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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r 24. 2019

이탈리아에 왜 또 가세요?

7박 9일 이탈리아 여행


     언제나 여행을 떠나는 일에는 설렘과 약간의 떨림이 공존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도착하는 그 순간의 기분이 나는 참 좋다. 장시간의 비행을 대비해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편한 실외복으로 고민을 거듭해 입어보아도 몇 시간 후 나는 예정된 피로감에 휩싸여 부어 오르는 다리의 통증에 시달리게 되겠지만 공항에 도착해서 티켓을 받고 수화물을 맡기는 순간의 흥분이 있다. 이제는 성수기나 평일의 의미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나는 보안검색대와 출입국심사장을 전투적으로 통과하고 나면 어느새 설렘은 사라지고 불현듯 피로감이 밀려온다. 이제 눈을 감았다 뜨면 순간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긴 비행시간을 혐오하는 장거리 여행 중독자이다. 한 마디로 모순투성이 인간이다.)


     오래 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남은 기억은 ‘왠지 모를 호감’이 가는 나라였다. 13년 전 로마는 미로 같은 좁은 골목 마다 (그 당시에도) 전 세계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그들이 버린 쓰레기로 거리는 더러웠다. 날씨는 타는 듯 더웠고 너무 간절해서 꿈에도 나왔던 큰 얼음이 가득한 냉수 한 컵은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당시 어마어마했던 유로환율 덕에 미지근한 물 한 병을 2400원(2유로)에 사 마셔야했다. 좁은 골목을 스쿠터와 작은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고 종이 지도로는 대체 내가 어디서 헤매이고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하루에 수십번씩 길을 물었다. (내 영혼의 영원한 동반자 구글지도 만세!!) 기차역에서 표를 사는 줄은 줄어 들 줄을 몰랐고 창구에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잡담을 하느라 점점 더 늘어나기만 하는 줄에는 관심도 없었고 내가 가려는 목적지와 출발시간이 맞는 기차표인지도 (불신과 불안감에 가득 차서) 내가 두세번 확인하게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이탈리아는 미워지지 않았다.


     스쿠터와 작은 차들의 색상과 모양이 너무 예뻤고 도로에 깔린 돌 위를 쌩쌩 지나가는 소리가 좋았다. 골목을 헤매다 보면 갑자기 오드리 햅번이 손을 집어 넣었던 ‘진실의 입’이 갑자기 짠하고 나타났고, 포로로마노에 가서는 ‘이건 큰 돌 저건 누워있는 돌’이라고 인식하는 수준인 인문학 바보이자 역사까막눈인 내 눈에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건물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남들은 짜고 덜 익었다는 파스타도 내 입엔 맛있었고 (상대적 체감으로) 물보다 싼 와인을 마시며 흥이 났다. ‘1일 1젤라또’만 해도 이 곳을 좋아할 이유가 충분했다.


     아직도 이탈리아에는 가보고 싶은 멋진 도시들이 너무 많았고 차량을 렌트해서 소도시를 둘러볼 마음을 먹으니 선택지는 더욱 늘어나 한정된 시간 내에 몇 곳을 간택 해야만하는 행복하고도 고통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지난번에 갔었던 바티칸 시티는 여정에서 제외하는 큰 결단을 내렸다. 그 곳에서 거장 ‘미켈란젤로’를 만났던 감동적인 순간은 그 당시의 기억을 유지하는 것을 선택했다.


     1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늦은 저녁 피우미치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를 타면 30분이면 테르미니역(Termini Railway Station)에 도착하지만 악명 높은 테르미니역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여행자의 마음은 조급하다.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싶어진다. 기차에서 내리고 보니 환한 역 내부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예상보다 역 안은 너무 깨끗하고 상점과 식당도 많아서 분위기도 아늑했다. 역을 나와 숙소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는 인물은 (좌우를 열심히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피자 집의 고소한 치즈냄새가 내 코를 위협할 뿐 다른 위험 요소는 없다. 피자 냄새가 가장 위험하다니 로마도 그 동안 많이 변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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