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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Apr 21. 2019

유적지에서 주눅 들지 않기

이렇게 식도락에 능해서 가능해질까? 로마(Rome)

     문을 열기 전부터 여행객들이 줄을 서는 저렴한 파스타 가게(Pastificio Guerra)에서 생면 파스타를 점심으로 먹었다. (구글 평가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데 생면+토마토소스 조합을 선택하면 가격 대비 맛이 좋은 집이다.) 다만 가뜩이나 로마 시내를 걸어 다니느라 다리가 아픈데 서서 먹을 자리밖에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그래도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 면을 구경하면서 이탈리아에서 간편식 느낌의 (엄마가 밥하기 싫은 날에 휘릭 만들어주는 김치볶음밥 같은 느낌이랄까)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괜찮은 장소이다. (격식을 갖춘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파스타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생면은 건면 파스타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처음 생면 파스타를 먹었을 때는 면을 호로록하고 빨아들이면 우동 면처럼 탱글탱글하면서 양볼을 칠 것 같은 탄력이 있는 건면 파스타에 익숙해져 있어서 어색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꾸 먹다 보면 식감은 부드럽고 소스가 잘 배어들어 씹을수록 고소한 세몰리나 밀의 매력이 소스 맛과 잘 어우러지는 매력을 느낄  있다. 면이 빨리 불어버리는 단점이 있지만 식사에 집중하면서 열심히 먹으면 괜찮다.(나의 식사속도가 평균보다 느려서 생기는 단점일 수도) 그리고 생각보다 조금만 먹어도 금방 배가 부르다. 건면 파스타는 먹어도 항상 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반면 생면 파스타는 처음엔 작아 보여도 다 먹기 힘들거나 너무 맛있어서 다 먹고 나면 과식했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밥을 먹었으니 흡족한 걸음으로 지올리티(Giolitti)에 가서 젤라또를 먹으려고 했는데 한 블록도 못 가서 나를 유혹하는 초콜릿 가게를 만났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초콜릿을 사러 들어갔다가 초콜릿을 가득 묻혀주는 젤라또 콘에 반해서 냉큼 같이 주문했다. (Venchi라는 초콜릿 가게인데 이곳의 초콜릿을 왜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보고 한 가득 사지 않았는지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까지도 후회 중이다.)

     달달하고 쫀득해서 사람을 한 순간에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젤라또를 음미하며 다음 차례는 '역시 쌉싸름한 커피지!' 하고는 로마 3대 카페 중 한 곳인 타짜도르(Tazza D’oro)로 발걸음을 옮긴다. 먹고 싶은 것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곳 '미식의 나라 이탈리아'를 인정하게 된다. 진하고 쌉싸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나니 너무 먹기만 한 것 같은 마음에 괜스레 판테온(Pantheon)에 들려본다. (물론 판테온을 간단히 보고 다시 지올리티 젤라또를 먹으러 갈 테지만)

     힘을 가장 많이 받는 돔의 중앙 부분에 키스톤을 두거나 무게를 분산할 구조물을 만들지 않고 오히려 그 공간을 비워두어 건물 중앙이 완전히 뚫린 돔 형태의 원형의 건물은 건축술 자체가 너무 놀라워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놀라움을 쉽게 잊게 된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유현준 교수와 유시민 작가가 판테온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같은 장소를 보고서 자신의 전문분야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새삼 나는 판테온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었는지를 떠올려보았다.

     유적지에 가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이 짧다 보니 안내문이나 가이드 책에 있는 내용을 읽으며 거기서 가리키는 방향으로 유적을 보고 나오게 다. (관련 정보를 미리 읽고 가서는 좀 더 복합적으로 나의 시선으로 보고 싶지만 사실 그 내용들이 현장이 아니고서는 잘 들어오지 않는 어려운 내용인 경우가 많다.) 자습서처럼 이런 것을 중점으로 공부하라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처럼 유적지를 볼 때도 배경지식을 주는 책자나 친절하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가이드가 없으면 오래된 것이려니 대단한 것이려니 생각하고 지나버리게 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이집트에서 너무 엄청난 유적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니 나중에는 큰 감흥이 없었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그래도 그렇게 보라는 것만 보고 느끼라는 방향으로 느끼기에는 너무 아쉽다.

     쏟아지는 현대의 정보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내가 필터링하고 정보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유적도 자꾸 보다 보면 배경지식을 읽으면서도 그곳의 분위기를 내 나름대로 느끼고 다양한 방향에서 생각하고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언젠가는 생길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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