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엔젤이가 자꾸 벽에 부딪히면서 걸어요.
엔젤이가 처음 온 집에서 지내다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는 총총걸음으로 이곳저곳을 확인하면서 신나 했다. 애들도 각자 '자기 방이 생겼다'며 방안에 있는 가구 위치를 바꾸어가며 '공부가 잘 되는 방분위기가 중요하다'며 깔깔거렸다. 새집에서 엔젤이는 원래의 잠자리 쿠션이 있었지만, 밤에 불을 끄고 집안이 조용해지면 언제나 큰애나 작은애의 옆으로 찾아가곤 했다. 쿠션에서 자다가도 갑자기 일어나 허전하다고 느끼면 큰언니나 작은언니 방앞에 가서 발로 방문턱을 삭삭 긁는다. 그러면 부스스한 눈으로 방문을 연 작은애는 '언니랑 자고 시포요~!' 하면서 들어오게 해 준다. 엔젤이는 푹신한 언니의 이불에 가서 언니 옆에서 작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을 청했다.
그런 평화로운 시절동안 학교일로 바빠서 매일 아침 일찍 나왔다가 늦게 들어가던 날, 이번에도 큰 애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아빠, 엔젤이가 자꾸 벽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걸어요~!' 한다. '그래? 어떻게 부딪히는데?' '글쎄요. 그냥 걸어가다가 툭툭 부딪히고 옆으로 비껴 걸어가는데 눈이 안 보이는 거 같아요.' '그래? 어디 한 번 볼까?' 가까이 다가가 엔젤이의 머리를 잡고 눈을 살펴보았을 때 바깥쪽의 큰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각막과 결막을 보고 눈꺼풀을 당겨서 결막낭을 확인해도 눈에 띄는 증상은 없었다. 이전에 왼쪽 눈처럼 혹시 녹내장이 아닐까 궁금해서 눈의 압력을 확인해 봐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각막내피 변성인 거 같은데.' 동물병원 안과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포함한 진료를 받으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서 있는 내게 안과 서** 교수님이 말을 건네신다. '네? 각막내피 변성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안과에 대해서 까막눈인 까닭에 기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각막의 내피가 혼탁해져서 시력을 상실하는 것인데 서서히 진행될 것이고 아직까지 치료방법은 없어요.' '이런! 그럼 나머지 한쪽 눈도 안 보이게 된다는 건가요?' '그렇지. 여생을 잘 보낼 수 있도록 해주셔요.'
진단을 받고나서부터 엔젤이는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다. 눈에 손바닥을 대고 왔다 갔다를 반복해 보면 반응하는 정도를 알 수 있는데 그 속도가 점점 느려지다가 없어졌다. 안보이게 된 것이다. 집안에서는 부딪히면서 걸어 다니기는 했어도 집안의 내부구조를 기억하는지 부딪히는 빈도가 줄어드는 듯했다. 냄새로 찾는지, 장소를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부터 화장실에서 오줌과 변을 보던 습관은 유지되었고, 그러면서 화장실 앞의 발수건 바구니에서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네모난 작은 바구니에 발수건이 몇 개 들어있다 보니 쿠션처럼 느껴지는지 그 작은 바구니에 발을 들여놓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바구니를 꽊 채운 상태로 잠을 잤다. 그러다가도 퍼뜩 잠에서 깨어서는 따뜻한 언니들의 품을 찾아 방문턱을 삭삭 긁었다. 언니가 깊이 잠들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문앞에서라도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