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로로 소바(마 메밀국수)
톨스토이는 대문호이자 대저택의 부호였기에 직접 집안일을 하진 않았을 테지만, 나 같은 육아휴직자는 살림을 할 때마다 그가 쓴 <안나 까레리나>의 첫 문장을 생각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하다.
행복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지만, 단 하나만 빠져도 불행해진다는 그 유명한 문장이 내 눈엔 살림의 본질을 꿰뚫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치워도 티 하나 나지 않는 게 살림이고, 단 하나만 치우지 않아도 엉망인 것처럼 보이는 게 또한 살림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쉬운 것처럼, 집은 치우는 것보다 어지르는 게 쉽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 영유아는 우주의 초창기를 보듯 혼돈 그 자체이며,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모든 에너지는 유용한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변하기 때문에 집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내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원래 육아와 살림이 그 모양 그 꼴이다.
치우면 치울수록 먼지는 끝도 없이 나왔고, 장판에서 머리카락이 자라는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머리카락은 개미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빨래는 왜 이리도 많은지. 마꼬가 분유 토를 하거나 대소변을 실례해서 손빨래는 일상이었다. 마꼬뿐 아니라 우리 부부의 옷도 마꼬의 침과 토로 얼룩이 져서 늘 후줄근했다. 할 일은 많고,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그나마 공동육아를 해서 다행이었지만 한 가지를 간과했다. 나와 아내가 24시간 계속 같이 붙어있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 부부는 상대방이 놓친 집안일을 꼬투리를 잡아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하며 종종 다퉜다. 잠시 눈에서 멀어져야 그나마 스트레스가 풀릴 텐데 붙어있으니 감정이 소화될 시간이 없었다. 이러다 진짜 불행해지는 거 아냐?
행복한 가정은 못 되더라도, 더는 불행해질 순 없었다. 우리는 마음만이라도 편히 먹기로 했다. 집안이 엉망인 걸 더는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다. 엉망인 집안보다 더 엉망인 각자의 마음을 스스로 치우는 게 우선이었다. 때론 게으름이 꽃을 피워야 할 때가 있다. 육아는 부모의 성실함으로 하는 것이지만, 게으름과 방탕함만큼 부모를 숨통 틔워주는 것은 단연코 없다. 아이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우리는 각자 게을러지기로 결심했다.
나의 게으름은 마꼬가 태어난 지 두 달이 가까워질 즈음 활짝 피었다. 육아휴직 초반에는 아이가 잠들면 밀린 집안일을 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었을 땐 아이를 따라 잠을 잤고, 두 달이 가까워오자 나는 나 몰라라 하며 틈틈이 글을 썼다. 내겐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나와 아내처럼 나와 아이 사이에도 거리를 두고 싶었다. 아이는 내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자란 건 저 녀석이다. 그런데 내가 쏟아붓는 에너지와 시간이 많다 보니, 아이를 내 노력의 결과물(육아휴직의 아웃풋)로 받아들일 것 같았다. 그런 식은 곤란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치욕스러울 것 같고(나도 못했는데), 아이가 운동을 잘하면 내 덕이라고 말하는 부모가 되고 싶진 않았다.
이 법칙을 일찍이 깨달은 아내는 산후조리원에서부터 그림을 그렸다. 주변에서 아이 잘 때 자야 한다고 했지만 아내는 그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그림을 그렸다. 수유하랴, 그림 그리랴, 저래도 괜찮을까 싶었지만 아내는 끄떡없었고, 나 역시 아내를 말릴 생각이 없었다. 당시의 아내는 잠보다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게 중요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 엄청난 변화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산후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와 포카와 마꼬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아내는 일러스트와 짧은 웹툰으로 꾸준히 기록해내갔다.
우리 부부가 취미생활이 가능했던 건 모두 마꼬 덕분이었다. 마꼬는 예상보다 빨리 통잠을 잤다. 태어난 지 59일에 처음으로 7시간 50분을 내리 자더니, 두 달이 조금 넘은 시점부턴 저녁 9시에 재우면 다음날 오전 5시까지 푹 잤다. 모유도 분유도 잘 먹고, 잘 놀고, 포카와도 잘 어울리고, 크게 아픈 적도 없었다. 그 흔한 배앓이도 거의 하지 않았다. 성격은 어찌 이리도 수더분한지, 보채지도 않고, 칭얼대지도 않았다. 밥만 잘 주면 만사 오케이라는 식이었다.
어떻게 이런 아이가 우리에게 왔는지 믿기지 않았다. 한편으론 마꼬가 여유 있고 건강한 건 결국 공동 육아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부부가 합심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좋은 환경은 없을 테니까. 아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도,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모두 공동육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꼬를 또 재워놓고 우리는 신이 나서 각자 작업을 하러 갔다. 작업에 몰두하였더니만 밥때가 가까워진 것도 몰랐다. 나는 밥 하기도 귀찮아서 메밀 면을 삶았다. 게으름이 꽃피울 땐 토로로 소바가 제격이다. 간장과 밥, 계란 노른자만 있으면 되는 간장밥처럼 토로로 소바도 레시피가 간단하다. 메밀 면에 쯔유를 뿌리고, 그 위에 참마를 갈아서 얹는다. 계란 노른자와 쪽파, 고추냉이를 올리면 끝이다. 기호에 따라 낫또를 곁들여서 먹어도 맛있다.
아내의 산후조리 기간 동안 마를 많이 먹었다. 마에 있는 끈끈한 점액질의 뮤신이란 성분이 자양강장에 좋고 위장을 보호하여 소화촉진을 돕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를 구워 먹으면 영양소가 파괴돼 갈아서 먹는 게 제일 좋은데, 끈적끈적하고 미끌거리는 생 마를 그냥 먹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토로로 소바를 만들어 먹으면 생 마도 먹기 한결 편했다. 자칫 비릴 수 있는 마와 계란을 쪽파와 고추냉이의 알싸함, 토마토의 신 맛, 쯔유의 감칠맛이 잡아줘서 전체적인 맛의 조화가 훌륭했다. 미끌거리는 식감이 두렵다가도 한번 입을 대면 눈 깜짝할 새에 한 그릇을 비우고 말았다.
마꼬의 기저귀를 갈다가 말고 문득 생각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면 애쓸수록 불행해지는 반면, 나름의 불편함을 껴안고 넉넉히 살면 그럭저럭 살아지는 것 같다고. 예전 같으면 끈적하고 미끌거리는 참마를 먹을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이젠 그 맛을 즐기게 됐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게으름을 자양분 삼아 마음 한 구석이 한 뼘 정도 자란 듯했다.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토로로 소바를 먹고 나면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저 같은 경우는 집에 쯔유가 없는 관계로 만들었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양조간장과 물을 1:2 비율로 섞고, 다시마와 표고버섯, 가쓰오부시, 맛술과 설탕을 넣었어요. 채소로는 파와 양파를 넣는데 불에 구워서 사용하면 감칠맛이 살아난다고 해서 가스레인지에 파와 양파를 굽다가 집게가 시꺼멓게 탔어요. 토치나 석쇠가 없다면 생략하는 게 낫겠어요. 너무 슬픈 일이에요.
물론 채소를 구우면 더 맛있긴 해요(파프리카를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이 구워 먹는 거더라고요). 하지만 고기를 직화하면 헤테로사이클릭아민이란 발암물질이 생기는 것처럼 채소 역시 직화를 해서 먹는 건 건강에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해요. 모든 음식은 태우면 성분이 변해서 발암성이 높아진다고 하니 산후조리 식단에선 저처럼 욕심내지 마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