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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Aug 10. 2019

누군가의 버킷리스트, 성지순례

아시시(Assisi)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큰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흰색과 분홍색 대리석으로 말끔하게 지어진 산타 키아라 성당(Basilica di Santa Chiara)은 전면에서 보았을 때는 부드러운 느낌에 아담한 성당의 분위기가 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면 대성당(Basilica)이라는 것이 절로 느껴지는 큰 규모의 성당이다. 성녀 키아라는 성 프란체스코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프란체스코처럼 청렴, 빈곤, 고행의 길을 걷기 위해 출가(라고 쓰고 금수저의 가출이라고 읽어도 무방하다)를 하여 글라라 수녀회를 만들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나도 대학시절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을 처음 접하고 마음이 울렁거리도록 감동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성 프란체스코의 설교를 직접 들은 성녀 키아라의 마음에 생겼을 파문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움직임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그리고 그것을 평생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를만하다고 생각한다.

     성당 내부의 벽화는 대부분 소실되어 깔끔하게 회벽칠 되어있고 그래서 오히려 남아있는 제단화와 십자가가 돋보인다. 무리하게 복원을 시도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공간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더 극대화시킨다. 스페인 대성당의 휘황찬란하게 금으로 장식된 제단과 성가대석들보다(이 불편한 금들은 대항해 시대에 남미에서 약탈하듯 가져온 금들이 대부분이므로) 훨씬 마음에 들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성지순례를 온 수녀님들이 많이 보였다. 부축을 받아 걸어야 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수녀님이 천천히 성당을 둘러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종교를 인생의 제1강령으로 둔 사람의 성지순례는 어떤 의미일지 가늠해본다. 아시시는 다른 유적처럼 얼마나 알고 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마음속 평소의 믿음이 얼마나 깊었는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내었는지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고 감동의 크기와 폭이 달라지는 곳이다.

     마을의 큰길을 따라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향해 걸으며 기념품과 성물을 파는 가게들을 구경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십자가는 흔히 보아온 열 십자(十) 형태가 아니라 윗부분이 없는 T자형 십자가인데 이 십자가를 타우 크로스(tau cross)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양한 색상과 재질의 타우 크로스로 만든 목걸이, 묵주 같은 것을 파는 곳이 많다. 집집마다 비슷한 듯 하지만 전혀 다른 물건을 팔고 있다. 하나하나 비교해서 갖고 싶은 것을 고르다 보면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아시시에서 자란 올리브나무를 깎아 만든 타우 크로스 목걸이를 선물용이라며 색깔 별로 손에 잔뜩 쥐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가진 것도 다 버리고 가난하게 살라고 한 프란체스코의 청빈한 삶을 상기시켜 주어야 할지 아니면 이웃과 나누려는 자세를 칭찬해주어야 할지 나 스스로도 아리송해졌다.


     올리브 나무로 만든 도마와 장식품이 전시된 목수의 아틀리에 같은 느낌이 나는 상점을 공들여 구경했다. 나무 자체의 결을 잘 이용한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작품들은 무게와 부피가 상당해서 처음부터 가져가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 편이어서 오히려 고맙다. 돌과 나무로 된 화려하지 않아 더욱 눈이 가는 묵주팔찌를 집었다.

     언니가 흥이 올라 그 묵주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열렬히 설명해 준다. 분명 영어로 말하고 있는데 이탈리아어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특히 지명을 말할 때는 두 번 이상을 되묻고 다시 따라 말해야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묵주로 말할 것 같으면, Holy land(줴루솰엠 같은 느낌으로 몇 번을 말해도 못 알아듣자 거룩한 땅(Holy land)라고 바꿔 말해줬다. 포기를 모르는 착한 언니 만세!) 즉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돌과 아시시(Assisi) 올리브나무를 깎은 타우 십자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역이다)에서 가져온 나무를 깎아 만든 로사리오를 꿰어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수수해 보여도 이 묵주가 비싼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그런 종류에 이야기에, 그리고 자신의 제품에 자신감과 애정을 가지고 판매하는 사람에게 쉽게 혹하는 타입인지라 묵주를 얼른 손목에 찼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다시 말해 잘 현혹되는) 서울 3대 빵집 같은 것처럼 3대 성지순례지의 기념물을 하나에 모아둔 셈이다. (한국인이 누가 정했는지도 모르는 이런 것에 잘 넘어간다는 것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까지 알아차린 걸까? 아니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런 것에 똑같이 잘 현혹되는 걸까? BBC 등에서 다양한 제목으로 매년 여행지 랭킹을 꼽는 걸 보면 공신력은 없어 보여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겨 좋은 홍보 요인이 되어 주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통하는 듯하다.)

     수많은 순례자들과 여행객들 사이에 섞여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그 사이에는 코무네광장(Piazza del Comune)에 갑자기 그리스식 신전(미네르바 신전)이 떡 하고 나타나기도 하고 작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수많은 성당과 대성당들이 있어서 시간이 부족한 단기 여행자는 아쉬운 마음을 부여잡고 목적지를 향해 직진해야 한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푸른 잔디 위에 화려하게 치장한 말에 올라탄 프란체스코 동상이 있다. 속세의 쾌락을 즐기며 물욕을 채웠던 그의 과거의 삶은 말의 화려한 장신구로 드러나고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출정하였지만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고향, 이곳 아시시로 돌아온 그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한지는 툭 떨군 고개와 힘없는 팔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움브리아 평원을 지나 다친 곳은 없지만(하루 만에 돌아오니 싸우기도 전이었을 것이다) 패잔병처럼 아시시로 되돌아오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최상의 위치에 전시되어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세상 모든 고뇌를 짊어진듯한 그의 모습에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기적을 경험하였는데 그 말씀의 무게가 어떠하였기에 흔히들 얘기하는 감사와 찬미의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지 의아해진다. 성 프란체스코의 교리가 아닌 인간 프란체스코의 생각의 변화와 마음의 동요를 알아보고 싶어 진다. ‘헤르만 헤세’가 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읽어봐야겠다.

     밖에서 보기만 해도 크기에 압도당하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으로 들어간다. 1층은 다른 대성당과 비슷한 구조이고 2층에는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그린 조토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천장이 높아서 느껴지는 엄청난 공간감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다시 한번 실감한다. 고대에 지어진 대성당 같은 박력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성 프란체스코의 삶과는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그의 교리에 얼마나 감동을 받고 그의 생각에 동화되어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다.

     성 프란체스코의 유해가 있는 지하 1층은 내가 기대했던 분위기와 비슷했다. 아담한 유물전시관이 있고 안쪽으로 돌무덤 같은 곳이 있다. 돌벽을 기대 짚으며 간신히 지하를 돌아보는 수녀님들의 신념과 충만함이, 성지순례 여행자들이 의자에 앉아 올리는 희망의 기도가, 돌무덤 뒤편에서 철망에 매달리듯 이마를 대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수도사들의 고뇌와 간절함이 뒤엉킨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수없이 많은 감정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속에 나의 작은 희망의 기도도 희미하게 섞어본다. 여기 이곳에 있는 모든 이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말랑말랑해진 마음을 가다듬으며 한때 나의 마음을 온통 지배했던 성 프란체스코 기도의 말미도 되뇌어 본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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