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나는 여느 엄마보다 육아 시간이 긴 편이다. 딸아이를 낳고 십년 터울로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육아의 시간은 자동으로 10년 연장되었을뿐 아니라 강도는 세 배 이상으로 세졌다. 아이를 키우는 매 시기가 다 어렵고 힘에 벅찼다. 늘 새로운 시험지를 받았지만 내가 공부한 곳에서는 어떠한 문제도 나오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라는 사람이 가진 그릇의 깊이를 만나게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여러번 실망하였다. 내가 이렇게 못 참는 사람이었나. 이렇게 큰 소리 지르는 사람이었을까. 이만큼도 기다려주지 못한 사람이었나. 하지만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의 깊이만큼 아이와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이런 나를 이끌어주고 다독여주었던 건 책이었다. 그 전까지만해도 책이 이런 역할을 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책을 읽어도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가 다시 지금의 아이들을 바라보면 다급함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서정주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라고 말했는데 성인이 된 후 나를 성장하게 만들어준 건 아이를 키우는 일과 독서라고 말하고 싶다.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경험은 서로 섞여 들어갔다. 소설, 심리학서, 과학책 등 모든 분야의 책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네 자신에 집중하라" 였고, 다른 한 가지는 "아이를 믿고 언제나 사랑을 주고, 기다려주어라" 이다. 하지만 매번 흔들렸다. 아이를 의심하고, 속단한 적도 있었다.
레진 드탕벨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에서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고 껴안아 주는 책의 역할에 대해 말한다. 책에는 이런 치유의 힘이 있다. 삶은 힘들다. 설령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고 해도, 매 시기마다 삶에서 부딪히는 다른 일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써본 적도 있었다. 이제는 여러 문제들을 힘들게 꼭 풀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삶의 선을 따라 가보려고 한다. 책의 힘을 빌어서 말이다. 누군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줬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내 스스로에게 건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