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마지막 주인데 아침 공기가 생각보다 차갑다. 커피 맛이 저절로 좋아지는 날씨다. 숙소에서 주는 간단한 아침식사(요거트, 크로와상, 커피 정도면 충분히 풍족하다)를 하고 스페인 광장을 향해 아침 산책을 하는 마음으로 나섰다. 길을 청소하는 청소차와 깨끗한 도로에 또 한 번 놀란다. (지난밤 도착했을 때는 밤이어서 지저분한 거리가 가려진 것인 줄 알았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로마의 거리를 씩씩하게 걸어본다. 팔도 힘껏 저어서 내가 이 공간에 있다는 것을 실감해보려 하지만 시차적응이안돼서새벽일찍부터 눈을 떴는데도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
13년 전 유럽 여행 때는 스페인 광장이 한참 공사 중이라 계단 끝에 앉아 판넬 앞에서 아쉬워했었다. 오늘, 드디어 스페인 광장의 진면모를 보게 되었다. 화분에 핀 꽃들과 Trinita dei Monti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전 세계 관광객들을 구경한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못 견딜 정도로 사람이 많아지기 전이었다.
사진 찍는 대열에 합류하며 계단을 올라본다. 계단을 다 올라 돌아서니 로마의 전경이 펼쳐진다. ‘아! 내가 이탈리아에 온 것이 맞구나’ 실감한다. 전 세계 사람들을 한 곳에서 구경하는 일도 오랜만이라 살짝 마음이 들뜬다. 다들 행복한 표정이라 그 행복함이 나에게도 몰려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표정으로전달되는감정은타인에게쉽게전염된다.내얼굴도점점긴장이풀리고입꼬리는자연스레올라간다.
스페인 광장에서 가까운 ‘안티코 카페 그레코(Antico Caffe Greco)’에 들렀다. 로마 3대 카페로 꼽히는 곳 중의 한 곳이다. 로마 3대 카페는 스페인 광장에서 가까운 카페 그레코, 판테온에서 가까운 타짜도로(La Casa Del Caffe Tazzadoro), 산 에우스타키오 일 카페(Sant’ Eustachio il Caffe) 이렇게 세 곳이다. 분명 몇 대 카페, 몇 대 젤라또 이런 것들은 한국에서 정하는 것 같은데 누가 정하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분명 더 좋은 카페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안티코 카페 그레코'는 25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괴테, 니체, 멘델스존, 바그너 등 유명인사들이 찾았던 곳이다. 예술과 인문의 공간으로 1953년 이탈리아 정부에서 이탈리아 문화재로 인정받은 카페이다. (파리의 카페나 쿠바의 바처럼 대문호의 단골집 같은 아지트까지는 아닌 것 같다.) 1760년대에 한국은 어땠는지 생각해 본다. 영조 임금님이 살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하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만큼 옛날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때의 카페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역사와 전통이 저절로 느껴지는듯하다. 붉은 벽에 가득 걸린 황금빛 액자의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려보려고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주황색 테두리가 선명한 커피잔도 예쁘고 유리잔에 주는 물도 반갑다. 달달한 파이랑 함께 먹는 커피는 흥을 더 북돋아 주고 오후에도 로마 시내를 쏘다닐 에너지를 보충해주었다. 이탈리아 특유의 진하고 쌉쌀한 에스프레소의 맛이 혀끝에도 코끝에도 계속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