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찾는 곳, 내 마음의 고향이자 침실이자 휴식처인 거실 소파에 눕는다. 그러고 보니 2004년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한 뒤 거의 잠자리는 거실의 소파였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거실만 내 소유고 나머지는 은행 소유라 왠지 거실이 더 좋다고 농담을 한다. 사실은 거실이 참 편하고 좋다. 퇴근 후 그 소파에 누워 잠시 잠깐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저 문만 열면 내 눈 앞에 계단이 펼쳐지는데, 그 문까지 가기 어렵다. 그러다가 지금 너무 자면 밤에 잠 잘 자기 어렵다는 곳에까지 생각이 미치기까지는 거의 1시간 정도 뭉기적 거리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겨우 문을 나선다. 2월부터 7월까지만 해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마스크를 챙기지 않았으나,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며 마스크를 챙기는 것은 이제 필수가 되었다. 이웃을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미세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계단 창문을 열면 신선한 바람이 들어와 코끝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느낌이 좋다. 낮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관한 잔상과 그 일에 대해 내가 느끼는 지점들이 계단과 오버랩되며 마치 별빛이 반짝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것처럼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리고 예전에는 잘 알아채지 못했던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그동안은 누군가 나에게 뒤통수에 남는 상처가 되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면 요즘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준 그 누군가의 말을 되새긴다. 그럼에도 감정의 찌꺼기들이 잔상처럼 남아 나를 괴롭히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었다. 어떤 감정들은 하나의 조각으로 가슴속에 깊이 각인이 되어 1년이 지나도 털어내지 못했다. 어떤 감정들은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계단 오르기를 하면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억지로 밀어내거나 털어내려고 하면 더 깊이 마음속에 흡착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내버려 두려 한다. 계단을 오르며 땀이 흘러 내리듯이 자연스럽게 몸에서 벗겨나가는 걸 지켜본다.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감정의 찌꺼기를 흘려보내니 몸과 마음이 같이 홀가분해진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태극권 기본체조를 한다. 이 기본체조의 첫 다섯 가지 동작은 스트레칭 효과가 탁월하다. 차례로 양팔을 돌려 어때에 쌓인 피로를 풀어준다. 두 손을 위로 올려 좌우로 흔들어주면 어깨와 허리 옆구리 등에 쌓였던 피로가 털려 나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뒤로 깍지를 끼고 들어 올리는 동작은 무리하지 않고 수건을 맞잡고 들어 올린다. 억지로 하지 않고 내 몸에 맞게 한다. 유연한 사람들이 하는 만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던지면 그 운동이 내게 맞게 다가온다. 기다리는 시간은 또 다른 치유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아홉 세트를 마치고 나니 몸은 좀 더 할 수 있겠다고 말을 걸지만, 하루 이틀하고 그만둘 운동이 아니고 오랫동안 내 몸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에 가 닿는다. 내려가기 전 21층에서 잠시 저 멀리 산과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불빛들을 본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땀도 식는다. 하루를 온전히 정리한 느낌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를 수 있는 곳을 오르는 이 느낌을 왜 예전에는 시도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 이 나이에 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올여름 내내 찬물로 샤워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것도 달라진 변화다. 예전 같으면 찬물에 샤워를 해도 금방 더워졌는데 왠지 따뜻한 물이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 땀이 씻껴 내려가는 느낌은 상쾌하다. 몸과 마음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편에 타인에 대한 소심한 감정의 찌꺼기도 흘려버리기를 희망한다. 살다 보면 쓸데없이 비교하는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잡다한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싶어 진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쉽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가져본다. 언제든 그 비교하는 마음이 호시탐탐 나의 약한 감정을 노리겠지만 호락호락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189층)
wisedragon기획자
wisedragon은 작은 일상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로 여행을 떠나면서 그 느낌을 글로 옮겨 삶의 의미를 꺼내고 이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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