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이를 믿어주지 못했을까?

<붉은 낙엽>

by 책읽는 리나


아이들이 저학년 때의 일이다. 2학기 개학을 하루 앞둔 어느 날, 나는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져갈 방학 숙제를 챙기게 하였다. 자유 숙제 중 부족한 과목의 문제 풀기가 있었는데 공책에 숙제를 했다고 말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 않고 했다고 한 게 아닐까 싶어 빨리 공책을 찾아오라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전에도 학습지를 풀면서 몇 번 문제지를 풀지 않고도 물어보면 했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숙제를 안 한 거 아니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아이는 끝까지 했다고 말했지만 공책은 없고 숙제는 내일 가져가야 했기에 다른 곳에 밤늦게까지 문제풀이를 하게 시켰다. 개학을 앞둔 소동은 그렇게 끝났고,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에 대한 의심은 그런대로 합리적으로 보였다.


며칠 후 청소를 하다 우연히 침대 밑에서 공책을 찾았다. 펼쳐보니 빼곡하게 문제 풀이가 되어 있었다. 보는 순간 아이를 믿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의심부터 했던 일을 후회했다. 아이의 말을 왜 믿지 못했을까 생각해보았다. 가끔 아이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할 때가 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빤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믿어주는 일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아이를 믿어줄 수 있을까? 내 자신에게 물어보면 슬며시 자신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아이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에 앞서서 서로 간의 믿음을 유지하는 일은 훨씬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신을 믿어줄 거라는 신뢰가 깨지게 된다면 정말 중요한 순간에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부모와 나누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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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쿡의 <붉은 낙엽> 은 부모가 자식을 의심하게 되면서 가족 간의 관계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부모 자식 관계에서 의심과 오해가 어떻게 관계를 파괴시키는가를 구체화시켜 보여준다. 한 마을에 여덟 살 소녀 에이미가 실종된다. 에릭의 열 다섯 살 아들인 키이스는 에이미가 실종되던 날, 에이미의 베이비시터를 하고 돌아왔었다. 그는 키이스가 에이미의 실종에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 번 시작된 의심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가족 모두에게로 확산된다. 며칠이 지나도 에이미는 발견되지 않고 에릭의 의심은 깊어만 간다. 의심은 에릭의 가족 전체를 부식시킨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에릭의 마음에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먼저 고백한다. 내가 에릭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으면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얇고 깨지기 쉬운 얼음판 같은 곳 위에 세워져 있는 건지 느끼게 된다.


아이를 끝까지 믿어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맹목적 믿음과 합리적 믿음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아이가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할까?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의심은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고 오랜 신뢰와 헌신의 수준을 차례차례 부식시킨다.”라는 말처럼 가족 간의 믿음이 깨지게 되면 신뢰는 사라지게 된다. 신뢰하는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강한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아이를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아마도 아이의 행동이 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아이가 내 기대치에 부응해주길 바라기 이전에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격려해주고 있는지 나부터 고민해볼 문제이다. 아이를 키우는데 정답은 없지만 생각과 행동을 계속 성찰해나갈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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