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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02. 2019

5_2. 드디어 파리로 돌아오다!

소동이 빠지면 섭섭하지, 이번엔 침대 소동

졸다 깨다 하면서 생 라자르 역에 도착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부랴부랴 짐을 꾸려 내렸다. 파리에 다시 왔구나!



거짓말 좀 보태면 밴쿠버 공항보다도 크다고 느껴졌던 생 라자르 기차역에서 어떻게 전철역으로 찾아갈까 고민스러웠다. 개찰구 나가는 쪽에 역무원들이 서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역무원에게 전철역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지하로 지하로 내려가란다. 그래서 우리의 짐들을 끌고 2층을 내려갔다. 그래도 다행히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파리의 지하철역은 장애인들에게 편리하지 않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우리도 짐을 끌고 어떻게 지하철로 이동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는데, 일단 에스컬레이터 덕분에 무난히 내려갈 수 있었다.



지하철역 입구로 들어가는 길에 지하철 직원들이 서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Navigo(나비고, 파리 시내 교통 패스)를 어디서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미 나비고를 가진 사람들이 충전하는 것이라면 지하철 역으로 가면 되지만, 새로 사진을 붙이고 만들어야 한다면 다시 기차역 있는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직원이 창구에 있는 경우라면 어느 지하철역에서든지 나비고를 만들 수 있다. 나비고는 파리의 정액제 교통권이다. 일주일권 또는 한달권 방식으로 충전할 수 있는데, 친구와 바꿔 쓰거나 하지 못하도록 사진을 붙여서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아무튼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나니 한 층을 다시 짐을 끌고 내려가서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랬다가 판매창구가 없으면 새로이 올라와야 하니까. 그렇다고 남편의 배낭과 내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시 기차역까지 올라가서 나비고 파는 곳을 찾아 헤맬 생각을 하니 갑갑했다. 그래서 남편이 한쪽에서 짐을 지키기로 하고 나 혼자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다시 기차역 개찰구 쪽으로 돌아가서 (거기에 직원들이 많이 있다) 나비고 판매하는 곳을 물었더니, 상가의 왼쪽으로 가란다. 가서 보니 줄이 장난이 아니네. 흑흑. 그런데 뭔가 굉장히 복잡해 보였다. 그래서 그 앞에 서서 안내하는 듯한 사람에게 여기서 나비고를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나에게 여기 주민이냐고 다시 물었다. 아니고 관광객이라고 말 하자, 이곳은 주민들만 살 수 있는 곳이란다. 이곳은 파리에 거주한다는 증명이 되는 신분증을 내고 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입력해서 하나의 신분증처럼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학생인 경우는 학생증을 내고 €342 유로만 내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이것도 거주민에게만 해당된다. 왜냐하면 카드 만드는 데 여러 날이 걸리고 우편으로 받을 수 있으니까. 우리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나는 다시 그가 알려준 곳으로 갔다. 나가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약국(Pharmacie) 맞은편에 있다고 했다. 그곳에 가보니 그래도 줄이 길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돈을 내고 두 사람의 나비고를 구입했다. 카드를 만드는 금액이 ‎5이고, 1주일권은 €22.5 여서 도합 €27.5를 각각 지급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간 사진을 내밀었다.

생 라자르 역의 나비고 판매소


일반적으로 지하철 직원들이 사진을 잘라서 붙여준다고 했는데, 이 직원은 그냥 띡 던져주고 끝이었다. 흠. 사진을 어떻게 붙여야 하지? 이렇게 붙이나요? 했더니 아니란다, 돌리라는데 내가 계속 말귀를 못 알아들었더니, 한숨을 쉬고는 다시 달라고 하고는 자기가 붙여줬다. 진작 그럴 일이지. 나는 가위도 없는데, 사이즈 안 맞는 사진을 어쩌라고! 특히 남편 사진은 일반 증명사진보다 컸기 때문에 그대로는 거기 붙일 수가 없었다.


그가 다시 내민 카드를 받아서 내 이름과 남편 이름을 적었다. 원래 자필로 적어야 한다던데 내가 다 적었다.



