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건
삶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
아유, 우리 아이는 너무 착해요.
말을 얼마나 잘 듣는다구요.
그래요? 어쩜 이렇게 반대죠.
우리 애는 하라는 건 절대로 하지 않고 고집이 얼마나 세다고요.
진짜 누구 닮아서 그런지 말을 너무 안 들어요.
우리가 통속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이는, 부모의 통제 아래 정해진 규율과 규칙을 잘 따르는 그런 아이 정도일까.
규율과 규칙을 따르는 것은 자신의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하며, 따르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 것. 그 정도가 되려나.
아, 써놓기만 했는데도 가슴이 갑갑하다.
그럼 규율과 규칙과 반대되는 것만이, 그것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일까.
지금, 사회가 규정한 어른(아이가 아님)이 되어 생각해 보면, 착하다. 말을 잘 듣는다 등의 말만큼 성의 없고 폭력적인 게 없다.
크면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했으면 해요.
착한 아이, 부모가. 타인이 원하는 대로 말을 잘 듣는 아이는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까.
물론, 부모가 말하는 착하다. 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아이가 착하네요. 는 적당한 무관심과 적당한 예의가 버무려진 말일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랬다.
착하다.
는 말이 듣고 싶어 나의 행동을 끼워 맞추며. 그게 정답이라 생각하며.
아, 요즘의 시대는 반대라던가.
부모의 생각보다 아이의 의사가 아주 존중되는.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착한 아이를 강요하지 않는가.
삶의 한가운데.
이 책은 오랜 기간 한 여자만을 바라본 집착남(?)의 구구절절 연애담인 듯하면서 그 여자의 자전소설인 듯도 하면서도.
책을 덮는 순간 아주 먹먹한 느낌이 든다.
시간이 조금 지나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해 보니, 십팔 년의 이야기가 담긴 것으로 보기에는 그 여자든 그 남자든 물리적 나이의 변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내내 십 대처럼, 이십 대처럼, 깨어 있으며 최소한 글에서 만큼은 솔직하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뭔가 부러웠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몰두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 생각을 의심하고.
편안함 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 책을 아주 좋아할 것 같다.
여러분,
착한 아이는 책을 많이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