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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Jul 29. 2020

젖이 없어서 원통한 그대에게

상추 샐러드와 모유수유에 도움되는 최유제 채소

로메인 상추 요거트 샐러드
태국식 시금치 볶음
양상추 쭈꾸미 샐러드


깨물고 꼬집고 할퀴는 날이 늘어갔다. 마꼬가 입과 손톱으로 아내의 젖가슴에 자꾸만 상처를 냈다. 수유가 끝나면 아내는 한바탕 드잡이를 치른 것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방에서 나왔다. 하얗게 불태운 아내와 달리 마꼬는 아직 열기가 식지 않았다. 몇 라운드는 더 뛸 수 있을 듯했다. 자기는 여기 까지라며 아내는 쓰러질 듯 내게 말했다.

“분유 좀 타 줘.”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마꼬의 눈엔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것은 일종의 시위였다. 마꼬의 인생 첫 번째 시위는 젖을 더 달라는 것이었다.

50일 전후로 마꼬의 빠는 힘을 아내가 따라잡지 못했다. 그전에도 젖이 돌지 않을 때 분유로 보충해줬는데, 점점 격차가 벌어졌다. 나는 무리해서 할 필요 없다고 했지만 아내는 될 수 있는 한 모유수유를 하고 싶어 했다.

나오든 안 나오든 아내는 분유를 주지 않고 풀타임으로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가슴 마사지를 셀프로 하고 물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아이가 잠든 새벽엔 유축을 했다. 한 번은 피곤한 나머지 졸다가 한 시간 가량 유축한 모유를 잘못해서 쏟았다. 누구는 모유가 폭포수처럼 콸콸콸 쏟아진다는데, 몇 ml 되지도 않는 모유를 쏟은 게 억울해서 아내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고 했다.

하루 종일 마꼬의 침으로 가슴이 마를 날이 없어서 아내는 종종 앞섶을 헤치고 다녔다. 젖 주는 기계나 짐승이 된 것 같다면서 푸념하다가도 마꼬가 젖을 찾을 때 젖이 말라있으면 집들이 음식을 망친 집주인처럼 당황하고 속상해했다.


그럴 땐 불똥이 나한테 튀기도 했다. 마꼬를 달래려고 안았더니만 마꼬는 내 가슴에 입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 인간은 평평하니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자 마꼬는 분노에 찬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없고 싶어서 없는 게 아닌데 괜히 미안했다. 아내도 나도 젖이 없어서 원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나는 젖을 돌게 하는 최유제 식재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산후조리 관련 식재료를 찾을 때도 그러더니, 모유수유까지 정말 이러기냐. 엄마들마다 각기 하는 말이 다 달랐다. 누구는 미역국만 먹어도 콸콸 쏟아졌다고 하고, 아무리 돼지족을 먹어도 젖이 마른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오렌지 주스가 좋다는 사람도 있고, 독일에선 감귤류를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도대체 누구 말을 따라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언론사의 기사나 연재를 살펴보고 한의원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정보를 훑어보기도 했는데, 이 역시 어째 조금씩 하는 말들이 달랐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정보들이 출처가 없었다. 차라리 할머니와 엄마의 대를 이어온 비법이라고 한다면 납득이 될 텐데, 이건 뭐 그냥 좋다고만 하니 영 찜찜했다. 근거로 제시한 연구결과도 거의 없었다. 모유가 아이와 수유모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선 의학계의 연구가 활발한 듯 보이나, 모유 수유에 도움이 되는 식재료에 대한 연구는 미비했다. 때문에 최유제에 대한 온갖 추측과 풍문이 인터넷에 난무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책을 뒤지기 시작한 건 이런 연유에서였다. 우연히 알게 된 힐러리 제이콥슨이 쓴 <Mother Food 수유모를 위한 음식과 허브>(수국, 2018)는 내게 큰 길라잡이가 되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저자는 본인이 젖이 잘 돌지 않는 수유모였던 까닭에 젖을 늘리는 방법을 찾아 필사적으로 이 연구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스위스 대학 도서관에서 그녀는 동서양의 의학 서적을 뒤져 최유제를 찾아보고 정리하여 실로 방대한 자료의 책을 완성했다. 고대 그리스부터 이집트, 현대 미국과 유럽의 논문과 연구 자료들,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 중국 전통의학에서 거론하는 음식과 허브를 그녀는 꼼꼼히 정리하였다(게다가 역자인 김성준 동서의학박사가 기입한 역주들이 탁월하다. 때때로 동의보감의 내용을 소개하며 해당 최유제가 서양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쓰임이 있었다고 설명하는데, 나 같은 초보자도 이해하기 쉬웠다).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 역시 아내의 산후조리 식단을 차리기 위해 유튜브와 인터넷의 세계를 헤엄치며 고생한 걸 생각하니, 저자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소개한 허브들을 보면 솔직히 이질감이 앞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녀는 2,000년 전, 그리스 군의관이었던 디오스코리데스가 쓴 <The Material of Medicine)>에 기록된 최유제를 소개하였다. 만형자, 접시꽃, 방가지똥, 정원 회향, 야생 회향, 시라자, 흑종초 씨, 브리오니아, 검은 애기똥풀, 에키온 등이 그것이라는데, 세상에 그런 식물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다행히 그녀가 낯선 식물만 소개한 건 아니다. 책에 소개된 최유제 중 한국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참깨, 아마씨유, 보리, 오트밀, 귀리, 당근, 마늘, 양파, 생강, 계피, 상추, 바질, 땅콩, 아몬드, 옥수수, 감자, 고구마, 마, 연근, 무화과, 체리, 복숭아, 살구, 코코넛, 비트, 강황, 완두콩, 병아리콩, 녹색채소, 미나리, 시금치, 아욱, 아스파라거스, 콜리플라워, 민들레, 버섯, 미역, 다시마, 우뭇가사리, 해조류 등등.


