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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터치 우주 Sep 25. 2022

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하와이 바다 거북이와의 만남

하와이에 한 달간 머무르면서 바다 거북이를 찾아다녔다. 바다 거북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해변 리스트를 적어 놓고 그에 맞춰 동선을 짰다. 거북이와의 만남이 실패로 끝나는 날이 쌓여갈수록 거북이를 보고야 말겠다는 나의 계획은 조금씩 더 세밀해져 갔다. 바다 거북이를 만났다는 사람들의 리뷰를 꼼꼼하게 읽으며 장소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출몰하는 시간대를 조사해 그 시간에 맞춰 바다를 다시 찾곤 했다. 

하지만 바다 거북이와의 만남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바다 거북이를 보지 못한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하와이에서의 예정된 한 달 중에 반 이상이 흘러가고 있었고 바다 거북이를 만나는 것이 모두에게 쉬운 일이 아님을 받아들이며 거북이에 대한 나의 집착하는 마음도 저 멀리 조금씩 흘러 보내야만 했다. 

왜 나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거니?

딱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해안 도로를 달렸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바닷가 주차장에는 차를 세울 곳이 없었다. 북적이는 차들과 사람들을 피해 한적해 보이는 바닷가에 차를 세웠다. 그렇게 우연히 찾은 바다에서 나는 그토록 염원하던 바다 거북이와 마주했다. 그것도 두 마리나!

손이 닿을 만큼 그들은 조금씩 더 가까이 내게로 왔다.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야만 하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내게 반가운 인사를 건내는 것으로 내 마음대로 받아들였다. 바다 거북이를 보고 싶었던 나의 간절함이 닿았다고 여겼다. 바다 거북이를 보기 위해 애썼지만 보지 못해 서운했던 나에게 거북이가 주는 선물처럼 느껴짐과 동시에 만남과 인연이란 노력하고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너희들을 만났다고 한없이 기뻐하는 와중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그들과의 만남을 스스로 축복했다. 

인연은 애쓰는 것이 아니다.
 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바다에 생업을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거북이는 다른 바다 생물체들과는 다른, 보다 특별한 존재로 인식된다고 한다. 그들에게 거북이는 바다를 지배하는 용왕이다. 생선을 포획하기 위해 쳐둔 그물에 거북이가 잡혀 딸려 온다면 그들만의 의식으로 거북이에게 염원을 한 후 정성껏 바다로 돌려보낸다. 제주 바다의 어부들은 바다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와 감사한 마음을 담아 거북이에게 막걸리를 대접한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서로 다른 종의 생물체가 살아가는 공생 방식에는 쌍방으로 도움이 되는 win-win 관계인 상리공생, 한쪽은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은 이익도 손해도 발생하지 않는 편리 공생, 그리고 한쪽은 이익을 얻지만 다른 쪽은 손해를 보는 기생 등이 있다. 

먼 거리를 힘들이지 않고 이동하려는 빨판상어와 같은 생명체와 거북이의 관계는 편리 공생으로 거북이는 자신의 평평하고 넓은 등을 무임승차를 원하는 물고기들에게 기꺼이 내어준다. 거북이는 등에 올라타 이동하는 빨판상어가 자신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건 말건 제 갈길을 가고 제 할 일을 한다.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과 나는 어떤 공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관계만을 고집했던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기생하고 싶은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닌지, 무임승차를 원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기꺼이 나의 등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 거북이를 보며 나와 연결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본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인간관계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마음 상하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건강한 관계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인생 경험이 쌓여 가면서 주거니 받거니의 관계가 꼭 당사자 두 사람 간의 쌍방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배워간다. 


도움을 받았던 그 사람에게 똑같이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의 도움이 필요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주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언젠가 나에게 도움을 준 그 사람에게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어야 할 텐데, 라며 느꼈던 마음 한 구석의 무거웠던 책임감으로부터 해방된다. 내미는 손길을 잡는 것이 언젠가는 비슷한 크기로 혹은 더 큰 무엇인가로 갚아야만 하는 빚으로 느껴져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미안함을 느끼던 나의 마음을 토닥거린다. 

우리 각각의 우주는 더 큰 우주를 공유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연결된 우주이다.

인연이란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주었던 두 마리의 거북이를 만난 후 더 이상 거북이를 찾아다니지 않았다. 바다 거북이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거북이를 만나는 액티비티를 신청할까 고민하던 마음도 완전히 사라졌다. 


인연이란 다 때가 있는 법이며, 시간과 돈을 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닿을 인연은 언젠가는 나와 연결될 거라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언제인지도 모르지만 나와 연결될 인연이 우주 어딘가에서 때를 기다리며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마음마저 들었다. 


예정되었던 하와이 한 달 살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또 한 번 거북이를 만났다. 바다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며 경쾌하게 고개를 내밀던 거북이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한 거북이였다. 바다 밖 해안가로 완전히 밀려나 움직이지 못하는 아픈 거북이를 만났다. 처음 만났던 거북이가 마치 인사하듯 반갑게 내게 다가왔다면, 이번에 만난 거북이는 제발 도와달라며 온몸으로 말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거북이의 딱딱한 등 껍질은 벗겨져 하얀 속이 부분적으로 드러난 상태였고 파도에 밀려 나온 그대로 모래 위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찌할지 몰라 거북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동물 구조 차량이 도착해 거북이를 데려갔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인연이란 애쓰는 것이 아니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 인연이다. 한번 맺은 인연이 평생 같은 모습으로 지속될 거란 기대도 내려놓는다. 스쳐지나가듯 내 인생의 작은 점과 같은 만남도 그 자체로 소중한 인연이다. 계절이 변함에 따라 풍경이 변하듯, 인연의 풍경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풍경을 바라보듯,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려고 한다. 

자연 속의 나무와 꽃을 볼 때, 그리고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볼 때, 어떠한 사심이나 판단 없이 바라보듯이

세상과 사람을 볼 때도 그저 바라보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풍경이 된다면 변했다고 슬퍼할 일도, 나와 다름을 비난할 일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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