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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보라 Apr 09. 2020

태어난다는 것은? 어렵다

<데미안>

20160818 why #584

왜 나는 <데미안>이라는 책에 빠져들었을까?

왜 데미안을 읽는 내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싱클레어가 대단해 보일까?

왜 비슷한 사람끼리는 끌림이 있을까?

왜 다 아는 듯한 데미안과 에바 부인이 신비로운 존재처럼 느껴질까?

왜 문학 작품을 어찌 해석해야 하는지가 궁금해졌을까?

어떻게 하면 데미안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을까?

(몇 번을 더 읽으면 깊어질 수 있을까?)


<데미안>을 읽고 적은 why이다. 중학생 필독 도서 목록에 들어있는 이 책을 과연 중학생들이 읽고 깨닫고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남았던 책이다. 서른 다섯 나이에 읽으면서 마음에 닿은 구절들을 중학생 때 만났으면 어땠을까하는 궁금함도 있다. 4년 전에 읽었을 때와 지금의 느낌은 또 다르다. 책은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래서 책은 늘 새롭다.


-누구나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데미안>/p.149

-우리가 의무요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각자 자신이 되고, 자기 내면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따라 그 뜻대로 살며, 알 수 없는 미래가 무엇을 가져오든 그에 대한 준비를 하며 사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데미안>/p.170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 나다움을 찾는 일이다. 사명을 찾는 일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을 찾는 사람에게는 그 길을 내어준다. 싱클레어 앞에 데미안과 에바부인이 나타난 것처럼 인연이, 만남이, 이끌려 온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열망과 나 자신으로 바로 서고 싶다는 열망이 why를 만나게 했고, 독서모임을 만나게 했다. why와 책을 통해 나는 내 세계를 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데미안>/ p.105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세계를 깨고 나와야만 새로이 태어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엄마 자궁 안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세상 밖으로 나온 것처럼 말이다. 알을 깨지 못하면 새는 죽는다. 태아는 자궁 안에서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면 죽는다. 죽음을 딛고 태어난 것이 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태어날 때 온 힘을 다해 세상을 향해 나왔던 것처럼, 나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면서 다시 태어난다. 


신랑과 산책을 하면서 묻곤 한다. 

“오빠, 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지금 느끼는 것, 보는 것들을 똑같이 깨닫고 살고 있었을까?”

“절대 아니지.”

내가 물은 질문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대답한다. “아이를 낳아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있어!”라고 말이다. 

자식을 낳아봐야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세상, 엄마의 눈으로 보는 세상,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 


육아라는 것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온 세계다. 육아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살아야 할까? 엄마로만 살아야 할까? 나로 살아야 할까? 아내로 살아야 할까? 딸? 며느리? 육아의 세계는 많은 책임과 의무가 뒤따랐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녀는 신뢰와 이해심 가득한 경청자요 메아리였다. -<데미안>/p.172


나는 에바부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본깨적 독서노트에 적용할 것에 이렇게 적었다. 신뢰와 이해심 가득한 경청자, 메아리 같은 노력하는 엄마, 아내, 딸, 친구가 되겠다고.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 알고 싶었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한 내가 보인다. 내가 열망하는 것들을 가지고 싶어서 책을 읽고, why를 하고, 독서모임에 갔다.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 사랑을 밖에서 구했다.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가 노력을 해야만 아이를 사랑하나? 그냥 내 아이라서 사랑스럽다. 배고프다고 하면 밥을 주고, 필요하다는 것을 내어 준다. 안아달라고 하면 안아주고, 재워달라고 하면 재워준다. 아이는 그 자체로 사랑을 받는다. 그렇다면 나는? ‘나도 사랑받는 존재구나! 나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구나!’ 깨닫는다. 내가 애써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위로해 준다. 


내가 사랑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태어나는 것은 늘 어려워요’ 내 마음에 그은 밑줄을 두고 다시 해석한다. 태어나는 것이 어려운데, 나는 태어났다고!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나다움을 찾는 일은 평생에 걸쳐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속도와 비교하지 않고, 나로 태어나는 일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나는 새로운 나로 태어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던지는 why, 그리고 책, 사람을 만나 연결되는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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