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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라 Nov 17. 2019

맛의 비결은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

핸드드립 커피

 원래 커피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고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더욱 빠져들었다. 커피에 몰입하면 어렵고 힘든 상황을 잊을 수 있었고 그 자체의 향과 맛 덕분에 어지러운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당시 배우던 요리를 그만두고 커피에 올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때는 어딜 가도 커피 생각뿐이라 친구들과 구경 간 액세서리 가게에서도 커피 잔 모양의 귀걸이를 산 적도 있다.
 그렇게 좋아했던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작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매일 아침 에스프레소로 커피 맛을 점검한다는 핑계로 시작해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거나 라테 아트 연습을 해야 한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정말 원 없이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였을까. 커피 맛에 대한 칭찬을 들었을 때 정말 신나고 힘이 났다. 단골 외국인 손님이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며 도장 쿠폰을 꽉 채워주셨을 때 용기 내어 어떻게 우리 카페에 오게 되었냐고 어설픈 영어로 물어보았는데, 매우 심플하게 다른 곳보다 커피가 맛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주셨었다. 물론 맛있게 로스팅해주시던 커피 선생님 덕택이 크겠지만 내가 내리는 커피 맛에 대한 자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커피숍을 정리한 후에는 카페에 있었던 에스프레소 머신 대신 집에 있던 다양한 도구로 커피를 내려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신으로 내린 에스프레소와 가장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는 모카포트의 진한 느낌이 좋았는데, 점점 내 손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핸드드립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원두를 추출하기 좋은 굵기로 핸드밀로 직접 갈아서 여과지를 올린 드리퍼에 담고 뜨거운 물로 원두를 살짝 적시듯이 원을 그리듯 부어 준 후 뜸을 들여준다. 뜸 들인 후에는 전용 포트로 가운데부터 점점 큰 원을 그리며 천천히 가늘게 물을 부어주면 드리퍼 아래의 서버로 커피 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드립이 끝난 후에는 미리 데워둔 잔에 커피를 조금 덜어 맛을 보고 너무 진하면 뜨거운 물을 좀 더 추가하여 조절해주면 내 입맛에 맞는 핸드드립 커피가 완성된다.
 어느 날 남편이 밥 먹은 후 커피를 내리는 내게 다가오더니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밥도 차려줬으니 커피는 자신이 해주고 싶다는 이유였지만 내 생각에는 뭔가 신기하고 멋있어 보였던 것 같긴 했다. 천천히 설명해 주고 불안해서 돌아보고 '나 자격증 있는 여자야' 하며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여러 번 실패한 요리를 벌칙처럼 먹어본 터라 커피마저 맛이 없을까 봐 솔직히 좀 많이 걱정이 됐다. 본인도 걱정이 되었는지 매우 심혈을 기울여서인지 시간이 나보다 두 배는 걸리는 것 같았다. 한참 후 약간 식은 듯한 커피를 전해 받으며, 맛도 두 배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마셔보았다.
 생각보다, 아니 기대 이상으로 맛이 있었다. 너무 정성을 들인 탓에 약간 텁텁한 맛은 있었지만, 원두 자체가 맛있어서인지 다행히 '커피'맛이 났다. 어쩌면 열심히 해 준 마음에 대한 고마움의 맛이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합격점을 받은 후, 자신감이 생긴 남편이 이제 커피는 본인 담당이라며 매일같이 드립 커피를 해주기 시작했다. 꾸준히 하다 보니 그새 실력이 더 늘어서, 이제는 확실히 나보다 훨씬 더 맛있게 커피를 내린다. 요즘엔 내가 묻는다. "왜 내가 하면 이 맛이 안 나지? 나 자격증 있는 여자인데?" 남편이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다 정성이지. 정성." 역시 이 사람은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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