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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05. 2019

6_1. 파리, 센 강의 왼편에서부터

그녀를 따라 파리의 과거 속으로...

파리에 왔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은 파리를 다닐 거라는 생각에 설레었다. 사실 오기 전까지 뭘 봐야 할지도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파리에 꼭 다시 오고 싶었는지도 사실 잘 몰랐다. 나도 모르게 살짝 들떠있어서인지 연일 피곤한 스케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어렵지 않게 눈을 떴다. 몸은 묵직했다.


아침식사를 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식사가 꽤 괜찮았다. 식당도 널찍하고 환 해서 좋았고, 음식도 전체적으로 다 맛있었다. 치즈도 2종류, 햄도 두 종류 있었고, 바게트 빵과 크롸상, 그리고 좀 달달한 빵도 있었던 것 같다. 커피는 기계가 있어서 원하는 것으로 선택해서 마시면 되었다.


원래 탄수화물 안 먹는 나였지만 프랑스의 크롸상은 예외였다. 하긴 30년 전에도 이 크롸상 때문에 40일 만에 8킬로가 찐 전적이 있는데! 그래도 크롸상 두 개 덥석 집어오니 남편이 웃겨 죽겠다고 넘어간다. 삶은 달걀도 애정템이고 프랑스 버터는 두 말할 것도 없다. 내게 있어서 버터는 항상 옳다!



식사를 마치고 리셉션에 가서 방이 언제 준비되느냐고 물었더니, 이미 준비되었으니 편할 때 옮기라고 하면서, 불편을 끼쳐 정말 죄송하다고 다시금 인사를 했다. 어느 곳이든 실수는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실수를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 그 기관의 품격을 다시 보게 만들어준다. 사과하는 것을 지나친 정신노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소비자는 그 개인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고 그 회사에게 화가 난 것이기 때문에 개인에게 컴플레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대처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사실 어젯밤에 그 소동을 겪으면서, 혹시 그 직원이 아침에 교대하면서 잊어버리고 전달 못하면 어떻게 하나, 또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그 키 큰 직원 벤자민은 잊지 않고 잘 전달했고, 또한 전달받은 사람들이 일처리를 매끄럽게 잘해주었으니 호텔 직원들 간의 팀워크도 아주 훌륭하다고 보인다. 보통 작은 호텔들은 그런 전달이 잘 안 되기 일쑤인데 이곳은 전 직원이 자기 호텔이라 생각하고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방으로 올라가서 짐을 꾸려 새 방으로 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놓여있었다. 더블 베드룸으로 바꿔달라는 것이 민망하여 허니문이라고 했었더니 (뭐가 더 민망한 건지, 원!) 그걸 기억하고 이렇게 축하 메시지와 더불은 와인을 준비해놓은 것이다. 이런 세심쟁이들 같으니라고!



불편한 것 없이 방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으러 온 직원에게, 미안하지만 와인따개도 달라고 부탁했더니, 얼음 바스켓과 와인잔, 와인따개를 가져다주었다. 정말 상냥함의 진수를 보여준 곳이었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했으니 어서 준비를 하고 파리로 나가야지!


호텔은 파리의 바로 바깥 부분에 있고 목적지는 파리 한가운데에 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Shakespeare & Company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서점으로 잡았기에, 가장 가까운 역인 Saint-Michel (생미셸) 역으로 갔다.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에서 가려면 몽파르나스 역에서 전철을 한 번 갈아타야 했지만 시간은 별로 많이 걸리지 않았다.


전철역 입구 등도 이미 예술작품인 파리


역시 지하철로 이동 중에는 인터넷 사용이 불가했기 때문에, 역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안내 직원에게 서점 위치를 물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그 서점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았고, 알려준 서점은 전철역 바로 나오자마자 있는 Gibert Jeune이었다. 파리의 대형서점 체인으로 Gibert Joseph와 같은 라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교보문고와 같다고 보면 될 듯.


전철역 바깥으로 나왔을 때 우리의 반응은 : 오! 우리 정말 파리에 왔구나! 정말 가슴 뛰는 순간이었다.

길 건너로 생미셸 광장이 펼쳐져있었다. 그리고 상징적인 La Fontaine Saint Michel(생미셸 분수)이 보였다. 180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이 분수는 1926년 프랑스 문화부에서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로 사용되는 사랑받는 곳이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왼쪽이 서점, 오른쪽이 생미셸 샘물
생미셸 광장을 함께 한 바퀴 둘러보아요!


우리는 센 강을 보러 가고 싶었기 때문에 길을 다시 건너서 강가 쪽으로 갔다. 그 유명한 센 강 좌안 리브고슈(rive gauche). 강가를 따라 간이 상점들이 쭉 늘어져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화재 이후 복원 중인 노트르담 성당이 보였다. 저 아름다운 성당을 들어가 볼 수가 없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그리고 불 타 없어진 우리의 아름답던 남대문도 함께 생각이 나서 더욱 속상했다.


여전히 녹색으로 흐르는 세느강


우리는 강가로 다가갔다. 물도 내려다보고, 강가에 늘어져있는 상점들도 기웃거렸다. 많은 영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파리의 풍경이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파리 센 강 좌안(Rive Gauche)의 거리 상점들


그림과 책, 엽서 등을 팔고 있었는데, 이곳의 매력은 새 물건이 아니라 헌 물건들에 있다. 깔끔한 새것을 찾는다면 이곳이 아니라 Gibert Jeune로 가는 게 맞을 테고, 이곳에서는 손때 묻고, 누군가의 추억이 듬뿍 담긴 물건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심지어 판매 중인 엽서 뒷면에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많은 엽서들 중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잘 고르려면 뒤쪽에 차곡차곡 감춰진 것들도 들춰봐야 한다. 그러다가 내 눈에 들어온 이 엽서... 생미셸 역 입구에 걸터앉아 있는 고민 가득한 이 여인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과거의 파리로 끌려들어 간 느낌이랄까? 나도 그녀를 따라서 과거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의 영화 속처럼...



