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만 찍고 움직여서 아쉬움이 남은 곳
아름다운 경치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난 시각이 이미 11시가 넘어서였다. 오늘 가기로 한 두 군데는 모두 남편이 원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들을 꼭 가려고 일정을 잡았는데, 막상 차를 빌리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래서 결국은 차를 렌트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침에 이렇게 늦어지다 보니, 남편은 내가 이곳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해서 그의 심기를 건드렸고, 갑자기 서로 불편해지고 말았다. 뭔가 공기가 나지막이 흐르니 우리는 둘 다 그것이 불편했고, 결국은 30분 가서 주유하고 나서 남편이 갓길에 차를 세웠다.
우리의 부부싸움은 이런 식이다. 어색한 분위기가 생기면, 뭐가 원인이었는지 같이 앉아서 분석하고, 그러면 어떻게 해주는 것이 좋으냐고 서로 물어보고, 감정을 건드리는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서로 미워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랑하므로 벌어지는 일이고, 계속 함께 하기 위해서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다소 토론처럼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서로 감정을 보듬어주면서 마무리가 되는데, 문제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느라 1시간 가까이 다시 길에서 허비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베이유로 가는 길에 마냥 마음이 급했다.
이렇게 도착한 시각이 이미 1시가 넘었고, 우리는 좀 출출하다 싶었지만 부지런히 목적지로 향했다. 도착해서 입구로 들어가는데 한 아가씨가 다가오더니 바닥에서 주웠다며 나에게 표를 한 장 내밀었다. 앗! 이런 횡재를! 하하, 그래서 우리는 표를 한 장만 사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남편이 꼭 가고 싶어 했던 이곳은 베이유의 태피스트리 박물관이었다. 사실 오기 전에 미리 사전 조사를 좀 하고 싶었으나 시간에 쫓기다 보니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하고 오게 되어서,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는지 나는 전혀 몰랐다. 사실 다양한 태피스트리 작품들이 걸려있을 것을 기대했는데, 아주 긴 작품이 한 점 전시되어있었다. 높이는 50cm인데 길이는 자그마치 70m나 되었고, 1066년에 있었던 헤이스팅스 전투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실내에서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되어있어서 한 장도 찍지 못했지만, 상당히 정교한 자수로 여러 가지 장면들이 묘사되어있었다. 뒤쪽으로 가니 잔혹한 장면도 많아서 심기가 좀 불편하기도 했다. 퀼트와 자수를 했던 내 입장에서는 아름다운 것들만 묘사하고 싶은 심리가 들어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작품을 보고 나면 이층으로 연결되어서, 이 작품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에 관련된 문헌과 설명을 볼 수 있다. 이곳도 사진 찍어도 된다는 설명은 없었지만, 이 부분은 살짝 찍어보았다. 엄밀히 말해 태피스트리가 아니며, 이런 식으로 수를 놓을 수 있다는 설명이 있는 부분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박물관 샵이 있었고, 이곳에서 다양한 태피스트리 제품들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엽서만 몇 장 구매했다.
바깥으로 나와서 작은 도시 베이유를 살짝 돌았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있었고, 레이스 작품들 및 여러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시간이 있다면 좀 여유롭게 머물며 도시를 거닐어도 좋겠지만, 마음이 급해서 휘리릭 지나갔다.
저 멀리 베이유 성당이 보였다. 이 작은 도시에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니 그저 깜짝 놀랄 뿐이었다. 규모도 컸고 장식도 섬세했다. 안쪽에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들도 있었다.
성당을 나와서 주노 비치로 가려는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어서 무슨 행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마치 옛날 노르망디 시골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잠시 느낄 수 있었다. 아쉽지만 이렇게 허둥지둥 베이유 도장을 찍고, 다음 목적지인 주노 비치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