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하게 모든 시간을 맞추며 차례차례 해결하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어젯밤에 빨래를 핑계로 3시 넘어서 잠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여기에 하루만 묵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부지런히 챙겨서 떠나야 했다. 내가 씻고 나오는 동안 남편이 아침을 준비했다. 어제 사 온 까망베르 치즈와 햄, 토마토, 그리고 달걀. 집에선 원래 아침 잘 안 챙겨 먹는데 이렇게 나와서 돌아다니니 꼬박꼬박 먹게 된다.
단 하루만 묵기 때문에 소피네 집을 마음껏 즐길 수는 없었지만, 모든 것이 현대적으로 잘 꾸며진 이 집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재미나게 살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피네 화장실에는 이렇게 낙서를 할 수 있게 펜이 준비되어있고, "여기다가 쓰세요"라는 문구까지 적혀있었다. 나도 뭔가 쓸까 하다가, 그냥 소심하게 고맙다고 "Merci, T & J"라고 쓰고, 새 그림을 하나 그려 넣었다. 이 새는 아주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 배워서 늘 재미나게 그리던 녀석이다.
이제 소피네 집에서 출발. 어제 장 보고 남은 치즈와 고기는 차 반납하고 나면 가지고 다니기 곤란하므로 포기하고, 소피더러 그냥 먹으라고 말하고 냉장고에 남겨놓고 왔다.
Caen(깡)에서 Honfleur(옹플뢰르)까지는 멀지 않았지만, 아침에 꾸물거리다 보니 도착해서의 시간이 빠듯했다. 처음에는 Deauville(도빌)도 갈까 하는 야무진 꿈도 꿨었는데, 우리는 9시 전에는 도저히 출발을 못 하는 부부라는 사실을 이제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밤이면 잘 못 자고, 특히 남편은 시차 때문인지 거의 매일 날밤을 새우는 통에 아침에는 맥을 못 추게 된다.
달리다가 내다보니 밖에 식료품점 ALDI(알디)가 보였다! 미국 체인인 줄 알았더니 이곳까지? 검색해보니 독일 체인이란다. 나는 미국에서만 봤고, 우리 딸이 이곳 단골이라서 반가운 마음에 딸 보여준다고 사진을 찍었다. 실내를 예쁘기 꾸미는 대신에 가격을 대폭 낮추고 좋은 품질의 물건들을 판매하는 기분 좋은 가게다.
프랑스에서 본 특별한 풍경 하나 더 추가하자면, 젖소 목장들이 참 많은데, 프랑스 품종인 젖소는 얼룩소가 아니라 흰 소라는 것이었다. 품종 이름이 Charolais(샤롤레)라 하였다. 차 타고 달리면서 찍고자 하다가 맨날 놓쳤는데, 마지막 날 간신히 한 장 건졌다!
노르망디 지역 운전하면서 느낀 것은 길에 참으로 round about (로터리)가 많다는 것이다. 요새는 한국에도 이런 로터리가 점점 생기는 추세이지만,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사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먼저 들어서 있는 차가 무조건 우선권이 있는데, 우리는 나중에 들어서는 차가 막 밀고 들어와서 위험해 보인다.
아무튼 이 로터리에 대한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가 때로는 무척 헷갈리기 때문에 소리만 들으면서 운전하면 안 되고 반드시 화면을 챙겨봐야 한다.
자, 이제 옹플뢰르 거의 다 왔다! 벌써 집들이 나란히 예쁘게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지도 앱 Waze를 이용했더니 친절하게 주차장으로 안내를 해주어서 쉽게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저렇게 입구에 LIBRE라고 쓰여있어서, 안에 빈자리가 있음을 알게 해 주니 편리하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곳은 추측으로 미리 돈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갈 때 그만큼을 정산하는 아주 정상적인 방식이었다. 한 번 주차 딱지를 떼고 나니 주차도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옹플뢰르 검색할 때마다 보이던 둥근 저 놀이기구가 보인다. 왜 저것도 낭만적으로 보이는지! 한국에서 보던 것보다 예쁘게 생긴 것 같다.
가장 대표적인 옹플뢰르 풍경이다. 누구든 옹플뢰르에 오면 이 사진을 찍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듯하다. 하긴 나도 열심히 찍었으니 말이다. 서로 의지하듯 지어진 건물들이 그래도 각각임을 알 수 있는 소소한 개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래에 테라스 식당의 천막 지붕이 색색으로 차려져 있고, 항구에 늘어선 비싼 요트들이 이국적이며 럭셔리한 느낌을 준다.
