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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라 Nov 17. 2019

지역감정이 이런 건가요

콩국수

나는 울산 토박이, 남편은 광주 토박이였다. 둘 다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고 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만 해도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경상도와 지역감정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만나 오면서도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탓에 남자 친구가 있다는 말도 못 했는데, 어느 날은 고향 집에서 함께 밥을 먹다가 아버지가 처음으로 남자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셨다.

"에이~ 아빠, 내가 이 나이에 남자 친구도 없을까 봐?"

"그래. 뭐 나는 전라도만 아니면 된다."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다급해져서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지역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아버지가 만났던 사람 중에 전라도 출신 사람이 별로였다면 그 사람이 문제인 거지 지역이 무슨 상관이냐, 내가 만난 전라도 사람들은 다 너무 좋았다. 구구절절 늘어놓자 아버지는 그럼 백 번 양보해서 전라남도만 아니면 된다고 선을 그으셨다. 사실 살짝 미화했는데, 아버지를 괴롭힌 전라도에서 온 그 누군가에 대해 설명하시며 언성을 높이시다 결국 크게 다투었고, 상을 엎기 직전까지 갔었다.

이런 상황을 전해 들은 남편은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하기도 전에 겁을 잔뜩 먹었다. 우리 둘 사이의 상황과 성격을 맞춰 가기에도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 어려움을 넘어서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막다른 벽을 마주친 기분이었다. 엄마의 방어와 나의 설득으로 일단 만나는 보라고 협상(?)한 끝에 남편이 울산에 인사를 드리러 왔다.

서울에서부터 가져온 과일바구니를 아버지가 내동댕이치면 어쩌나, 아침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온갖 극적인 장면을 상상하며 약속 장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버지는 호통은커녕, 본인이 더 긴장하셔서는 그저 허허 웃으며 별말씀이 없으셨다. 너무 싱겁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 정도로 평화로운 첫 만남이 끝이 났다. 나는 대체 왜 아버지와 그동안 전라도니 경상도니 하는 것 따위로 다툰 걸까 생각하며 멍한 상태로 서울로 돌아왔고, 이후 상견례부터 결혼까지 적어도 지역적인 부분에서의 갈등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시댁이 전라도면 입맛도 다르지 않냐, 음식은 경상도보다 훨씬 맛있겠다, 홍어도 먹어 봤냐 등등. 나는 홍어는 종종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먹는데 남편이나 시댁에서는 싫어하시는지 늘 없어서 못 먹는다. 약간의 스타일이 다를 뿐 시댁 김치도 맛있고 친정 김치도 맛있고 음식들도 비슷하고 사실 별다른 차이를 느껴본 적도 없다.

그렇게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와 같은 민족 대통합의 장으로서 평화로운 생활을 하던 중, 드디어 지역감정을 느낄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별 것도 아닌 콩국수를 먹으면서 말이다.

3년 전, 처음으로 콩국수를 집에서 해 먹기로 했다. 여름도 다가오고 집에 백태도 있어서 전 날 밤에 잘 씻어서 살짝 불려 놓았다. 잘 불린 콩은 껍질을 제거하고 삶아준다. 살짝 식힌 콩을 물과 함께 믹서기에 넣고 곱게 갈아 차갑게 식힌다. 국수를 삶아 찬 물로 여러 번 헹궈 면발을 살려주고 그릇에 담은 후, 차가운 콩물을 붓고 오이를 채 썰어 고명으로 얹으면 완성이다. 물론 소금 간을 살짝 해야 더 맛있다.

다 만들어 상을 차리는데, 남편이 별안간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설탕을 찾았다. 순간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말했다.

"설탕? 콩국수에 설탕을 넣어 먹는다고? 이건 식사로 먹는 건데 달게 먹는다고? 팥죽도 아닌데?"

"콩국수는 원래 설탕 넣어 먹는 거 아니야? 왜 그렇게까지 놀라고 그래?"

남편은 기분이 상한 듯 뾰로통하게 대답했다. 단호하게 말하니까 말릴 수도 없고 설탕을 주기는 했는데, 나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렸다. 물론 경상도에서도 우뭇가사리를 채 썰어 넣은 콩국물에 설탕을 넣어 먹기는 하지만 식사로 먹는 국수에 설탕을 넣는다는 것은 마치 밥에 설탕을 뿌려 먹는 것과 같은데, 괴상한 식성으로 느껴졌다.

내가 자꾸 이해할 수 없다고 놀리니까, 남편도 콩국수에 소금 넣는 게 더 이상하다고 놀려댔다. 서로 자기 것이 더 맛있으니 먹어보라며 나중에 맛있다고 뺏어먹지나 말라고 등을 돌리고 먹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콩국수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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