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찮은 아부에 관하여
P상무님은 여자직원들과 얘기하고 농담 따먹기를 좋아하시는, 간식을 우리끼리만 먹으면 진지하게 삐지는 분이셨다. 반대로 한 편으로는 내 밑으로 여자직원은 절대 안 두겠다 (“송신타”)라고 생각하는 가부장적이고 고지식한 면이 있는 분이기도 하셨다.
당시 카카오카드가 출시된 지 얼마 안 돼서, 유행처럼 모든 사람이 카드를 발급받고 있었다. 서비스로 캐릭터 스티커도 보내주는 행사도 하고 있었는데,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시며 “이게 뭐냐??”라고 개구쟁이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신이 나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상무님, 걔는 무지예요. 원래 단무지인데 토끼가 되고 싶어서 토끼탈을 쓰고 있어요.
옆에 따라다니는 쪼마난 초록색 친구는 콘인데, 콘이 무지를 키웠다는 얘기도 있어요."
"너는 뭔데 이런 거도 잘 아냐??(낄낄 웃으시며), 그럼 얘는?"
“걔는 프로도구요, 옆에 고양이 보이시죠, 네오라는 고양인데 둘이 커플이에요ㅋㅋ. 그 오리는 튜브고, 발이 작아서 콤플렉스인 오리라 오리발을 신고 다녀요~ 화나면 헐크처럼 초록색으로 변해 괴팍해지기도 하죠”
“넌 임마 카카오 직원이냐?? 재밌네 계속해봐라. 나 카드에는 요놈으로 그냥 했거든.”
“걔는 라이언이에요. 갈..”
“라이언??사자라꼬??”(경상도 분이시다)
“네 갈기 없는 사자에요.”
"너 임뫄 내가 모른다고 뻥도 치냐??”
“아니 상무님 ㅋㅋㅋ 진짜예요 걔는 갈기 없는 사자에요~~ 갈기가 없는 수컷 사자라서 사자세계에서 쫓겨나서 얘들이랑 놀게 된 거라니깐요~”
“야 이건 뭐 딱 보면 곰이지 이게 무슨 라이언이냐?”
“진짜에요~~~ 딴사람들 한 번 물어보세요 상무님 ㅋㅋ”
상무님이 고개를 돌려 20대 초반 계약직 여직원한테 묻는다.
“N아, 이거 사자라는데 맞냐? 곰 아니냐?”
“ㅋㅋㅋㅋ(아까부터 대화를 듣고 있었음) 상무님 걔 사자 맞아요~ 갈기 없는 사자!!”
“이놈들이 날 쌍으로 놀리네~~~!!"
주위를 둘러보시다 옆 팀 K대리와 눈이 마주친다.
"야, K대리야”
“예 상무님 ㅋㅋ”(이미 대화가 다 들렸던 주변 사람들이었다)
“얘 곰 맞쟤?”
(3초 망설이다)“예 ㅋㅋ 곰 맞습니다”
“와 대리님!!!ㅋㅋㅋ이러기에요???와~~~배신감쩐다” 나와 계약진 친구가 소리친다.
(기세 등등 해진 상무님)“야 옆에 H대리야”
“예 상무님(웃음을 좀 참으며)”
“얘들이 자꾸 이거가 사자라고 나 놀리는데 이거 곰 맞쟤??”
(망설임 없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네 곰 맞습니다. 얘네가 말이야 어디서 상무님을 놀릴라고~"
”와 대리님들 진짴ㅋㅋㅋ“
”거봐 곰 맞구만 니네 진짜 이럴거냐??“상무님이 웃는다.
시끌시끌해진 사무실 분위기.
마침 이 사이로 우리 팀 L부장이 지나간다.
내가 팀장님을 붙잡는다.
"팀장님, 상무님이 라이언보고 곰이라셔요. 사자를 사자라 했는데 안 믿으시네요!!"
P상무님이 씩 웃으시더니, 질문을 꺼내신다.
"L부장, 이거 사자냐 곰이냐?"
L부장은 잠시 P상무, K대리, H대리, 계약직, 나까지 짧게 스캔하더니,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ㄱ..곰입니다!!”
“거봐!”상무님이 웃으며 우리에게 말한다.
“와 부장님까지 어쩜 그러세요!”내가 외쳤다.
부장님은 말없이 우리를 스쳐지나갔고, 상무님도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셨다.
“얘는 곰이야, 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