내 마음을 읽은 것일까? 늘 깜짝 놀랄 만큼 나와 비슷한 생각을 동시에 하곤 하는 남편이 갑자기 제안을 했다. 저기 역에 가서 같은 포즈로 앉아서 사진을 찍자고...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였지만, 여행이란 것은 무엇을 보는 것보다는 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나도 기꺼이 동참했다.


비록 같은 포즈 만들기에 성공하지 못했고, 카메라 각도도 달랐지만, 즉흥적으로 따라한 것 치고는 그다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열 장 이상 찍어서 한 장 최종 건진 것이 이것이었다.


진지하게 찍자는데 왤케 웃음이 나던지!


남편은 이 완성사진을 미국에 있는 딸에게 바로 전송했다. 엄마가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알게 될 거라는 메시지와 함께! 그리고 이 엽서도 곧 써서 보내기로 했다. 받아보면 이유를 알듯. 재미있는 놀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원래 목적지인 서점  Shakespeare & Company로 발길을 옮겼다. 가는 길에 보이는 상점들에서 지난번에 못 구입한 남편의 모자를 기웃거려봤는데, 완전히 딱 마음에 드는 것은 아직 없었다. 우리가 그냥 나가니 주인이 가격 흥정도 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아도 이미 에트르타 휴양지보다는 가격이 훨씬 저렴했다. 아마 파리는 경쟁이 치열하고 물건 공급이 원활해서 그런 것 같다. 길 따라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사람들도 많았다. 아마 성수기여서 더욱 그렇겠지.



그렇게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서점이 보인다. 많은 영화에서 소개된 이 서점은 최근에 Midnight in Paris 영화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1951년 미국인이 문을 열은 이 서점은 마치 파리 안의 작은 섬 같다. 영어권 섬. 이 안에서는 아무도 불어로 말하지 않고, 책들도 모두 영어로 된 책들이다.



서점은 엄청나게 북적였다. 좀 한적한 서점의 모습 자체를 찍고 싶었지만, 그러기를 기다리다간 아마 오늘 중에 집으로 못 돌아갈 듯하여 포기하고 그냥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 이게 이 서점의 모습이니까.


실내로 들어가니 곳곳에 좋은 문구들이 쓰여 있었다.


“Fiction and poetry are  medicines. They heal the rupture reality makes on the imagination.”

― Jeanette Winterson, Why Be Happy When You Could Be Normal?

소설과 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상상력 단절을 치료한다.


"Open door, open books, open mind, open heart."

문을 열어라, 책을 펼쳐라, 마음을 열어라, 가슴을 열어라.


그리고 맨 왼쪽에 있는 계단의 문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이다.


"I wish I could show you when you are lonely or in darkness the astonishing light of your own being" ― Hafiz of Shiraz

네가 외롭고 힘든 순간에, 나는 네 안에서 빛나고 있는 너 스스로의 놀라운 빛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딸이 힘들어하던 순간에 보내준 문구였다. 어쩌면 나는 이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여기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서점 2층으로 올라가니 창 밖으로 파리 시내가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메모를 남기는 거울이 있었고, 우리도 이곳에 짧은 메모를 남겼다.


Honeymoon in Paris. Who knew? ― T&J 2019

파리로 신혼여행 오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이혼을 생각했던 적은 있었지만 재혼을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결혼은 일생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 싶었고, 또다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그것도 국적이 다른 남편을 만나 만리타국에서 영어로만 대화하며 살며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오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말이다.

그곳에서 여러 기념품을 판매했지만, 나는 에코백 하나만 구입하고 그곳을 나왔다. 어째 인증샷 하나 찍지 않았던가! 가게 앞에서 하나 찍어줬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호텔에 돌아와서 찍어둔 사진이 하나 있어서 다행이다!)


사실은 몇 년 전 아끼는 후배에게 선물 받은 에코백이 있었는데 약간의 사연이 있어서 분실하게 되었다. 그것은 딸과도 세트로 가지고 있던 물건이었고, 나는 나름 아끼던 아이템이었던 것이어서 내심 안타까움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파리 가거든 이 가방을 사세요. 그러면 다시 저랑 세트가 되잖아요."라는 바람에 이 쇼핑 역시 이번 여행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아무튼 이 가방은 사서 이후로 장바구니 겸 간단한 물건 수송 수단으로 아주 잘 썼다.



우리는 서점을 나와서 잠시 이 벤치에 앉아있다가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옮겼다. 다음 목적지는 Hotel de Ville(파리시청)이었고, 이곳을 가려면 다리를 두 번 건너야 했다. 걸어서...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강변 쪽으로 갈 수 있었다.


센 강에는 다양한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었고, 슬픈 모습의 노트르담 성당은 공사 중인 골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센 강변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이곳은 누가 보아도 파리였다.



그리고 우리는 파리 중심의 Île de la Cité(씨테섬)을 지나 Pont d'Arcole(아르꼴 다리)를 지나 우리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프랑스 국기 색으로 칠한 작은 씨트로엥(Citroën) 차가 지나가며 이곳이 프랑스임을 강조해주었다.



들뜬 우리의 마음과 달리, 하늘은 점점 더 찌푸려진 채 우산 없이 나온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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