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직장

by 예제다운로드

여자 친구가 없어서 일합니다.


세 번째 직장은 나의 전공과는 관계가 적다고 할 수 있는 곳을 지원하였다. 해보고 싶은 업무이기도 하였는데, 바로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UX 리서치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UX 연구이기보다는 UX를 통한 UI 디자인이었다. UI 디자인을 하는데 UX를 떼고 생각할 수 없지만 말이다.


디자인 전공이 아니다 보니 직접적인 디자인 직무에 지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UX 연구 직무에 지원을 하였다. 이때 마침 다학제적으로 UX 연구를 하는 직무에 기계, 자동차 전공의 사람을 뽑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보고 싶은 직무였기 때문에 면접 제의가 왔을 때 수락하였고, 급여가 많지 않았는데도 해보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한 학교의 산학협력단의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연구를 하는 곳이다 보니 실험도 있었고 실험 데이터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도 있었다. 또한 이러한 결과를 가지고 논문을 작성하는 일도 있었다. 그때 학회에 제출할 논문을 작성해야 했는데 누가 작성을 할 것인가를 정해야 했었다. 그 과정은 잘 모르겠으니 건너뛰고 결론적으로 내가 작성하게 되었다. - 나 혼자 다 작성하지 않고 다른 한 분이 도와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내가 작성하게 된 이유를 곧 듣게 되었는데 바로 여자 친구가 없어서 휴일에도 논문을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아마 선거 때문에 쉬는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난 휴일에 집에서 논문을 작성하였다. 마감기한이 선거일 다음날인가, 그 주까지 인가로 촉박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작성한 논문을 제출하였고 그다음 주에 마감기한이 연장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하나하나 나의 퇴사 욕구가 쌓이기 시작했나 보다.




나는 왜 퇴사하였는가


그렇다면 난 왜 퇴사를 하였는가? 내가 해보고 싶어 하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 때문이었다. 바로 건강이 안 좋아진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보다.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언제 걸려봤는지 기억도 안나는 -살면서 걸려본 기억이 없는- 독감을 이때 처음 걸려봤다. 감기인 줄 알고 간 이비인후과에서 독감 같다며 독감 검사를 하는데 지금의 코로나 검사와 같이 코와 목을 찔러서 검사를 하는 방법이었다. 결과는 독감. A형인지 B형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독감이었다. 뉴스에서만 들어본 타미플루를 내가 처방받아서 먹다니. 몸이 지치긴 지쳤었다보다.


이렇게 독감만 걸리고 끝났으면 쉬고 싶다는 생각이 금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감보다 심한 장염이 걸렸다는 것. 나는 장염으로 일주일 동안이나 입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도 못했다. 그냥 장염이라고 하면 배가 아프고 화장실을 자주 갈 거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배가 아플 수가 없다. 염증이 다른 곳에도 퍼져 간에 염증 수치가 올라갔다고 했다. 그래서 열도 나고 식은땀도 나고 너무 아파서 새벽에 응급실에 가서 그대로 입원하였다. 뒤에 덧붙일 이유도 이유지만 이렇게 심하게 아프고 난 후이기 때문에 그냥 쉬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한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취급을 받았다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프로젝트가 동시에 여러 개가 진행되면 한 사람이 여러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것은 일상적이다. 나는 한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새로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는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프로토타입을 맡아서 만들게 된 이유는 프로토타입 외주 견적이 너무 비싸서 외주를 맡기면 남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남는 게 없는 게 문제도 되지만 아마 예산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외주비를 아끼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위하여 부품 구매를 위한 업체 컨택, 견적 받기와 더불어 제작 방법의 고안과 제작까지 신규 참여한 프로젝트를 위하여 기존에 참여하는 프로젝트보다 더 정성과 시간을 들였다. 이렇게 노력을 한 결과 외주비용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게 되었고, 이 프로토타입을 최종보고에 시연을 하였다.


이때 발주처로부터 프로토타입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는데 프로토타입에 대한 작동방식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 질문에 대한 답으로 교수님이 -학교였으므로 부서의 장이 교수님이었다- 싸구려 모터를 써서 그렇다는 답변을 하였다. 더 좋은 모터를 썼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에서 생각하면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한 일이 싸구려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외주 대신으로 재료비를 아끼기 위하여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부품도 선정하고 제작을 하였는데 그런 말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나의 상사가 그렇게 말을 하니, 정말 나 자신이 싸구려가 된 기분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세 번째 이유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인데 바로 급여가 자주 밀리는 것이다.

외주 용역 비용 지급이 그렇듯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바로 수금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수금이 되지 않으면 산학협력단에서 급여가 지급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 사비로 급여를 지급해주시는 호의를 베푸셨지만 그것도 빚이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렇게 급여가 두세 달 연달아 밀린 적도 있고, 교수님께 사비로 급여를 지급받기도 하니 부담이 하나 둘 더해져 갔다.


여기서 세 가지 이유를 들었지만, 첫 번째 건강이 나빠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괜찮았으면 좀 더 버텼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또 한 번 세 번째 직장을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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