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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Aug 04. 2019

우리나라 시골 인심이 이곳에도?

스펠로(Spello)

     아시시에 가기 전, 꽃의 도시라 불리는 스펠로(Spello)에 들렸다. 6월경 열리는 꽃 축제(인 피오 라타)로 유명한 도시이다. 책에서 본 사진에서 건물의 벽면에 꽃 화분이 예쁘게 걸려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6월 축제를 대비해서 길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입구 부분에만 진행되는 공사여서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구경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한낮의 햇살이 너무 따가워 차에서부터 더웠던지라 겉옷을 벗고 햇볕을 가릴 겸 주황색 우산을 펼쳐 들었다. 위층 창가에서 내려보던 할머니가 “No rain!”이라고 소리친다. 이렇게 화창한 날 왜 우산을 펼쳤냐고 타박하시는 건지(유럽인의 햇살 사랑은 몹시 집요하다) 간만의 행인에게 입참견을 하고 싶은 시골 할머니의 오지랖인지 모르겠다. 너무 덥다고 손으로 부채질 시늉을 해보지만 처음부터 내 답변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그냥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관찰할 뿐이다.

     이 동네 사람들의 꽃 사랑은 정말 대단해서 나라면 벌써 말려 죽였을 것 같은 집 밖의 화분에 꽃들이 만개해있다. 집 밖을 아름답게 관리해서 동네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이 마을 사람들의 기본 성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꽃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골목 전체가 깨끗하다. 마을에 대한 애정이 구석구석에서 뿜어져 나온다.

     움브리아 지방에서 유명한 화이트 와인을 한잔 마시며 느긋이 쉬어본다. 와인 한잔을 시켰을 뿐인데 안주를 권한다. 점심을 먹고 왔다고 정말 조금만 달라고 얘기했다. 바삭하게 구운 빵에 올리브유를 흥건하게 뿌리고 왕소금을 쳐서 가져다준다. 빵을 한입 베어 물자 바사삭하는 소리가 나고 입안 가득 올리브유 향이 퍼진다. 소금을 함께 씹으니 풍미가 더 살아난다.


     조용한 뒤뜰에 앉아 밀로 만든 간단한 빵과 올리브유의 조화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집에 가서 꼭 이렇게 해 먹어 봐야겠다고, 돌아가 추억을 곱씹을 음식이 늘었다. 계산을 하러 가니 와인 한잔 값 (3유로)만 받는다. 와인 값이 저렴한 것도 놀라운데 물 한잔도 사마 셔야 하는 유럽에서 올리브유에 흠뻑 적신 빵을 서비스로 대접받았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이런 것이 시골 인심인가?'싶으면서도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을 길을 아름답게 꽃으로 가꾸는 마음과 손님에게 무언가 대접해주고 싶은 마음의 근원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몸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마음의 휴식을 위해 아시시(Assisi)로 간다. 차로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몸을 지배하는 건 마음(정신력)이라고들 하지만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주는 것은 몸의 컨디션이라고 생각하는지라 몸의 휴식을 먼저 가졌다.) 성지순례로 유명한 도시답게 주차 시설이 잘 되어있는 대신 주차료가 비싸다. 그래도 마음 편하게 주차하고 다녀와서 요금을 정산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주차 시간을 예상해서 (안내문 없이 당당히 위치한) 코인 주차 정산기와 씨름하여 요금을 내고 나온 종이를 차량 대시보드에 올려놓는 일은 거듭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마을까지 엘리베이터와 경사면 도로를 이용해 한참을 올라간다. 이렇게 편리하게 만든 길을 이용해서 가는데도 참으로 높고 먼 마을을 예전에는 어떻게 다녔었는지 상상만 해봐도 아득하기만 하다. 괴테가 여행한 이탈리아와 내가 다니는 이탈리아는 너무 많은 측면에서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달라져서 고마운 측면들이 먼저 떠올랐다.)


     이동수단은 불편하고 길은 더 험해서 시간과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대신 지금처럼 관광객이 많지 않아 보다 쾌적하게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며 도시를 체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림이나 벽화, 건축물의 손상도 지금보다는 덜했을 것이다. 현재 복원으로 촛불의 그을음을 다 제거하고 제 색상을 찾은 바티칸 성당의 제단화는 그 당시에는 조금 어두웠을지라도 그 작품이 거쳐온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지닌 채로 고유의 빛을 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 여행의 고됨을 (때로는 생명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했던 이동을) 충분히 보상해 줄 빛나는 감격적인 순간을 짐작해 볼뿐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편안함에 충분히 감사하며 아시시를 둘러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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