암튼 이렇게 구입하기까지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다. 아마 남편 목이 빠졌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내려갔더니 정말 기다리다 지친 표정이었다. 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든 같이 가기로 했다.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시간이 훨씬 더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든든한 나비고를 챙기고 지하철로 향했다. 파리를 떠날 때까지 우리 교통은 이거 한 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 없는 곳이 많아서 남편이 좀 고생을 했다. 그래도 갈아타지 않고 숙소까지 바로 갈 수 있으니 그나마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단 파리에 왔다고 마냥 신난 우리. 전철에서도 그저 벙글벙글 하며 사진이나 찍고 있었다.


생 라자르  전철역 내부


전철에서 내려서는 숙소로 가야 하는데, 가는 길을 미리 전철 안에서 점검해보려 했더니 우리의 한국 구매 유럽 통합 심카드는 지하철에서 전혀 잡히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그때는 그냥 직접 해당 국가에서 심카드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이번 숙소도 에어비앤비에서 정했는데, 이번엔 가정집이 아니라 호텔이었다. 그리고 지역은 파리 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Issy-Les-Moulineaux(이씰레물리노) 구역이었다. 사실 여기를 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예전 30년 전에 파리 유학 생활할 때 잠시 살았던 동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컸다. 그리고 이 지역이 교외에 해당하지만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파리 시내가 아니어서 방값은 저렴한 편이었고, 그렇다고 파리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아서 시내 들어가기에 오래 걸리지 않는 위치였고, 전철역에서도 아주 가까웠다.


Mairie d'Issy(메리디씨) 역에 도착해서 두 개의 출구 중에서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Escalier roulant이라고 쓰여있는 문구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럴 때 불어를 아는 게 유용했다! 그 단어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역 바깥까지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힘 들이지 않고 우리의 짐을 올릴 수 있었다.



나와서는 방향을 잠시 고민했지만 어렵지 않게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부티크 호텔이라는 요새 유행하는 종류의 호텔이었는데, 작고 아기자기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깨끗한 호텔이었다. 이번 여행기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숙소 중 한 군데였다. (시설보다도 직원들의 친절도가 최고로 훌륭했다.)



출발 전 옹플뢰르에서 점심을 먹고 아직 식사를 못 했으니 우리는 무척 배가 고팠다. 그래서 얼른 구글 맛집 검색해서 찾아갔다. 호텔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이어서 가깝기도 했고, 평도 괜찮았다. 바깥에 앉고 싶었지만 담배피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들, 이날은 유독 담배냄새가 강해서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Restaurant Barock - https://www.barocks.fr/


메뉴는 정통 프랑스식 음식이 아니고 대체로 퓨전이었지만 특이하고 전부 맛이 있었다. 모처럼 기분 내며 와인도 한 잔 곁들였다.


전채요리로 주문한 것은 살짝 익힌 비트에다가 아티초크를 얹은 것이었는데, 새콤하면서도 맛있었다.  우리도 집에 가면 이렇게 해 먹자며 신기해하며 재미나게 먹었다.


Carpaccio de betterave & artichauts marinés


남편이 주문했던 것은 특별한 이름의 것은 아니었고, 아마도 오늘의 스테이크... 뭐 그런 거였는데, 사진에는 없지만 알감자 구이가 함께 나왔다. 고기 질이 괜찮았다.


steak avec pomme-de-terre


그리고 내가 주문한 정체불명의 요리 :  훈제연어와 생선알, 그리고 여러 가지 페이스트가 나왔는데 독특하고 맛있었다. 게다가 워낙 배가 고팠던지라 신나게 잘 먹었다!


Assiette Norvégienne
saumon fumé d'Eccosse, rillette de saumon, tarama rose, oeufs de lumps, toast de tapenade d'olive...


