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21. 2023

중국과 이탈리아를 스치고 지나가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 타운과 리틀 이탈리아를 걸었다

딸과 뚜벅이로 샌프란시스코를 구경하자고 나섰는데, 막상 꼭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그냥 딸이랑 걷기만 해도 좋을것 같았다! 베이 다리를 건너 버스에서 내렸을 때, 우리는 이미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저녁은 좀 근사하게 먹으면 좋겠지만 점심은 간단하게 먹기로 했다.


그래서 향한 곳은 차이나 타운이었다. 맛있는 딤섬집 같은 곳을 검색하는 대신, 딸아이가 4년 전 참 힘들어하던 시절 샌프란시스코에 왔다가 방문했던 테이크아웃 빵집에 가기로 했다. 대학원을 어디로 가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학교 소개하는 페어가 있어서 밤버스를 타고 엘에이에서 일부러 왔던 도시 샌프란시스코가 아이에게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싶었다.


그곳에 갔다가 지갑을 잃어버려 나중에 두고두고 고생을 했는데, 그래도 그곳이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이제 딸아이가 당시의 힘든 시절을 극복해서 가능한 것이겠지 싶어 참 고마웠다.


차이나타운에 들어서니 이미 중국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국어 간판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건물 모양 자체가 바뀌어 있었다.


은행 건물도 중국 스타일


집을 나설 때에는 꽤 쌀쌀했는데, 걷다 보니 무척 더웠다. 샌프란시스코는 사실 여름에도 그다지 덥지 않다. 더위는 오히려 9월부터 온다고 한다. 낮에는 해가 쨍 하지만, 바닷바람 때문에 대체로 선선하고, 아침저녁으로는 꽤 쌀쌀하다. 따라서 옷을 어떻게 입어도 춥거나 덥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하는 그런 날씨인 것 같았다.


우리의 목적지인 Good Mong Kok Bakery(1039 Stockton St)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빵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빵으로 유명한 중국 빵집이라고 했는데 정말 초라하고 작은 가게였다. 안에서 만두와 빵을 만들어서 테이크아웃으로만 판매했다. 


구글 거리뷰, 주황상 간판의 집. 사람들이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밖에서 기다리며 찍은 진열장 사진


줄이 많이 길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기는 상당히 길었다. 뙤약볕에서 기다리는 게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그냥 비슷한 다른 집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딸이 맛있게 먹었다던 빵집이니까 추억 더듬기 생각하며 기다렸다. 


들어가 보니 가게 안은 더 좁았다. 유리도 아닌 두꺼운 플라스틱으로 막혀있었고, 거기에 조그만 창이 있어서 그 안으로 주문을 했다. 영어로의 실제적인 대화는 통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우리는 노란색 메뉴판을 보고 번호로 주문했다. 중국어 메뉴 밑에 간단히 영어도 쓰여있었다. 딸이 보고 빵과 딤섬을 적당히 주문했다.


플라스틱 창을 통해 찍은 메뉴 사진이, 그나마 흔들렸다!


샌프란시스코 물가로 봤을 때, 가격은 감동적이었다. 이것저것 제법 골랐는데 10불 정도가 나왔다. 빵은 비닐봉지에 담고, 딤섬과 만두 같은 것들은 박스에 담아줬다. 우리는 조금 걸었다. 멀지 않은 곳에 공원이 있다고 했는데, 차이나 타운이 끝나는 곳에 Washington Square 공원이 있었다. 이곳부터 리틀 이탈리아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이 공원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 중 하나라고 했다. 건너편 쪽으로 성당이 보이면서, 이탈리아가 시작되고 차이나 타운이 끝났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한쪽에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로 기타 치며 노래하는 아저씨도 있었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처음에는 자리가 없어서 서서 먹기 시작했는데, 운 좋게도 그늘에 자리가 나서 그다음부터는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덕분에 먹기 전 인증샷은 찍지 못했다!)


왼쪽이 파빵, 오른쪽이 팥빵


유명하다는 파빵에는 생각보다 파가 많이 들어있지 않았는데, 빵속의 파가 나름 맛이 있어서 내가 만들어본다면 파를 좀 더 듬뿍 넣고 시도해보고 싶었다. 다른 것들도 전체적으로 다 맛있었는데, 뭔가 드라마틱하다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이 가격에 이 정도의 품질로 넉넉히 먹고 남을 정도라면 훌륭한 투자였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서는 바다로 가기로 했다. 그러려면 리틀 이탈리아를 거쳐 가게 되어있었다. 


아래 지도를 보면, 빵집(빨간 표시)에서 북쪽으로 조금 걷다 보면 워싱턴 스퀘어 공원이 나오는데, 대각선으로 놓여있는 콜럼버스 애버뉴(Columbus Ave)를 중심으로 남쪽이 차이나타운, 북쪽이 리틀 이탈리아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워싱턴 스퀘어의 오른쪽에 나있는 길을 따라, 리틀이탈리아를 관통하여 피셔먼스 와프(Fisherman's Warf) 쪽으로 쭉 걸었는데, 건물 스타일이라든가 간판들이 정말 이탈리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도에서는 평지로 보이지만, 실상은 계속 내리막 길이었다.


이 길은, 이 날 딸과 함께 걷고 좋아서, 여행 마지막 날 남편과도 걸었다. 그래서 사진 몇 장 안 찍었지만 양쪽에서 모아봤다.


이탈리아 마을에는 이렇게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녹색+하양+빨강으로 된 간판이나 물건들이 종종 보였다


우리가 걷는 길도 내리막길이었고, 우리 길과 교차되는 길도 역시 내리막길이었다. 겨울에 눈이 오지 않으니 망정이지 이런 곳에서 겨울 운전하려면 초난감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 지 오래된 구식 건물들이 많았고, 특히나 바깥쪽으로 철창살로 된 비상구들이 종종 보였다. 사진은 왜 한 장만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많았다. 나는 저게 어쩐지 낭만적으로 보였다. 아마 영화에서 봤던 때문이겠지. 오드리 헵번이 기타 들고 비상구 계단에 앉아 문리버를 부르는 것 같은 장면을 떠올리니까.



그리고 옛날에 이탈리아 갔을 때에도 느낀 것이지만, 집을 꽃으로 꾸미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탈리아인들이다. 역시나 공동주택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쪽에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2층까지 올라가는 높은 덩굴나무가 손바닥 만한 화단에 심어져 있어서 상당히 놀랐다. 어떻게 저기서 저렇게 자랐을까? 아마 밑으로 뿌리가 많이 뻗었겠지? 그런데 그러다가 지반이 흔들리면 어쩌려고!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우리 집에도 심어놓은 부겐빌리아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이 작물이 겨울을 나지 못하기 때문에 늘 자그마한데, 여기서는 겨울이 춥지 않기 때문에 다년생으로 자라다 보니 이렇게 나무처럼 자랄 수 있어서 신기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중국과 이탈리아를 겉핥기로 지나가고, 우리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