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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r 28. 2024

봄부터 마당을 먹기 시작한다

못 먹는 풀이 뭐야? 나리도 먹고? 꿩의비름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여름이다. 나는 더운 여름이 좋다. 더워서 나른한 것도 좋고, 옷을 가볍게 입어도 되니 무겁지 않아서 좋다. 그런데 가장 신이 날 때는 봄이 올 때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여름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흥얼흥얼 기분이 좋다. 날씨가 여전히 변덕을 부리고는 있지만, 한층 해가 길어졌고, 마당에서 봄들이 쑥쑥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덕분에 마당에 일이 넘쳐 더할 나위 없이 바쁘지만 그래도 좋다. 세상이 춤추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봄을 알리는 쑥이 쑥쑥 올라와서 밥상에 올라가는 일이 많아졌다. 무섭게 번지는 쑥과 참나물은 내가 봄마다 나눔 하는 작물이다. 나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뿌리를 정리하니 좋고, 한국 사람들은 고향의 맛을 찾을 수 있으니 좋다. 


여긴 꽃밭으로 쓰려는데 이렇게 쑥이 끝없이 올라온다
멸치랑 새우대가리 넣고 된장 풀어서 간단 쑥된장국
쑥밥에 강된장 비벼 먹은 날
오징어, 양파 넣고 후다닥 부친 쑥부침개도 빠지면 서운하다


봄 대표 작물인 냉이는 밭에 씨를 뿌렸던지라 봄이 되면서 오히려 싹 정리를 해버렸다. 그렇지만 춥지 않던 겨울 동안 잘 캐서 먹었다. 된장찌개 끓일 때면 마당에 나가서 몇 개만 캐 오는 식으로 사용했더니 아주 편리했다.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지.



쑥과 참나물, 냉이 이외에도 먹을 것은 많다. 그래서 요새 밥상이 수시로 풀밭이다. 풀만 내기 서운해서, 오징어 두 마리 볶고, 닭고기도 곁들였더니, 나름 한정식 분위기 난다. 내가 맨날 주장하는 심플 코리안 디너(simple Korean dinner)인데, 손이 많이 가니 전혀 심플하지 않다고 남편이 맨날 웃는다.



상에 오른 풀들을 살펴보자. 먼저 머위. 정말 전혀 돌보지 않는데, 절대 죽지 않고 슬금슬금 여기저기로 번져나간다. 데쳐서 된장 양념 조금 해서 무쳐놓으니 쌉싸름하니 촉촉하고 맛있었다.


머위 무침, 양이 적어 데쳐내서 짜니 딱 한주먹이었다


그 옆에 있는 것은 돌나물과 큰 꿩의비름이다. 돌나물 먹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꿩의비름까지 먹는지는 가드닝 하며 알았다. 둘이 같은 식구라서 맛도 비슷하다. 새순이 날 때 잘라서 샐러드처럼 먹으면 아삭아삭하고 맛있다. 한국인은 아무래도 초장을 끼얹어 먹어야 제맛이지만!


초록 꽃다발처럼 새순이 잔뜩 올라온 큰 꿩의비름


그리고 이것은 원추리다. 딱 봄철에만 먹을 수 있단다. 내가 처음 원추리를 어느 한정식 식당에서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뭔지 이름을 물어보고 그 이후로 열심히 찾았는데 한동안 구하지 못했다. 알고 봤더니 사철 먹을 수 있는 풀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딱 봄철에만, 그것도 새로 푸릇푸릇 올라와서 손바닥 크기를 넘어가지 않을 때 먹어야 한다는데, 나는 매년 까먹고 부쩍 키운 후에서야 정신을 차린다. 올해도 이미 상당히 늦었다. 그래도 앞쪽에 있는 작은 녀석들을 싹둑 잘랐다. 자르면 또 자라서 한해에 두 번 정도 수확이 가능하단다.



하지만 그냥 간단히 데쳐서 먹지는 못한다. 독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데쳐낸 후에, 찬물에 한 시간 이상 담가서 독성을 제거해야 한다. 나는 좀 큰 것들까지 잘랐더니 더 불안해서 하룻밤 동안 담가서 우려냈다. 사람에 따라서 오래 우리기도 하는데, 마음 편하게 하려면 충분히 우리는 것이 좋다. 


그렇게 우려낸 후에, 양념 고추장에 버무려도 되고, 된장에 버무려도 된다. 우리 집은 맵지 않게 먹으므로, 파마늘 조금 넣고, 된장과 참기름, 깨 넣어서 조물조물해서 상에 냈다.


씹으면 달큼하면서도 묘하게 맛있다.


화려하게 꽃이 핀 원추리


서양에서는 이 원추리를 데이릴리(daylilies)라고 부른다. 백합과에 들어가서 아주 예쁜 꽃을 피우는데, 이 꽃이 안타깝게도 하루 밖에 안 간다.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꽃대가 여러 개 올라오므로 번갈아 꽃을 피우기 때문에 화단에 가지고 있으면 여름을 즐기기에 딱 좋다.


생명력이 강해서 웬만하면 죽지 않고, 엄청 번식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번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매년 잊어버려서 못 먹었는데, 올해 드디어 밥상에 올려서 아주 뿌듯하다.


그리고 어제는 두릅과 더덕을 먹었다.


데치기 전과 후의 색상 변화가 뚜렸한게 재미있다


더덕은 전부터 먹겠다고 하면서 계속 까먹다가, 어제 생각난 김에 나가서 갖고 들어왔다. 사실 지난 이른 봄에 밭 정리하면서, 굵은 녀석들은 먹으려고 빼놓고 중간 크기와 작은 것들만 밭에 심었다. 그리고 먹을 것은 그대로 들여와 냉장고에 두면 오히려 상할 테니 화분에 담에서 흙을 덮어놨는데, 어제 보니 이렇게 신나게 싹이 올라온 게 아닌가!



딱 세 뿌리만 먹어야지 하고 꺼내다 보니, 맨 마지막에 꺼낸 한 뿌리는 세 개가 붙어있어서 졸지에 다섯 뿌리가 되어버렸다. 뇌두를 보니 첫해에 심었던 녀석인지 새순이 아주 많았다. 


끈적이는 껍질을 열심히 까서 일부는 무치고, 나머지는 팬에 구웠다. 어차피 우리 집은 빨갛게 먹지 않으니, 양념을 최소한으로 하고 그 자체의 풍미를 즐기는 쪽으로 선택했다.


팬에 구운 것은 사진이 흔들려서 못 올렸는데,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구운 후에, 다시 유장을 만들어서 발라주고 한 번 더 구웠다. 쓴 맛이 사라지고 은근 달콤했다. 남편에게 날것과 구운 것을 비교해서 먹어보라 하니, 자기는 날것이 더 맛있다고 했다. 더덕 특유의 향이 강하게 나는 것이 더 매력이 있나 보다.


구운 것은 서양 파스닙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파스닙도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다음엔 곰취를 먹어야겠다.


봄은 이제 시작이다. 마당이 밥상에 올라오는 것도 이제 시작인 셈이다. 아직 참나물은 개시를 못했고, 곰취도 곧 먹으라고 둥글게 손짓한다. 그러고 나면 곤드레가 올라올 것이다. 그다음에는 각종 쌈채소들이 득세를 하고, 고추와 오이와 가지가 또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루의 반 이상을 마당에서 보내리라. 비타민 디 영양제를 먹을 필요가 없는 시즌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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