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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라 Nov 17. 2019

고향 덕에 누리는 호사

명란 알 찌개

 대학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도 벌써 16년이 넘었다. 캐리어 하나 들고 지하철로 이사하고 언니랑 둘이 하숙집 작은 방 하나에서 지지고 볶고 지내던 걸 시작으로 아주 조금씩 조금씩 집 같은 곳에서 지내게 된 것 같다. 하숙집을 벗어나 원룸 자취를 시작하게 되자 고향집에서 본격적으로 반찬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부모님 눈에는 아직 어린 두 딸을 보내 놓고 안쓰러운 마음을 음식을 보내주는 것으로 표현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사람들 만나느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밥을 차려 먹는다는 게 귀찮았던 터라 반찬들은 냉장고 안에서 반도 못 먹은 상태로 상해버리거나 쉬어 꼬부라져 처치곤란 상태가 되곤 했다.
 혹시나 제대로 못 챙겨 먹을까 봐 힘들게 장 보고 바리바리 싸서 보내셨을 걸 생각하니 죄송하긴 했지만 자취생의 냉장고는 작고 보내주신 반찬은 양이 너무 많았다. 부모님께 잘 챙겨 먹고 있냐는 연락이 올 때면 차마 상해서 버린다고 말은 못 하고 잘 먹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나름의 하얀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뭔가를 보내주시는 게 감사하면서도 뭔가 반갑지만은 않은 마음이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것들인데.
 그래도 그중에 절대 버리지 않고 꼭 먹는 게 있었다. 울산에 살 때는 항상 집에 흔하게 있었던 음식인데 서울에서 사 먹으려 하니 너무 비싸서 놀랐던, 명란젓이다. 참기름만 살짝 뿌려서 반찬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국으로 끓여 먹어도 맛있다. 우리 집에서는 그걸 알탕이라고 불렀다. 
 명란 젓갈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고 물을 넣고 끓인다. 그냥 물도 괜찮지만 쌀뜨물을 넣어주면 더 깔끔하고 담백해진다. 다진 마늘을 넣고 맛술이 있으면 살짝 넣어준다. 양파나 파를 썰어 넣고 좀 더 시원하게 먹으려면 콩나물이나 무를 추가해도 좋다. 명란젓 자체가 짭조름하고 고춧가루가 발라져 있어서 별도의 간이나 양념은 필요가 없다.
 참 간단하기도 하고 맛도 있어서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그릇은 뚝딱 이었다. 명란젓갈은 익으면 더 고소하고 밥 위에 올려 먹으면 입 안이 아주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울산에서는 이 알탕 말고는 다른 알탕을 본 적이 없어서, 서울 음식점에서 처음 알탕을 시켜먹었을 때 너무 놀랐다. 나중에서야 흔하게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내가 먹던 건 알탕이 아니라 '명란 알 찌개'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혼 후에도 다른 건 몰라도 명란젓갈은 빠지지 않고 친정에서 보내주신다. 서울에서 사 먹는 건 이상하게 그 맛을 못 따라간다. 무엇보다 찌개로 끓여먹기에 아까울 만큼 비싸다. 이 맛나고 귀한 걸 혹시라도 상해서 버리는 일 없도록 조금씩 나누어 담아 냉동실에 보관해서 한 번씩 알탕을 끓여먹는다. 
 처음에 남편에게 알탕을 끓여준다고 하니 명란젓으로 끓이는 건 줄 모르고 있다가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이게 알탕이 맞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았다. 사실 비주얼은 막 맛있어 보이진 않는다. 뽀얗긴 한데 로제 파스타처럼 진한 살구색에 하얗게 익은 알은 잘못 보면 손가락처럼 징그럽다. 알이 터져 국물 속에 퍼져 탁해져서 언뜻 보면 비지찌개 같기도 하고 정체성이 불분명하달까. 
 뭐든 군말 없이 먹어주는 편이라 일단 먹어본 후 남편의 표정이 달라졌다. 너무 맛있단다. 이게 다 처갓집에서 좋은 명란젓갈을 보내주신 덕분인 줄 알라며 괜히 너스레를 떨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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