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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Jun 21. 2020

시간은 없고, 맛있게는 하고 싶고

파프리카 계란찜


아내와 설전이 벌어진 건 육아가 아닌 요리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시간이 문제였다. 요리하는데 최소 1시간 반에서 길면 두 시간이 걸렸다. 요리 경험이 부족해 거의 모든 요리를 처음 하는 것이라서 유튜브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 보며 식사 준비를 했다. 스파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매번 실전에 뛰어드는 심정이었다고 할까.

사진에는 정갈한 식탁만 보이겠지만 무대 뒤는 온갖 오두방정과 난리 부르스 끝에 식탁이 차려졌다. 집 안의 모든 그릇과 잡기가 세상 구경 나오겠다며 매일 싱크대에 쌓였다. 식자재와 음식물 쓰레기는 어찌 그리 많은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고, 요리가 끝나면 기름과 물로 온 주방이 흥건해져 흡사 폭격을 맞은 듯했다. 설거지와 뒷정리만 최소 30분, 길면 한 시간 가량 걸렸다. 시리얼과 유제품을 먹는 아침을 제외하고 점심, 저녁을 매일 이 난리다 보니 참다못한 아내가 결국 한 마디 했다.

“‘육아’ 휴직이잖아. 요리를 조금만 하는 게 낫겠어.”

처음엔 아내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운한 감정이 앞섰다. 칼에 손이 베이고, 기름에 손등이 데면서 식탁을 차렸는데 나의 수고스러움을 아내가 몰라주는 것 같았다. 내 말을 들은 아내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육아하는 것도 힘든데 집안일하고 요리하느라 한 달간 체중이 3kg가 빠진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아내는 지금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보자고 했다. 아내 말대로였다. 언제부턴가 아이와 있는 시간보다 부엌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아무리 아내의 산후조리와 모유수유를 돕기 위해 양질의 식사를 차린다고 해도 늘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었다. 지금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꼬를 꼭 안아주는 것이었다.


올해 초에 출간된 김성광 작가의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푸른숲, 2020)에선 육아와 일은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균형을 맞추는 거라고 했다. 며칠간 고민한 끝에 나는 문제 해결의 접근 방법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포카와 마꼬의 육아를 최우선으로 하되, 모유 수유하는 아내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보다 손쉬운 방법을 찾고자 했다. 단, 요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식사의 질(영양)을 낮추고 싶진 않았다. 손쉬운 재료와 간단한 레시피가 해결방법이 될 것 같았다.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여러 식재료 중 가장 으뜸은 역시 계란이었다. 계란만큼 영양가 높고 맛도 좋고 무엇보다 빨리 요리할 수 있는 재료는 없을 것이다. 특히 산모는 단백질이 필요하므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계란 섭취는 큰 도움이 됐다. 나는 유튜브에 올라온 계란으로 할 수 있는 별의별 요리를 다 따라 해 봤다. 그중 가장 쉬운 요리가 파프리카 계란찜이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뚝배기 계란찜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자칫 방심하면 타거나 딱딱해지고 만다. 계란말이도 모양 만들려면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고, 계란 스크램블이나 토마토 계란 볶음도 설거지를 해야 한다. 하지만 파프리카 계란찜은 탈 염려가 없다. 모양 만들 필요도, 설거지할 필요도 없다. 전자레인지나 찜기를 사용하면 되고, 파프리카 자체가 아름다운 그릇이 된다.

 



우선 밑이 평평한 파프리카를 고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쓰러지지 않고 찜기나 전자레인지에서 열을 버틸 수 있다. 씨와 속은 파내고 꼭지 부분은 뚜껑으로 사용해야 하니 버리지 말고 잘 챙겨 놓았다. 계란찜에 들어갈 채소는 냉장고에 있는 자투리 채소들을 활용했다. 당근, 양파, 파를 잘게 다져서 계란과 잘 섞은 후, 소량의 물을 넣고 소금과 후추 간을 했다. 계란의 비린 맛을 잡아주기 위해 미림을 한 숟가락 넣어준 다음, 속을 파낸 파프리카에 계란물을 80% 정도만 넣어줬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면 이제 익힐 차례다. 랩을 씌워서 전자레인지로 돌리면 5분, 찜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중불로 20분 익히면 완성이다.

다 익은 파프리카 계란찜을 먹기 좋은 형태로 자르려다가 보기에 예뻐서 아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식탁에 그냥 올렸다. 아내는 세상에 별 걸 다 한다면서도 그 모습이 예뻐 웃었다. 우리는 케이크를 먹듯 계란찜을 나눠 먹었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계란찜만큼이나 익은 파프리카가 맛있었다. 숟가락으로 잘릴 만큼 푹 익은 파프리카는 씹을수록 달콤했다. 간단한 레시피 덕분에 나는 30분이 되지 않아 식사 준비를 마쳤고 아내는 고마워했다. 식탁을 빨리 치우고 나는 마꼬를 품에 안았다. 절약한 시간은 오늘 마꼬와 함께 목욕할 때 쓸 거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파프리카 속에 계란물을 넣을 때 80%만 넣어야 해요. 나중에 익으면 계란이 부풀기 때문에 넘치지 않으려면 높이를 조절하세요.

-파프리카는 비타민 C가 많은 걸로 유명하죠. 레몬보다 2배가량 많다고 하는데요. 특이한 점은 파프리카의 색깔 별로 효능이 다르다고 해요. 저는 산모에게 필요한 영양소인 칼슘과 인이 다량 함유된 빨간색 파프리카를 선택했어요. 파프리카 고르실 때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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