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달세뇨 by 김재진
장편소설이란 글이 없었으면 단편소설이라고 생각했어도 됐을 법한 첫 장이었다.
글을 썼다는 첫 문장의 주체는 누구였을까.
어느 겨울 아침 첫 문장을 썼다.
오늘 이 책을 집어 든 이유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유튜브의 양자역학 관련 영상과 연관이 있을까.
문과 졸업생으로써 이과의 영역은 미지의 세계이면서도 알고 싶은 영역 중의 하나다.
점점 느끼는 건 세상을 이해하는 학문으로 이과와 문과를 나눈다는 건 정말 의미 없지 않은가 이지만.
정규과정에서 강제로 누락된, 그리고 우등생만을 집중 교육하는 과정에서 속도에 발맞추지 못한 죄로 배제된 한 사람으로서의 안타까움을 담아.
언제 처음 들었던 건지 가물가물하지만 생각만 했지 어떤 의미인지 찾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짧은 십오 분 정도의 영상으로 배운 건, 속도와 질량을 알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던 고전역학과 달리, 속도 혹은 질량 두 개 중 하나를 완벽하게 알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도래할지 정확하게 도출할 수 없는 아주 작은 세계에 대한 학문이라는 것이 양자역학이라는 것이다.
알 수 없기 때문에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정확한 결론이 아닌 그 경계에 있는, 중첩된 것에 대한 연구로 미처 생각지 못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도.
달세뇨.
전부를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 역시 경계에 대한 얘기를 다룬다.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
경계에 존재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
선과 악이 없고, 옳고 그름이 없는 그런 이야기.
모호하면서 모호한 그런 이야기.
내가 오늘 양자역학에 대한 영상을 본 것과, 책장에 오래 꽂혀있던 이 책을 고른 것과, 그 사이에 실제로는 어느 정도 수준의 우연과 혹은 치밀하게 계산된 무엇이 존재한 걸까.
우리는 실제로 존재한다면, 실체를 볼 수만 있다면(어떤 도구를 사용해서든) 분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간다.
어쩌면 원래 존재했으나 우리가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던 것들이 일련의 상황을 통해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때만 한정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아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실체를 볼 수 없다는 것의 영향력은 그래서 공포이며,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쉽게 외면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란 생각도 해본다.
비승비속.
오늘 하루는 내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경계에 하루 종일 머문 기분이 든다.
추신: 물리 및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여 잘못 명시한 내용이 있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