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아. 나 요즘들어서 자꾸 하염 없이 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
과외 일정을 다 마치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타면,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리지 말고 그냥 종점까지 갈까, 하는 생각도 들고. 차가 있다면 그냥 어디든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그래도 내일을 준비하려면 집에 가야 하니까, 날씨가 좋을 때에는 일부러 한 네 정거장쯤 전에 내려서 걸어가기도 해.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는 길로 가면서, 걷는 동안 주변에 어떤 건물이 있나 살펴보기도 하고 지나다니는 차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이제는 해도 제법 길어져서, 해질 무렵의 하늘을 보며 가만히 서있기도 하고.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 걸까. ‘잠-과외 준비-과외-과외 준비-잠’의 쳇바퀴 속에서 난 무엇이 되길 바라는 걸까. 쉬는 날 없이, 과외 학생들과 학부모님들만 만나며 수업하는 이 일상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게 뭘까. 물론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난 이 일을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모든 과외가 다 끊기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울 엄마가 계속 말하는 대로 엄마한테 내려가서 일을 도와드려야 할까. 그건 싫은데.
과외를 하러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동네 부동산에 눈이 가게 돼. 부동산 유리에 붙어 있는 전세나 월세 가격을 보면서 정말 서울에 내 집을 구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고. 수업하러 간 학생의 집이 넓고 비싼 아파트일수록, 소위 말하는 ‘인생 현타’가 와. 끝나고 단지를 빠져나오면서 솟아 있는 번쩍번쩍한 아파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는 것 같아. 나는 평생을 모아도 이런 곳에선 못 살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내 인생은 정말 한 톨 먼지만도 못한 것 같기도 해.
그런 와중에 유튜브에선 대체 무슨 알고리즘인지 나에게 예비 신혼부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영상들을 자꾸 보여주려고 하네. 무심결에 봤는데 전세대출을 받고 예식은 어쩌고 저쩌고, 가구는 어떻게 하며 뭐 이런저런. 그렇게 준비하면 생각보다 결혼할 때 돈이 덜 든대. ‘아~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이고 결혼을 준비해보라고 나한테 이런 영상을 보여주는 건가? 아니 애초에 만나는 사람이 있어야 생각도 하지. 모르겠다, 나는. 한동안은 결혼 절대 안 할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요즘 들어선 그냥 못할 것 같아. 근데 또 하고 싶긴 해. 하기 싫었었는데. 근데 못할 것 같아.
최근엔 다시 잠도 많아지는 것 같고, 집에 오면 자꾸 뭘 먹게 돼. 갑자기 잠이 많아지는 게 현실을 도피하고 싶다는 심리적 요인 때문이라는 글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걸 지도 모르겠어. 자꾸 뭘 먹는 건 배는 부른데 마음이 고파서, 인간이 그걸 물질적 허기라고 생각해서 그렇다는 글을 봤는데 정말 그런 건가 싶어. 이상하게 과외를 하러 가서 가끔씩 과외 학부모님들이 주시는 간식거리를 먹으면 그걸로도 배가 엄청 부른데, 집에 오면 막 먹는단 말이지. 어떤 날에는 진짜 토할 것처럼 먹고 속 안 좋다고 약 먹고. 진짜 병인가 싶기도 하고. 병원에 가봐야 될까.
갑자기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막 생각나.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 다 만나러 다니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 보면 난 정말 외로움을 타는 게 맞나 봐. 저녁에 수업을 하다 보니 사람들과 약속 잡기도 어려워서 슬프다. 이래서 다들 그냥 직장에 취직하고 워라밸을 찾는 거겠지? 인생에 정답이 없어서 참 어렵다. 인생도 수학처럼 정답이 딱 하나 존재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그 정답을 추구하며 아득바득 살았을 텐데. 살아가는 게 참 어렵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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