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었다. 연휴를 맞아 아들 친구들과 엄마들은 함께 나들이를 가고, 아빠들은 낚시를 갔더랬다. 주말 동안 아이들과 잘 놀아준 아빠들을 위한 배려였다.
아침부터 집을 나선 엄마와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먹고 떠들며 하루를 보냈다.
나는 거의 100킬로 가까이 운전을 하고 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려 에너지가 바닥이었고, 그 핑계 삼아 아이들에게 유튜브프리를 선언하고 좀 쉬려던 찰나, 현관문이 밖으로 남편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닫히기도 전에 티브이로 유튜브 보고 있는 아이들의 탄성이 들려 돌아보니, 남편의 낚시영상이 티브이로 중계되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남편의 낚시 무용담이 시작됐다.
누가 보면 상어라도 고래라도 낚은 것처럼 어깨뽕이 한라산만큼 솟아올라 봤던 영상을 보고 또 보고 또 보라며 우리를 재촉했다.
아이들은 “우와~ 대박!!! 엄청 크네!!! 상어야!? 아 숭어?! 아빠 최고다. 아빠 멋있다”를 약속이라도 한 듯 읊어대기 바빴다.
남편은 “이거 막 6자는 되는 거 같아. 내가 오늘 진짜 얇고 작은 낚싯대를 가져가서 이게 일반 사람들 같으면 절대 낚지 못하는 큰 물고긴데, 나니까 고작 이런 낚싯대로 이걸 낚아온 거야. 여보 봐봐. 얘들아 이리 와봐, 이게 말이지….”
그럼 난 또 흘깃 보고 “에이, 6자는 아닌 거 같은데, 려보가 과장이 심하다. 당신이 최근에 잡은 것 중에 가장 큰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그건 좀? 사람이. 겸손해야지. 너무 들뜨면 안 돼~”라며 남편의 들뜸을 눌렀고,
남편은 “멋지다 대단하다 한마디 하고 궁디팡팡 해주면 될 일인데 또 굳이 겸손을 운운하며 남편 기를 죽인다”며 “억울하네, 답답하네, 이거 손맛이 진짜 최고였는데 애들이 같이 느꼈어야 하는데, 당신이 직접 봤으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네 어쩌네” 하면서도 자기 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며 신나 하는 남편의 등짝을 발로 콱 차주고 싶다가, 또 귀여웠다.(나 역시 우리 남편 많이 사랑하네)
마음 같아선 육아휴직하고 배 한 척 사서 애들 등교와 동시에 바다에 나갔다가, 하교시간에 돌아와 아이들을 케어하는 자유로운 영혼 김프로가 되고 싶다(그래도 양심은 있게 등하교는 시키겠다고 했다)는데 외벌이로 4인가족 부양하느라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꾸는 우리 집 가장 김프로.
애처로운 마음에 취미로나마 남편의 낚시를 허했던 나인데, 이젠 정말 낚시가 본업 같아 위기의식을 느끼는 요즘이다.
일 년에 한두 번만 가도 좋겠다던 낚시를 요즘은 비 오는 날 제외하고 거의 매일 가고 있는 판이라 어디까지 하나 보자 싶어 내버려 두었더니 중간이 없는 중.
낚시 가도 되는지 물을 때마다 “알아서 해요~”라고 했더니 그 ‘알아서’의 의미를 짚어내지 못한 덕에 분노조절장치를 상실한 아내의 샤우팅을 받아내야 했었으나, 한 며칠 눈치 보는 것 같다가 다시 또 자연스럽게 낚시대회를 핑계로(일 년에 한 번밖에 없다며, 꼭 참여하고 싶다던 지난달의 낚시대회 후 또 어느 날 갑자기 신청해 놓은 낚시대회. 세상에^^) 다시 매일 조업활동을 즐기는 중인 우리 김프로.
지금도 글 쓰는 내 옆에서 내일의 낚시대회를 맞아 경건한 마음으로 낚시장비를 챙기고 계시는데, 이걸 또 귀엽게 봐줘야 하나…?
내일 낚시대회 결과에 따라 귀여울지 안 귀여울지 고민해 봐야겠다.
아내의 ‘알아서’의 정확한 맥락을 짚어낼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지닌 김프로가 될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을 잘 휘둘러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