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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pr 24. 2023

정말 그렇게 고기를 많이 먹나요?

단백질음식 기반인 서양인들의 식습관

내가 가진 씨앗과 모종을 나누기 위해 한국인 손님들을 집으로 맞이했다. 전부터 페이스북으로 교류가 있던 분들이어서, 그냥 문 앞에서 주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 약속을 하고 간단히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외국에 사는 한인들끼리는 또 다른 유대감이 있어서, 처음 만나는 사이에도 쉽게 친해진다. 이번에도 서로 만난 적 없는 두 분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전혀 서먹하지 않게 서로의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었다. 더구나 정원을 가꾸고 텃밭을 일군다는 공통 화제가 있으니 대화는 더욱 즐겁게 흘러갔다.


사실, 밖에서 만나도 되지만, 나는 집에서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특히나 이런 나눔을 하려면 아무래도 집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필요한 것을 직접 선택해서 가져가게 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에 오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서양 가정에 처음 와본다고 말한다. 우리는 국제결혼이지만, 남편이 살던 집에 내가 들어와서 사는 것이므로 전형적인 서양 가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뭔가 색다른 분위기라고 느끼는 분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곤 한다.


이번엔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서양 사람들은 아침이나 점심보다 특히 저녁식사를 참으로 푸짐하게 차려 먹는 것 같던데, 정말 고기도 그렇게 많이 먹느냐는 질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양식을 대표하는 것이 스테이크이고, 서양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코리안 바비큐, 즉, 갈비구이인 것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질문도 아니다.


물론, 서양에는 다양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에, 식당 같은 곳에 가도 선택권이 상당히 많다. 채식주의자도 아주 많고 특이한 식단을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육식에 기반된 식습관이 지배적이다. 아니, 다르게 말하자면, 단백질 위주의 식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편은 해산물도 무척 좋아한다. 어쨌든 양질의 단백질이 듬뿍 필요하다.


우리 한식의 경우는 원래, 아침에도 밥, 점심에도 밥, 저녁에도 밥이었다. 이제는 역시 서구화되어서 다양한 식사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눈 뜨면 밥부터 먹는 우리는 탄수화물 기반의 식단이다. 


간식도 떡이나, 고구마, 감자 등을 먹고, 점심에 밥 대신 국수를 대신 먹기도 한다. 고기를 구워 먹고나도 공깃밥이나 냉면을 먹어야 식사가 끝난 기분이 드는 편이다. 서양식이 등장하면서 여기에 빵도 가세를 했다. 그리고 살기 풍족해지면서 과일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남편을 보면, 간식이 필요할 때 챙기는 것은 주로 단백질이다. 치즈나 햄 종류, 아니면 훈제굴이나 훈제연어, 정어리 통조림 등을 먹는다. 견과류를 얹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당근을 썰어 야채를 챙기기도 한다. 남편에게 제일 감흥이 없는 간식이 떡이다. 그냥 탄수화물 덩어리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양식 1인분 고기가 한식 온 가족 고기양과 비슷하다


주식 역시 단백질 기반이다. 큼직한 고기나 생선이 올라가고, 그 옆에 익힌 야채, 그리고 감자나 밥이 얹어진다. 한국식 백반의 전형적인 식단에서는 고기가 올라와도 그 양이 크지 않은데, 남편이 차리는 저녁 상에는 개인 접시에 손바닥만 한 고기가 올라앉는다. 얇게 썰어 불고기를 만들면 한국에서는 온 식구가 함께 한 끼를 해결하는 양이 이곳 캐나다에서는 1인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매일 스테이크를 먹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이삼일 한식으로 먹고 나면 그다음에 고기가 당기는지 고기를 메인으로 하는 음식을 떠올리게 되는 남편을 보면, 고기는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남편이 좋아하는 프라임립 스테이트


남편이 우리 음식에서 놀라는 것 중 또 하나가 과일이다. 어느 날 친구가 놀러 오면서 코스트코에서 오렌지를 한 박스 사 왔다. (대량으로 과일을 파는 유일한 곳이다) 한국에서는 선물용으로 과일 박스를 주고받는 일이 흔해서 나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오지 뭘 이런 것을 사 오냐고 물었더니, 그냥 자기네 것 사면서 우리 것도 같이 샀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 집 첫 방문이었으니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원래 그리 과일을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한국에 살 때에도 과일을 박스 채로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조금 사서 적은 양을 맛있게 먹고 끝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과일은 낱개로 사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사과 한 개만, 배 한 개만 사려고 해도 그렇게 팔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코스트코에서는 그래도 다량의 과일을 묶음으로 판매하고, 내가 유일하게 이렇게 사는 과일은 귤이다


캐나다 마트에서는 과일을 박스로 파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딸기나 블루베리 같이 작은 것들은 우리나라처럼 조그만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팔지만, 사과를 우리처럼 상자에 근사하게 파는 일은 없다. 수북하게 놓은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각자 적당량 골라서 무게를 달아 사는 방식으로 판매한다. 


그런데 남편은 오렌지 박스가 참으로 충격적이었나 보다. 그 이후에도 그 친구의 이야기를 꺼내면, "아, 그 오렌지를 박스로 가져온 친구?"라는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은 마치, 다른 사람들이 우리 집 이야기를 할 때, "아, 그 소고기를 반마리씩 한꺼번에 산다는 친구?"라고 할 것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소고기를 농장에서 직접 산다. 겨울이 다가오면 풀어 키운 소들을 잡는데, 그때 그들과 연락을 해서, 소를 반마리 주문한다. 그러면 원하는 부위를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서 딱 2인분씩 개별 포장해서 급속냉동한 후 연락을 준다. 스테이크용도 있고, 로스트용도 있다. 다짐육에 꼬리, 사골 및 간까지 소의 다양한 부위를 준다. 아쉽게도 곱창은 주지 않는다. 아무튼 소를 길게 반으로 자른 만큼의 고기를 한꺼번에 받는 것이다.

 

농부가 정육점에 맡겨서 손질을 부탁한 소고기를 가서 찾아온다


그러면 그걸 냉동고에 넣어두고 하나씩 꺼내서 일 년 동안 먹는다. 마치 옛날에 우리가 곳간에 쌀을 쟁이듯 남편은 고기를 쟁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정말 여름에는 장 보러 갈 일이 거의 없다. 야채는 마당에서, 고기는 냉동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고기에 대해 질문했던 지인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기를 진짜로 많이 먹느냐는 질문에 가장 적합한 대답은 단백질 기반의 식단이라는 것이었지만, 정말 고기를 많이 먹기는 많이 먹는다. 다행히도 나는 음식을 그다지 가리지 않는 편이며,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저탄고지 식단을 해왔기에 이 식단이 내게도 잘 맞았다. 사실상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익힌 야채도 늘 듬뿍 곁들이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더 건강해진 기분이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동서양을 번갈아 먹으며, 부부가 다 양쪽 음식을 즐기니 어느 음식에도 서로 불만이 없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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