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소도시 여행: 다시 떠난다 해도 Italy
여행을 거듭할수록 가급적이면 주제가 있는 여행이 좋다는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큰 마음먹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떠나는 경우, 보통은 Just go나 Enjoy 유럽 같은 사전만한 책을 뒤적이며 관광지 중 가고 싶은 곳을 선별해서 동선을 짜고 여행지에서는 미션과도 같은 빠듯한 그날의 일정을 클리어 해내며 인증샷 남기기에 급급하게 된다.
한국에서 유럽은 물리적 거리가 심히 멀다 보니 (매번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좁은 좌석에 내 몸을 구겨 넣지 않으리라 결심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덕분에 금세 다음 여행을 꿈꾸게 된다.) 한 번의 여행으로 왠지 본전을 뽑아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본전 뽑기를 위해 관광지(tourist spot)를 빠른 속도로 클리어하는 여행의 결론은 ‘집 떠나면 개고생’으로 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가끔 홈쇼핑에서 광고하는 단체여행 상품을 보면(9박 10일 동안 7-8개국을 소화하는 극기훈련과 같은 일정인 경우가 대부분) 과연 몇 시에 일어나서 하루 중 몇 시간을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보낼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남는 건 결국 사진뿐인 여행이 아니라 그 날의 분위기와 향기가 기억으로 남아 일상을 보내는 중에 불현듯 그 기억을 강하게 떠올리게 하는 촉매와 같은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보물 찾기에서 선물을 발견한 것과 같은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행복의 조각을 숨기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세계의 많은 매력적인 곳들 중에서 여행지를 고르기 쉽지 않지만, 최근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테마로 여행지를 고르고 일정을 계획하면 여행의 만족도가 훨씬 높아지는 것 같다.
여하튼, 서두가 너무 길었다. 이제는 어떤 키워드로 검색을 하다 들어간 블로그였는지 기억나지도 않지만 푸르른 평원에 장난감처럼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고 빨간 개양귀비 꽃이 흐드러지게 펴서 너무도 평온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자극적인 사진을 보았고, 속된 말로 그 사진에 제대로 꽂혀서 핸드폰 메모장에 그곳의 지명을 바로 저장했다.
산 퀴리코 도르차(San Quirico D’orcia)!
그곳의 해뜨기 전, 한낮, 해질 무렵의 사진을 보며 태양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감과 분위기에 감탄하면서도 언제나 자연은 사진보다 훨씬 더 멋지기 때문에 (그것이 아무리 프로 사진가가 찍은 엄청난 사진이라 할지라도. 새벽부터 대포만 한 카메라를 지고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무한한 기다림을 감내하는 사진작가님들 죄송합니다.) 그곳을 향한 기대감은 커져만 갔다. 따스한 햇볕을 쬐며 포도밭을 거닐고 그 지역의 와인을 가득 마시고 다시금 잔뜩 부푼 마음으로 구릉을 산책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렘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모든 것은 그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주 충동적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떠남의 욕구를 누르고 지내는 나이지만, 사진 하나에 이렇게 큰 설렘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밀밭이 바람에 일렁거려 초록 물결이 흘러 넘칠 5월,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