03화 엄마의 아욱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