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대상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왜 좋아할까? 나도 알고 싶다." 하는 강한 호기심이 생긴다. 하지만 그 좋아함의 정도가 지나칠 때, 즉 너도 나도 다 좋아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을 때는 오히려 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 나도 모르는 사이 반감된 상태로 무심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존재이니 "당연히 훌륭하겠지." 라는 생각에 그 대상을 더 알고 싶다거나 새롭게 느끼지 못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식상해져 버린 존재로 남게 된다. 그 대상을 알지 못하면서 마치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으로 그 대상을 인식한다. 빈센트 반고흐가 내게는 그런 존재였다.
프랑스와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미술관을 가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내게 지인들은 어떤 미술관이 가장 좋았고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냐고 물어오곤 했다.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단연코 누구이다, 라고 단 한 명을 떠올릴 수 없어서 클림트, 피카소, 샤갈 등 익숙한 화가들의 이름을 늘어놓고는 했다. 하지만 고흐를 포함시켜 본 적은 없다. 고흐를 말하고 싶지 않다는 반발심마저 있었다. 그 근원에는 너무 뻔한, 그러니까 누구나 다 좋아하는 그 이름을 굳이 나까지 거들어 더해주고 싶지 않다는 묘한 반발심이 있었다.
자화상 속의 고흐는 낡은 밀짚모자를 쓰고 짚은 초록색의 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상처 입은 귀를 붕대로 칭칭 감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은 그가 투박하며 거칠고 가난한 사람이라는 강하고 독한 인상만을 내게 줄 뿐이었다. 그것이 그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고 더 알아가고 싶다는 호기심을 갖기에는 그가 너무 유명하고 익숙했다.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를 만큼의 괴기한 광기를 가진 천재 화가.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 중에 이 사건은 작은 단면일 뿐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체 마치 그를 다 아는냥 착각했고 투박하고 독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에 그저 한 명이라는 식상한 존재로 고흐를 바라보던 내가 그에게 빠져든 것은 2019년 여름 슬로베니아 여행을 가기 위해 탑승한 비행기 안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비행기 안이라는 환경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연히 보게 된 영화가 바로 "러빙 빈센트"이다.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마을을 찾아가 주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줄거리이다. 나는 몇 시간째 비행기 안에서 자고 일어나고를 이미 반복했던 터라 잠이 오지 않았고 그런 와중에 무심코 선택한 영화가 러빙 빈센트이다.
영화 도입부에 흘러나오던 Strarry Night 음악이 좋았다. 낯익은 고흐의 작품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움직이는 장면들이 신선했지만 인간 고흐에 대해 별 다른 감흥 없이 영화는 끝이 나고 있었고 고흐가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는 문장들이 흘러나오고 있던 그때,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어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정지 버튼을 누르고 한참 동안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그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 빈센트 반고흐 -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를 정도로 독하고 투박한 천재 화가로만 생각했던 빈센트가 이렇게 따뜻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이 문장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고흐에 대해 갖고 있던 "자신의 귀를 자른 괴팍한 화가"라는 선입견을 깨지 못했을 것이다. 자화상 속의 투박하고 거친 빈센트 뒤에 감춰진 순수한 영혼의 인간 빈센트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를 위로하겠다며 시작했던 오마쥬 작업도 하지 않았을 테니 미처 내가 알지 못했던 내 안의 오래된 결핍과도 마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흐가 주변인들에게 했다는 그 말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해 갖고 있던 독하고 기괴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2주간의 슬로베니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그의 인생을 말하는 여러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투박하고 거칠고 광기 어린 그의 자화상 너머에 있던 그의 순수한 영혼을 비로소 만나게 되면서 그를 깊게 이해하게 되었고 내 인생을 위로받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나는 그를 만났고 그의 이야기를 그리게 되었다.
책 속의 188로 시작하는 숫자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189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시간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 당시 고흐는 알지 못한 채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그림에 매진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갔다.
그 당시 나는 "왜 이렇게 늦게 그림을 알게 되었지" 하는 아쉬움과 "그림을 만나서 참 다행이야"하는 감사함을 동시에 느끼며 그림에 푹 빠져 있던 터라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을 뒤로한 채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가 한없이 가엽고 안타까웠다.
평생 동안 단 한점 밖에 그림을 팔지 못했음에도,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야 했음에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던 고흐. 내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그림에 담은 고흐의 뜨거운 열정과 작가로의 애처로운 삶을 그토록 진하게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 한 그의 죽음에 대해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무성하다. 죽어서까지도 이런저런 논란으로 평온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또다시 눈물짓게도 하지만 그만큼 전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이 그가 죽은 지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니 고흐는 더 이상 외롭거나 아프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 본다.
고흐가 테오에게 남긴 편지들에는 그가 말해 오던 그대로 삶을 살아내려 애썼던 그의 인생과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흐의 마음은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걸까. 내 예술로 고흐를 위로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차올랐고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상처 입은 그의 귀는 나의 어루만짐으로 치유되고 그곳에서는 새로운 생명의 꽃이 피어올랐다.
고흐의 힘들었던 인생의 총체적인 상징이
스스로 자른 상처 입은 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예술로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고통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기를 바란다.
예쁜 꽃이 피어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