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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Jun 21. 2020

계란국과 원더 윅스

계란국


이제 나는 무서운 게 없을 줄 알았다. 원더 윅스를 겪기 전만 해도 그럴 줄 알았다.


육아 초기에 우리 부부는 마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다. 언제 모유수유를 얼마큼 했고 대소변은 몇 시에 했는지, 잠은 얼마 동안 자는지를 ‘베이비 타임’ 어플에 기록하여 공유하였다. 육아 경험이 없다 보니 믿을 건 ‘감’이 아닌 ‘기록’이었다. 아이의 성장을 매일같이 체크하여 아이의 생체리듬을 익히고 싶었다. 언제 배고파하고, 대소변을 보고, 자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하여 최대한 마꼬의 리듬에 우리가 맞추고자 했다.


들쑥날쑥하던 리듬은 한 달이 넘어서자 서서히 일정해졌다. 배고프다고 할 때마다 젖을 최대한 오래 먹여서 서서히 뱃고래가 커지도록 했다. 그러자 아이가 3시간 간격으로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기 시작했다. 낮잠과 밤잠은 동일한 시간대에 잠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줬다. 목욕을 하고 마지막 수유를 8시에 하면 9시에는 잠이 들었다. 밤에 정확히 3시간 간격으로 깨서 밤중 수유를 하곤 다시 잠을 푹 잤다. 이렇게 순한 아이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는 육아가 이렇게 만만한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웬 일. 원더 윅스가 도래하자 모두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주변에서 하도 겁을 줘서 겁을 잔뜩 먹고 있었는데, 잔뜩 먹은 겁이 안 아까울 정도로 마꼬는 매우 신나게 투정을 부렸다. 어르고 달래도 울음이 잦아들지 않아 하루도 종일토록 안고 있었다. 그때의 마꼬 울음은 어딘가 묘했다. 배곯아서 내는 소리도 아니고, 졸리거나 기저귀가 불편해서 내는 울음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그것은 서러워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혹시나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싶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첫 번째 원더 윅스를 겪는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보게 되었다. 그 내용이 너무 귀여워서 우리 부부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생후 한 달이 된 아이는 자신이 있는 곳이 엄마 뱃속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놀란다는 것이다. 이제야 엄마 뱃속이 아니란 걸 알게 되다니, 너무 귀엽고 한편으론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서럽게 울었구나. 그래서 무섭고 두려웠구나. 어쩌면 아이에겐 오늘이 세상에 태어난 생일일지도 몰랐다. 우리 부부는 마꼬를 더 꼭 안아줬다. 세상에 온 걸 축하한다며 노래도 불러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는 마꼬를 계속 안으며 나와 아내는 점점 파김치가 되어갔다. 게다가 아침은 시리얼, 점심은 간단하게 밥과 김치만 먹었더니 내내 허기가 졌다. 모유 수유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도 저녁에는 단백질을 보충해줘야 했는데, 마침 고기도 두부도 떨어졌다. 있는 거라곤 계란 몇 개와 감자뿐.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냄비에 물을 받았다.


이럴 땐 계란국만 한 게 없다. 나는 진심으로 계란국을 발명한 사람을 존경한다. 단언컨대, 이보다 쉽고 빨리 할 수 있는 국물요리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계란국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들어간 재료에 비해 포만감이 높아서 의외로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계란국은 육아휴직 동안 요리를 전담하게 된 나를 위급 상황 때마다 매번 구해줬다.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란국의 가장 중요한 맛은 멸치 다시마 육수다. 육수만 잘 우려내면 요리의 70%는 성공한 셈이다. 우선 쓴 맛이 날 수 있는 멸치의 까만 내장을 제거했다. 냄비에 물을 받고 손질한 멸치와 다시마를 넣은 다음 육수가 잘 나오도록 불은 중불로 맞췄다. 물이 끓기 시작하고 5분이 지나기 전에 다시마를 건져냈다.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미끈한 알긴산이 다량으로 나와 국물이 탁해지기 때문에 계속 우려낼 필요가 없다. 10분 정도 멸치를 더 우려낸 다음엔 감자를 썰어 넣었다.

어렸을 적 엄마가 아침 식사로 끓여준 계란국에는 꼭 감자가 들어갔다. 감자의 포슬포슬한 식감과 계란의 부드러움, 쫀득쫀득한 쌀알이 잘 어우러져 계란국 하나면 밥그릇을 뚝딱 해치우곤 했다. 엄마의 레시피대로 감자가 포슬 하니 잘 익으면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노른자와 흰자를 잘 풀은 계란물을 원을 그리며 냄비에 휘휘 넣었다. 마지막으로 풋고추와 파를 썰어 넣으면 라면만큼이나 쉬운 계란국 완성이다.

마꼬가 울다 지쳐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 사이, 나와 아내는 계란국을 들고 마셨다. 하루 종일 아이를 달래느라 기력이 쇠한 상태에서 속 시원한 국을 한 사발 들이키니 몸이 노곤해지는 게 눈이 저절로 감겼다. 별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계란국은 역시나 맛있었다. 새우젓으로 간을 하니 짜지 않고 간간하니 적당했다. 포슬 하니 잘 익은 감자와 계란을 밥에 비벼 먹거나,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술 떠서 국에 적셔 먹었다. 이번에도 노오란 계란국은 지친 우리 부부를 구해주었다.


마꼬는 원더 윅스를 무사히 넘겼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마꼬가 생글생글 웃기 시작했다. 두 눈이 퉁퉁 부은 아내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꼬에게 눈 맞춤을 했다. 시끄러운 동생을 둬서 잠 한숨 못 잔 포카도 마꼬의 침대 곁으로 다가와 꼬리를 말고 편안히 누웠다.

이 세상이 엄마 뱃속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 포카 누나가 늘 곁에 있으니 염려 말아라, 마꼬야. 어쩌면 이곳이 훨씬 재밌을지도 모르잖니.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계란국은 보드라운 계란의 식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계란은 풀어서 국물에 넣어주세요. 계란을 풀어서 넣으면 국물 전체에 얇게 퍼지는 느낌인데 반해, 국물에 계란을 넣고 풀면 계란끼리 뭉치더라고요.


-저는 계란국에 참기름을 넣는 걸 선호하지 않는데요. 마지막에 넣으면 기름이 둥둥 뜨고 겉돌더라고요. 그런데 요리 유튜버 happycooking120180 님에 따르면, 참기름을 계란 풀 때 넣으면 괜찮다고 해요. 계란 노른자가 유화제로 작용하여 참기름이 계란물에 잘 섞인다고 하네요. ‘참기름파’ 분들에겐 희소식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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