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실에서 펼쳐질 희망을 노래하다
꿈꾼다면 이룰 수 있다.
갑작스럽게 따뜻해진 날씨에 꽃잎이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한 초봄, 사람들은 덕수궁 돌담길 따라 삼삼오오 무리 지어 꽃을 구경하고 산책하기 바쁘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화원에 가고자 서둘렀다. 비밀로 싸인 화원 입구에 다다르자 달달한 향기가 스며든다. 숲속 같기도, 어린아이들의 놀이방 같기도 한 이 화원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 주인공들을 기다렸다.
에이미, 찰리, 비글, 데보라의 화원은 희망으로 빛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비밀의 화원은 꽤 자세하고 생동감 넘친다. 화원에서는 꿈과 희망이 절망을 이기고 설렘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숨결에 느껴진다.
나도 그비밀의 화원을 공연 내내 기다린 끝에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벅차올랐다. 그동안 세상에 내던져 여러 사람과 지내면서 나 모르게 묻은 온갖 세상의 먼지와 자기부정이 씻겨나간다. 너무나 속세적으로 변해버렸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동심과 희망은 마음 깊은 곳에 숨 쉬고 있었다.
그곳에선 거의 평생 걷지 못했던 아이도 뛰어놀게 될 수 있는, 영원한 생명력이 존재한다. 전 세계에서 아름다운 꽃을 모두 모아둔 화원엔 좋은 흙내음과 달달한 꽃향기와 시원한 꽃향기가 난다. 프루티하면서도 신선한 아침 이슬이 떨어지는 흙냄새가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화원은 똑똑 문을 두들기며 이곳에 들어오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환영한다.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었다는 화원이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들어오기를 바란 것이다. 그 문을 연 꼬마 아가씨의 당돌한 도전과 때 묻지 않은아이만 할 수 있는 소망으로 비밀스러운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화원은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화원이 되었다.
만국 공통 아이들의 꿈은 놀이공원에서 이뤄진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로망을 하나씩 이루면서 비밀의 화원인 놀이공원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공주를 만나거나 움직이는 애착 인형의 인사를 받으며 쑥스러워하기도 한다. 요술 봉으로 마법을 부릴 수 있고, 꽃잎에 사뿐히 앉아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동화책으로 만났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직접 두 눈으로 만날 수 있다.
그러한 놀이공원에 가는 것조차 막혀버린 에이미와 친구들은 직접 동화책을 읽으며 그들만의 놀이공원과 같은 존재를 열심히 상상한다. 그리고 놀이방에서 아이들에게 놀이공원 같은 존재를 만들어낸다.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새와 향기로운 화분까지 열심히 꾸미면서 그들만의 이야기, 동화를 이어 나간다. 그렇게 희망 따위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우리에게도 비밀의 화원은 꼭 있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도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다. 동심.
어릴 적 즐겁게 놀았던 추억은 머릿속이 아닌 마음속에서 기억된다. 그 당시 동심을 느끼고자 멀리 있는 세계각국의 놀이공원에 찾아간다. 근심 걱정 없이 즐겁게 춤추는 퍼레이드를 보며 나도 저 아름다운 동화 속 캐릭터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현실 세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분위기 자체가 설레게 다가온다.
비밀의 화원에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모두 펼쳐진다. 간절한 소망은 이뤄지고 모두가 웃는다. 꼭 그런 화원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그런 낙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나만의 화원을 만들기로 한다.
현실의 복잡함을 잊고 다시 희망으로만 가득 찬 긍정적인 낙원, 비밀의 화원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나 그런 순간들로 삶은 이어져갈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상상보다 현실을 추구하는 성격이지만, <비밀의 화원>을 보면서 나도 헛된 희망을 꿈꿔보면어떨까 싶었다.
현실로 일어날 가능성이 떨어지면 흐지부지되는 게 어쩔 수 없는 사람 마음이지만, 그래도 에이미의 마음 한편에 '사랑 가득 받는 딸'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처럼 순수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면, 그를 다 이룰 순 없지만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것 같다는 이유 없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그런 큰 희망이 현실인 것처럼 행동하다 보면,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을 거라는 마법, 론다 번의 시크릿과도공통된 이야기다. 비밀의 화원을 내 눈으로 보고 나서 책 <시크릿>을 다시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다소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비밀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이제 상상을, 부정보다는긍정적인 희망을 더 말하기로 한다.
비밀의 화원은 언제나 마음 편히 놀러 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요즘엔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한 바퀴 도는 돌담길 코스가 그런 공간이고, 나의 아빠의 경우, 오랜 시간 가꿔온 텃밭이 그런 공간이다.
자신만의 장소에서,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내가 가꾼 비밀의 화원은 에이미와 친구들의 화원 못지않게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풍성한 화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랜 시간 있던 둥지와 같은 공간을 떠나는 그들을 감싸주고 안전히 하루를 살아 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응원해야 할 입장인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큰 위로를 받는다. 그들이 꿈꿨던 찬란한 미래가 현실이될 수 있도록 미리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나에게도 버겁게 다가오는 현실에 밝은 미래를 상상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는 것을 새삼 자각한다. 사회로 한걸음 발을 떼는 그들의 웃는 표정과 밝은 기운이 부디 오래가길 바라며 나도 그들과 함께 희망을 현실에 펼치자고 마음먹는다.
난 이 세상 모든 것에 마법이 있다고 믿어.
에이미
어른이든 어린이든 우리는 모두 마음속 비밀의 화원을 품고 있으며, 또 품고 살아가야 한다. 결국 이 마음들이 모여 우리를 위한 화원이 현실에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