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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Aug 30. 2020

층간소음을 내는 위층을 만났다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지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위층에서 누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가 내가 타려고 하는 층수로 다가오는 짧은 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두 집 중 바로 윗집인지 옆집인지, 엘리베이터를 탈 것인지 말 것인지. 심장도 긴장한 듯 빠르게 뛰었다.


출근 시간이라 시간도 촉박했고, 위층이라면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피할 수 없으니 마주하자는 생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자는 결론을 냈다. 엘리베이터는 위층에 멈췄다가 내가 타는 층으로 내려왔다. 어떤 태도를 유지해야 할까. 층간소음에 대해 이야기할까. 배려 부탁드린다고 직접 말해볼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론을 내렸다.


우리 집은 당장 이사를 가기 어려우니 윗집이 이사 가지 않는 이상 같은 아파트 위아래 층에 살 것이다.

그러니까 얼굴 붉히는 일은 최대한 만들지 말자.

다년간 경험으로 보아 층간소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부정하거나 보복 소음이 따라올 수 있으니 언급하지 말자.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하자. 


엘리베이터 안에는 바로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평소보다 한 톤 높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흐린데 비가 오는 것 같아서

"우산 없어도 괜찮으세요? 씌어드릴까요?" 여쭤봤다.

"괜찮아요."라고 답변하셨다.


먼저 내리시길래 "건강 유의하세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말이 많았나. 너무 저자세였나. 출근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잘했다고 결론 내렸다. 




주말이 왔다. 나의 밝은 태도가 문제였나. 정말 괜찮다고 여기셨는지 아니면 그냥 다 별로였는지 아 진짜 모르겠다.


마주치지 전까지는 그나마 고요했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견딜만했는데!

아침부터 다시 쿵쾅되는 발 망치 소리가 크게 울렸다. 중간중간 우다다다 다다다 달리고 어디에서 떨어지는지 쾅쾅 찧는 소리가 천장을 채웠다.


저녁 6시가 넘어서 다른 호에 사는 누군가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는지 방송이 나왔다. 발 망치와 뛰는 소리 주의해주시고, 늦은 시간에 세탁기와 청소기 돌리지 마시고,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목소리가 반복해서 2번 울렀다. 


위층은 방송을 할 때도 뛰었지만 끝나도 뛰었다. 그리고 밤 12시 40분까지 화난 것처럼 쿵쾅이며 걷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우리 집이 방송을 부탁했다고 오해해서 더 화가 나신 걸까. 방송만 나오면 언제나 이런 식이다. 조용하다가도 엄청난 존재감을 더욱더 뿜어댔다. 주말 맞이 뛰는 건가.


새벽 6시부터 쿵쾅되는 발소리에 일어났다. 40분 정도 유지되다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8시부터 간헐적으로 우다다다 다다다 우다다 다다다 뛰는 소리가 방 곳곳에서 내려왔다. 밥 먹는데 부엌에서 뛰길래 텔레비전 볼륨을 높였다. 높여진 볼륨과 진동의 불협화음으로 더 견디기 어려웠다. 오랜만에 먹는 집밥이라 반찬도 골고루 먹고 싶었는데 먹는 와중에 가슴이 막힌 듯 답답했다. 내 몫의 밥을 빠르게 삼킨 채 방으로 들어왔다. 들어와서 지금 작성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하나도 괜찮지 않다. 호의를 거절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과격하게 뛰는 소리와 발 망치 소리에 심장이 더 아린다. 며칠 동안은 좀 괜찮았는데 미치겠다. 가만히 있었어야 했나. 불안하다. 시한폭탄 같다. 예고도 없이 터지는 시한폭탄.


층간소음을 겪는 입장으로서 뭔가를 말했어야 했나 싶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피해는 우리 집이 받는데 자기 검열만 늘었다. 예전보다 뛰는 시간이 줄었다고 한들 견딜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때는 정말 온종일 뛰었으니까. 이 정도에 만족하고 감사해야 하는 걸까. 괴롭다. 하나도 안 괜찮다. 고통에 전혀 무뎌지지 않는다.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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