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들을 다 이고 지고 살 수가!

수납이 절실히 필요하여 작업실 가구를 계획하다

by 라슈에뜨 La Chouette

5년 전 우리 부부가 결혼할 때, 나는 짐가방 두 개를 챙겨 들고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 단출한 짐이었다. 당시에 결혼을 먼저 하고 온 것이 아니라, 입국 후에 결혼을 하고 영주권 신청을 시작해야 했기에, 국경에서 수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짐가방은 많이 클 수가 없었다. 공식적으로 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캐나다에 온 것이었으니까.


남편은 나를 위해서 서랍장을 구입했고, 침실 벽장 안을 대대적으로 보수해서 내 옷들을 걸 수 있도록 장을 짜주었다. 그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 짐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살면서 내 짐은 점차 조금씩 늘어갔다. 한국에서 방문하는 친구가 내 짐을 대신 좀 들고 와 주기도 하였고, 딸도 한국 방문 시 내 짐을 몇 차례 보내주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짐이 늘어난 것은, 바로 작년에 한국에 가면서 전셋집을 처분하고, 그 짐들을 동생네 맡기면서 일어났다. 이사 박스 10개를 선편으로 부치고, 남편과 둘이 짐가방 4개를 꽉 채워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배로 부친 짐은 한 달도 안 되어서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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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는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될 무렵이었기 때문에 이 쏟아져 나온 짐들이 정말 난처했다. 나는 결국 허둥지둥 정리하는 둥 마는 둥 하여, 이 짐들을 작은 방으로 몰아넣었다.


작업실_026.jpg 펼치고 나니 정말 난감해진 짐들


방으로 들어온 짐들은 눈 가리고 아웅 이었다. 넘쳐나는 짐은 갈 곳을 잃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드디어 가져왔지만, 이렇게 쌓아두니 정리가 되지 않아서 필요한 순간에 전혀 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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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이 상당히 정신없어 보이겠지만, 이것은 그나마 대략 나아진 상황이었다. 이 방 안에 소파베드도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정말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소파 베드를 쫓아내면 방도가 생길까 하였으나 역시 이런 상황이상은 나아질 수 없었다.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냥 집에 있던 서랍장에 대충 넣어보려고 하였으나 택도 없었다. 내가 쓰기로 한 방에는 이미 물건들이 많이 있었고, 남편이 진작에 벽장도 새로 짜줬으나 기존의 살림살이가 들어가고 나니 내 물건을 넣을 자리는 여전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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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붙박이 장에는 집안 살림살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년에 벽장을 만들면서 방의 벽도 이미 새로 칠해놓은 상황이었다. 내 작업실을 만들겠다는 의사는 그때에도 분명히 있었으므로 내가 원하는 색을 칠을 했다. 자연스러운 베이지와 흰색을 둘렀고, 포인트를 주기 위해서 테두리와 문은 자주색을 사용했다. 이미 부엌에 사용했던 자주색이어서 새로 살 필요가 없다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 역시 내가 좋아하는 색 중 하나였다.


작업실_001.jpg 원래 막내아들의 방이던 시절 사용된 색상과 동물 띠벽지


따라서 우리의 첫 작업은 페인트칠이 아니라 계획 세우기였다. 과연 어떤 가구를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면 이 작은 방을 효과적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방은 각 벽의 폭이 9피트가 살짝 넘는 거의 정사각형의 모양이었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한쪽 벽이 채 3미터가 안 되는, 2평 반, 8㎡ 정도의 크기니 자칫 가구를 잘못 넣으면 방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구조였다.


내 욕심 같아서는 방을 뺑 둘러서 ㄷ자 모양으로 가구를 넣고 싶었지만, 방이 답답해 보일까 봐 마음을 쉽게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다.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재봉틀 책상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퀼트 강사였다. 집에서 퀼트 수업을 십수 년간 했고, 수강생들과 함께 매년 전시회와 바자회를 열었다. 그만큼 재봉틀은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었다.


내가 사용했던 재봉틀은, 그쪽 세계에서 가장 비싼 최신형은 이미 아니었으나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었고, 내 재산목록 1호에 해당하는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비록 재봉틀은 들고 왔지만, 재봉틀 전용 책상은 따라올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작업실_028.jpg 나의 재봉틀과 재봉틀 책상


작년에 남편과 한국에 가서 짐 정리를 할 때, 이 재봉틀 책상은 친구에게 보냈다. 그때 남편은 정성껏 치수를 재며, 캐나다 돌아가면 자신이 재봉틀 책상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즉, 이 프로젝트의 가장 베이스에는 재봉틀 책상이 들어있었다. 그냥 재봉틀을 임시로 얹어 놓을 수 있는 테이블이 아니라, 테이블 안으로 재봉틀이 들어가서 평평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책상 말이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은 선반과 서랍장이었다. 넘쳐나는 물건을 과연 어딘가에 다 넣을 수 있을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서랍을 도대체 얼마나 만들어야 다 들어갈까 난감했다. 선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벽면을 천장까지 가득 채우는 붙박이 선반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았다. 솔직히, 그것으로도 다 될지 자신이 없었다.


거기에 얹어서, 재봉틀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노트북 컴퓨터를 놓고 상시로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책상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는 주로 식탁에다 노트북을 놓고 작업을 했는데, 식사 때마다 치우는 것이 아주 번거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내 수업자료 등을 둘 곳이 없어서 바닥에다가 책을 내려놓기도 하는 등 주변이 어수선했다.


서랍장을 만든다면, 그 서랍장 윗면은 작업대로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을 배치하여 분위기를 살피거나, 천을 자르거나 할 때에, 넓은 면적에 편안하게 놓고 작업하면 아주 편할테니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대충 나오면서, 나는 나름 전략적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서랍이나 책장의 크기도 중요했지만, 나에게 또 한 가지 중요했던 것은 작업대의 높이였다.


서양인의 집으로 설계된 이곳의 싱크대나 책상은 사실 내게는 좀 높았다. 나는 그래서 부엌에서 뭔가 할 때면 종종 작은 스툴을 놓고 그 위에 서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내가 사용할 작업대의 높이부터 결정하기로 했다. 또한 책상도 마찬가지로 높이를 잘 결정해서 타이핑할 때 수월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남편에게 대략적으로 말했으나, 남편은 정확한 설계도를 원했다.


나름 종이에 그림을 그려봤지만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종이는 찾을 수도 없다!) 입체감 있게 한 번에 그리는 것이 어렵다 보니, 남편에게 어필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어설프지만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리고야 말았다.


원래 이런 것은 오토캐드 같은 프로그램을 쓰는 게 좋겠지만, 안 써 본 지 20년이나 된, 갖고 있지도 않은 프로그램을 사용할 방법은 없었다. 포토샵에서 그린 그림은 수정하기도 힘들어서 크기를 조절해서 맞는 배율로 그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일단 대략의 느낌을 뽑아낼 만큼의 그림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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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모자라서 왼쪽에 책상 부분이 좀 잘렸지만, 책상과 재봉틀 책상을 창가 쪽으로 놓고, 안쪽 벽으로 선반과 작업대를 놓는 것으로 결정했다. 오른쪽 면에도 책장을 놓고 싶지만 꺾어지는 부분을 편안하게 만들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답답하기 쉬울 것 같아서, 일단 이만큼 해보고, 만일 수납이 모자라면 오른쪽에도 선반을 짜 넣는 것을 그때 가서 고려해 보기로 했다.


막연한 계획만 세웠는데도, 나는 벌써 방이 완성된 양 마음이 설레어왔다. 작업 기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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