힐러리 제이콥슨은 단순히 최유제 채소를 소개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질 좋은 모유를 얻고, 나아가 건강한 식단과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 기술했다. 팩트와 근거, 연구결과와 출처 위주의 건조한 문장이지만 읽다 보면 그녀가 마치 딸에게 당부하듯 애정을 갖고 이 책을 써 내려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마치 할머니와 엄마의 손을 거쳐 대대로 물려온 소중한 씨앗을 받아 든 기분이라고 할까.

그녀의 당부대로 나 역시 책을 읽으며 건강한 식단과 삶에 대해 고민했다. 아내의 출산 전에도 우린 집에서 채소 위주의 식단을 먹었지만 외식할 땐 기름지고 느끼하고 짜고 매운 음식을 즐겼다. 기왕 산후조리와 모유수유 때문에 식단의 체질을 개선했으니 이대로 현상 유지하여 아이 이유식까지 연결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부부와 아이 세 식구가 지금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염두하고 책에 나온 채소 중 만만한 것들로 식단을 차리기 시작했다. 일단 보리차를 끓였고, 웬만한 음식엔 참깨를 넣거나 참기름을 첨가했다. 마늘, 양파, 당근, 버섯은 볶아먹고, 감자와 고구마, 연근, 완두콩은 쪄먹었다. 아몬드와 땅콩은 요거트와 곁들여 먹었다. 시금치와 아욱은 된장국을 끓여 먹고, 마는 갈아서 메밀국수와 먹었다. 적상추는 고기쌈으로 먹고 로메인 상추와 양상추는 올리브유와 함께 샐러드로 해 먹었다.

로메인 상추와 양상추는 요거트와도 잘 어울려서 샐러드드레싱에 요거트를 추가해서 먹기도 했다. 약간의 쓴 맛이 나는 상추는 새콤달콤한 토마토, 레몬과도 잘 어울렸다. 잘게 썰은 채소에 고수까지 얹어서 향을 돋아줬다. 때에 따라 식탁에 단백질이 없으면 주꾸미나 문어를 데쳐서 샐러드에 넣어줬다. 혹은 땅콩이나 아몬드, 잣, 해바라기 씨를 올리기도 했다.

다행히 아내는 조금씩 마꼬의 빠는 힘을 따라잡았다. 결론이 허무할지 모르겠지만, 상추 샐러드를 많이 먹었다고 모유가 잘 나온 건 아닌 것 같았다. 특정 음식만 먹는다고 젖이 잘 나올 정도로 우리 몸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기여를 했다면 여러 채소를 골고루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 젖이 나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최유제 채소가 아닌 아내가 수시로 마꼬에게 젖을 물리면서 아내의 신체가 변화한 것이 컸다고 본다. 아내가 고생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음식을 차렸다. 아내의 기력을 보충해주고, 더 질 좋은 모유가 나올 수 있도록 나는 나대로 노력했다. 그것이 젖이 없는 아빠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정성이라 생각했다. 물려받은 소중한 씨앗을 전해주듯 그렇게 나는 아내를 위한, 아이를 위한 식탁을 차렸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예전엔 샐러드 소스를 만들 줄 몰라서 시판용 샐러드 소스를 사 먹었는데요. <Mother Food 수유모를 위한 음식과 허브>에 따르면 마트에 있는 샐러드 소스, 향을 첨가한 조리용 기름, 마가린에는 자연에선 볼 수 없는 불포화지방산이 들어있기 때문에 산모에게 주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해요. 좋은 지방을 섭취하려면 냉압착을 한 버진 엑스트라 올리브유, 참기름, 들기름을 사용하시는 게 나아요.


-샐러드 소스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 직접 만들어 보세요. 올리브유를 3, 취향에 따라 레몬즙이나 식초를 1 혹은 2 정도로 생각하고 소금, 후추, 다진 마늘(생략 가능), 설탕(생략 가능)을 조금씩 첨가해서 드셔 보세요. 물론 설탕보단 비장의 기운을 돕는 꿀로 대체하는 게 좋아요. 식재료에 따라 간장이나 요거트를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Mother Food 수유모를 위한 음식과 허브>에선 피해야 할 식재료에 대해선 집중적으로 조명하지 않았어요. 그만큼 골고루 먹는 게 중요하다는 걸 텐데요. 그럼에도 감귤류는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하네요. 한국에선 매운 음식을 피하라는 조언이 많지만, 서양에선 매운 음식에 대한 언급은 없고 대신 산미가 강한 음식을 피하라고 해요. 저는 비타민 C를 보충하기 위해 오렌지, 자몽 등을 샐러드와 함께 먹기도 했는데요. 젖이 심각하게 마른 경우는 감귤류 대신 브로콜리나 빨간 파프리카로 비타민 C를 섭취하면 어떨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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