맛있게 잘 먹고, 기분 좋게 밤길을 걸어 방으로 돌아왔는데, 뒤늦게 문제가 발생했다. 신혼여행인 만큼 우리는 호텔 예약 당시에 더블룸으로 줄 수 있느냐는 문의를 보내고 확답을 받았는데, 막상 싱글 침대 두 개를 나란히 붙여놓은 방을 받았던 것이다. 저녁 먹으러 내려가면서 말해야지 해놓고선 까먹었는데, 방에 돌아오니 피곤하고 다시 부르기 귀찮아서 얼른 씻고 누웠다. 사실 유럽에서는 싱글 침대 두 개 붙여서 한꺼번에 시트 씌우고 더블처럼 쓰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에 나름 미끄러지지 않게 처리를 했을 거라는 착각을 했었기도 했다.


그런데 자려고 누웠더니 침대가 바로 밀려나면서 가운데로 빠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귀찮아도 그냥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허니문인데 침대에 따로 누워서 남처럼 잘 수는 없다는 우리 서방님. 반드시 팔베개를 해줘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하루만 묵을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사흘을 보낼 것이므로 해결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은 리셉션으로 내려가서 사정을 말했다.


키가 195쯤 되어 보이는 멀대 같은 순딩이 젊은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원래 트윈룸이라고 말하길래, 더블룸으로 따로 부탁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더니 에어비앤비 채팅을 확인하고 맞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고는 함께 올라와서 엄연히 싱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을 본인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이게 웃기긴 했다. 아예 트윈으로 떨어져 있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할 텐데 이건 따로 자는 것도 같이 자는 것도 아닌 상황이었다.


그 직원은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 같은데 오늘은 당장 방이 없으니 내일 바꿔주겠다고, 밤새 잘 수 있게만 해주겠다며, 자기가 새로 큰 시트를 가져다가 두 개의 침대를 붙여주겠다고 했다. "제가 침대 정리를 잘 못하긴 하는데, 그래도 해 볼게요. 원래 싱글 두 개를 붙여서 더블로 쓰는 것은 흔한 일인데, 잘하면 움직이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 아저씨, 막상 가져와서 펼치고 놓아보려니 좀 이상해 보였다. 시트가 아니라 이불 껍데기를 들고 올라왔네. 그때가 이미 12시가 훨씬 넘은 상황이었는데...  그는 결국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뻘쭘해하면서 다시 시트를 가지러 내려갔다.


이불 껍데기를 두고 직원은 다시 내려가고 남편은 침대에 앉아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그리고 다시 시트를 구해서 들고 올라와서 하는데, 정말 평생 침대 시트 한 번 안 갈아본 듯한 솜씨가 역력했다. 그 큰 키에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쩔쩔매면서 커버를 씌우는데, 이것은 무슨 코미디 프로도 아니고, 둘이 웃음 나오는 것 참느라 죽을 뻔했다. 마치 서양 코미디인 Monty Phyton(몬티 파이튼)에 나오는 캐릭터 같았다. 처음에는 호텔이 잘못 처리한 상황에다가 늦게까지 못 자고 이러고 있는 것 때문에 기분이 상했었는데, 땀 빼며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직원과 그의 한결같은 상냥한 미소 덕분에 기분은 어느새 풀어지고 말았다.


엉성하게 준비되어가는 침대


아무튼 그렇게 해서 두 개의 매트리스에 하나의 시트를 씌웠고, 알뜰히 붙지는 않았지만 그 위에 이불을 깔았더니 미끄러지지 않고 잘 붙어있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더 괴롭히고 싶지는 않아서 더 이상 진지하게 따지지 않고 일단 그대로 자기로 했다.  직원은 아침에 최대한 빨리 방을 바꿔주겠다고 다시금 정중히 사과를 했고, 우리는 이불을 밑에 깐 채, 그가 가져온 이불 껍데기를 덮고 자기로 했다. 어차피 날씨가 더워서 제대로 된 이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불 껍데기 던져진 채로 대충 마무리된 침대.


어쨌든 오늘은 어쩐지 아무 사고도 안 일어났다 했더니 밤중에 이렇게 해서 결국 두시 넘어서 자는 불상사가 발생했으니 이번 여행은 연이어 완전히 수면 부족의 연속이다. 내일은 고단해서 어쩔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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