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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터치 우주 Sep 05. 2022

커피 향기 모닝 샤워

나의 아침 의식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몽롱한 상태에서 느릿느릿 반응하는 몸으로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긴 했지만 잠에서 완전히 깨고 싶지는 않다. 흐릿한 뇌 상태를 보다 오래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강한만큼 집을 나설 준비를 위한 움직임은 조심스럽고 최소한으로 마무리된다. 눈에 보이는 주변 환경과 머리에 입력되는 인식의 속도 차이에 존재하는 몽롱함을 오래 유지하고 싶은 바람이 담긴 나만의 외출 준비다. 10분 거리에 있는 작업실까지 운전을 위해 필요한, 딱 그만큼의 에너지만 쓰고 싶다. 


누가 봐도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습으로 집을 나선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아 오기 전 사람들의 시선을 최소한으로 받을 수 있는 어두운 새벽 출근길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나의 이른 기상과 작업실 출근 시간을 듣고 주변 사람들은 부지런함을 칭찬하곤 했지만,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게으름의 결과이다. 많은 것들을 생략시켜버린 외출 준비를 들키지 않게 느릿느릿 움직이고 싶은 게으름. 느리면서도 재빠르게, 게으르지만 부지런하게, 말이 안 되지만 말이 되는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의 시작이 자꾸만 빨라진다. 이불속 포근함이 주는 유혹을 이겨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외부 세계와 가능한 한 천천히 연결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최선을 다해 도착 한 작업실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원두의 종류는 달라지지만 난 늘 산미 있는 원두를 모닝커피로 선택한다. 아침을 시작 하기에 묵직하고 고소한 커피보다는 상큼한 향기를 지닌 산미 있는 커피를 더 좋아한다. 


커피 한잔으로 조금씩 잠들어 있던 정신들이 깨어나는 것을 느끼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완전히 깨어버린 정신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영감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 깊숙한 곳에 묻어 있던 상처들이 희미하지만 실체를 드러내기도 한다. 어둡고 고요한 아침 시간을 가능한 오랫동안 느끼며 혼자 보내는 시공간에 욕심을 내게 되는 이유이다. 날이 밝아 오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게 시작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하루의 고요함 속에서 온전히 나를 만나는 시긴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작가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해야만 하는 일상들 중에 하나이지만, 노력과 시간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애쓰기만 한다고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고 나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기분이다. 작가로 살아가며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이 어쩌면 신이 나에게 주신 감사한 선물이라고 느껴지는 이유이다.

커피 한 잔은 아침에 꼭 해야 하는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커피 한잔이 주는 다채로운 향기와 맛은 온몸으로 하는 상쾌한 모닝 샤워와 같다. 내일 또 다른 태양이 뜨기 전까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상의 차분함을 커피가 아닌 주변의 소음, 업무 이메일이나 전화, 사람들의 시선 등으로 깨버리고 싶지가 않다. 그리고 싶은 것이 많고 쓰고 싶은 것이 많은 요즘, 나의 아침이 밤보다 자꾸만 더 깊고 진해지며 어제보다 더 추워지는 이유이다. 무의식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 한없이 소중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정도로만 서서히 의식이 깨어나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으로 뱉어내는 날것의 그림과 글을 만나고 싶다. 오랫동안 몽롱하고 고요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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