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라는 밭을 가는 농부

- 그 날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그날 푼다

by 새로나무

농촌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논에서 벼를 베고, 밭에서 감자를 캐고, 상추를 심는 일들을 틈틈이 했다. 농부는 밭을 갈아야 한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게 밭을 가는 일과 같다. 배움에는 어떤 것도 포함될 수 있다. 가장 큰 깨달음은 타인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나의 내면이 성장하며 나를 가르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면 그 가르침도 훌륭한 배움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기본적인 자존감과 자신감,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태도가 포함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나는 매일매일 밭을 갈고 있다. 나의 생각을 글로 옮겨서 명확히 하고 다시 그 글을 바탕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아주 작지만 실천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 몸에 관해서 보자면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바로 나임을 알게 해 준 것이 계단이다.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르면서 무수한 생각의 파편들과 감정의 찌꺼기들이 흘러내리고 정화되는 의식을 매일매일 거행하고 있다. 그리고 계단 오르기는 묵언 수행이다. 말을 하면 힘들다. 가끔 아주 가끔 아내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데 곧바로 호흡 가쁜 괴로움이 엄습해온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대신 내 몸과 내 느낌에 집중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여기 왜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와 같은 거창한 질문을 하지는 않지만 아주 미세하게는 그러한 질문의 부스러기들을 아주 가끔씩 잡게 된다. 그러므로 계단을 오르는 것은 내 몸이라는 밭을 가는 농부가 잠시 되는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계단을 오르기 전에 마음에서부터 준비한다. 그리고 계단 오르기를 마치고 나면 긴 여운이 나를 포근하게 감싼다. 물론 땀을 흘린 뒤의 상쾌함과 함께 오니 아주 작지만 커다란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채워야 할 것들에 대한 상상을 하는 즐거움도 같이 덤으로 딸려온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 몸을 들여다본다. 잘 작동하는 부분과 덜 작동하는 부분을 느낀다. 조급하게 덜 작동하는 부분을 잘 작동하려 무리하지 않는다. 가만히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이유가 곧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게 몸에 관한 것이든 정신에 관한 것이든. 그 둘은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 연결되어 있다. 몸과 마음이 어떻게 따로 놀 수 있으며 몸과 정신이 어떻게 따로 놀 수 있겠는가?


상쾌한 가을바람이 싱그럽게 나의 빰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종아리와 허벅지에도 바람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경쾌한 발걸음은 여덟 세트 내내 지속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태극권 기본체조를 한다. 나의 어깨 상태는 매일매일 다르다. 나의 허리 상태도 매일매일 다르다. 그 다름이 좋은 방향으로의 다름임을 느낀다. 오늘 나는 어떤 경로로 어깨에 피로를 가져왔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생각한다. 계단 오르기는 절대적인 선이 아니고 그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리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여기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코로나로 인해 나의 아들은 수시로 문을 닫는 헬스장에 대한 Plan B를 가동 중이다. 비어있는 고향집에 가정용 헬스기구를 세팅해서 운동을 한다. 물론 비용과 번거로움이 동반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고향집 아늑한 곳, 숲 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곳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하루하루 영상을 통해 보고 있다. 나는 이 곳 도시에서 내 나름의 삶의 방식을 만들고 있다. 아들은 아들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계단을 오르면서 한번 더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17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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