보트 좋아하는 남편은 쳐다보면서 막 감탄하고, 내게 설명도 해준다.
우리는 물가를 따라 쭉 걸으면서 도시의 분위기를 즐겼다. 특히나 바다를 좋아하는 남편은 바다 냄새를 맡으며 흥겨워했다. 그러다가 저편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생선 파는 건가? 가 보자!
잡아온 생선들을 배에서 내리면서, 한쪽에서는 뭔가 적고, 굉장히 부산한데, 사람들이 모여서 열심히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신나서 구경에 참여했다.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지! 시간이 별로 없는데! 부지런히 식당을 찾아야 한단 말이다. 그래서 시내 쪽으로 걸어가면서 식당을 검색했다. 사실 미리 좀 찾아봤어야 했는데, 도착해서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구글 지도 참고해서 최대한 근처에서, 그리고 주차장에서도 멀지 않은 곳 중에서 평이 좋은 곳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시내 쪽도 물이 들어와 있고 아기자기 너무 이쁘다! 이곳 유럽 사람들은 특히나 꽃을 참 예쁘게 가꿔서 어디 가든 기분이 좋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계속 예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건물 코너에까지 창을 낸 것이 특색 있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검색하며 움직이다 보니 여기다 싶은 곳이 나왔다. 걸어서 3분이라니 부지런히 가자. 지름길로 들어섰더니 무슨 해리포터 영화에 나올만한 좁은 골목이 나타났다.
식당 이름에 노르망디가 들어갔으니, 이 지역의 특색을 잘 살린 음식이겠지? 메뉴를 고민하다가, 남편은 오늘의 스페셜 세트를 주문했고, 나는 해산물 냄비 요리를 주문했다. 선택한 음식은 모두 아주 맛있었다!
차 반납 시간에 늦지 않게 가려면 오후 2시에 출발해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 도시로 들어섰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고 나오니 딱 5분 전이었다! 그리고 살살 비가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둘러 차로 향했고, 정말 계획대로 잘 출발했다. 르아브르까지 30분 걸리는 것으로 나오니 3시까지 반납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 렌터카 사무실은 점심시간도 있어서 그때 차를 안 받고, 늦는 만큼 추가 요금이 올라간다. 어떤 사람은 6시에 도착했는데, 문 닫고 가는 직원들이 차를 보고도 본체만체 퇴근을 해버려서 골탕 먹었다는 리뷰도 올렸더라는... 에효!
목적지까지 정확히 30분 걸렸고, 가는 길에 주유소까지 들러 기름 채우고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했다. 차 빌리던 날, 같은 소리만 무한 반복하던 직원이 여전히 있었다. 차갑게 웃으며 차를 점검하고,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디파짓을 반환하라고 요청하고, 결제 취소 영수증을 챙겼다. 그리고 우리가 주차위반 티켓을 받았기 때문에 그 디파짓은 아직 못 준다고 잘라 말했다. 그거야 우리 실수니까 할 수 없지.
아무튼 까탈스럽던 렌터카 회사에 차를 무사히 반납하고 나니 스트레스가 좀 가라앉았다.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20분인데, 우리가 짐이 있으니 굳이 걷지 말고 이번만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그래서 그곳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 했다.
원래 계획은 렌터카 사무소에서 가까운 Le Havre Graville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예약하려던 것이었는데, 뭔가 착각을 해서 굳이 Le Havre 메인 역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멀어지고 말았다. 물론 거기에도 Avis 사무실이 있긴 했는데, 그곳 요금은 훨씬 비쌌다.
미터기에 요금 올라가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프랑스 택시, 30년 전에도 그랬는데, 여전히 스무스하게 올라간다. 그래도 렌트를 싼 데서 했으니 이 정도는 참아줘야지. 덕분에 역에 도착하니 3시였고, 우리 열차 출발까지는 1시간이 남아있었다. 르아브르 Le Havre 기차역에서는 20분간 무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브런치에 올릴 내용도 좀 쓰고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찌나 졸리던지...
이번 열차는 미리 예매한 것으로, 일등석이어서 훨씬 깨끗했고, 시간대가 낮이어서 열차도 상당히 한가했다. 화장실도 일반칸과는 사뭇 달랐다. 사실 별로 가격차이도 나지 않았는데 참 세상사가 이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열차 안에서 글쓰기 작업을 좀 하려고 생각했었으나 그간 밀린 잠이 쏟아져와서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파리에서는 또 무슨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